[벳스토리:법의학 수의사가 되기까지] 동물의 억울한 죽음을 밝히는 검역본부 이경현 수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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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살면서 결정을 내려야 하는 순간, 먼저 경험해본 사람의 의견을 듣곤 합니다. 누군가가 걸어간 발자취는 다른 누군가의 앞을 밝히는 등불이 될 수 있습니다.

데일리벳 학생기자단 11기는 데일리벳의 좋은 영향력을 살릴 수 있도록 선배가 후배에게 자신이 걸어온 길을 진솔하게 전달하는 [벳스토리: OOO이 되기까지] 프로젝트를 준비했습니다.

벳스토리 프로젝트에서 11기 학생기자단은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고 계시는 선배님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았습니다.

그 10번째 주인공은 법의학 수의사로 활동중인 이경현 수의사입니다.

최근 동물학대 범죄가 증가하고 그 형태가 다양해지며 수의법의학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는데요, 동물보호법이 개정되며 부검의 수요가 크게 증가함에 따라 전문인력 교육에 대한 필요성이 더욱 강조되고 있습니다.

이경현 수의사(사진)는 검역본부에서 동물의 질병을 진단하고, 수의법의검사 업무를 맡아 동물의 부검을 통해 사인을 밝혀내는 법의학 수의사로서의 일을 하고 있습니다. 대량 동물학살 사건 수사에 참여해 범인의 학대행위를 입증하여 처벌에 일조하기도 했습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농림축산검역본부 질병진단과 소동물병리진단실에서 개와 고양이의 질병진단과 법의검사를 하고 있는 이경현이라고 합니다.

   

저는 석사를 마치고 연구분야의 공무원으로 취업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 첫 직장이 국립수의과학검역원(현재 농림축산검역본부)이고 당시 병리과(현재는 질병진단과)에서 첫 근무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검역본부에 들어와서 여러 선배님들의 영향을 받아 오늘의 제가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특히 모두 ‘수의법의학 쪽의 일을 꼭 해야 되겠냐’고 말할 때 수의사 중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라며 수의법의학 업무를 열정적으로 할 수 있게 도와주신 이명헌 부장님과 구복경 과장님께 꼭 감사의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수의법의검사 업무에 관심을 갖고 적극적으로 추진해주고 계신 김정희 검역본부장님께도 항상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수의법의학은 법과학의 한 분야입니다. 법과학에는 법화학, 법의독물학, 법의유전학 등이 있죠. 대부분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서 담당하는 분야입니다.

저는 그 중 저는 그 중 수의학적 정보와 지식을 이용하여 경찰의 범죄수사에 도움을 주거나 사인과 사망경위를 밝히는 일을 하는 법의학 관련 업무를 하고 있습니다.

자세한 법의부검 과정과 사인별 지표는 23년 4월 발간한 “수의법의부검 세부지침”에 나와있습니다. 수의법의검사를 수행하는 사람을 대상으로 만든 지침서입니다.

동물의 사인은 크게 외인사와 내인사로 구분합니다. 손상이나 중독에 의해 죽으면 외인사에, 바이러스·세균·기생충 감염이나 기타 기저 질환에 의해 죽으면 내인사에 해당합니다.

그 안에서 다시 세부적인 진단을 내리기 위해 여러 검사를 하며 다각도로 살피고 있습니다.

   

2019년부터 2023년까지 진행된 수의법의검사에서 외인사 중 상위진단명은 손상이 가장 많았습니다. 개에서는 손상이 13.9%, 고양이에서는 31.2%를 차지했습니다.

고양이의 경우는 부검의뢰축의 95.8%가 길고양이였는데, 외인사의 비율과 내인사의 비율이 비슷했습니다.

소유주 유무로 분류해보면, 소유주가 있는 동물은 외인사가 31.6%, 내인사가 10.8%를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외인사가 많은 편이죠.

반면 소유주가 없는 길고양이나 유기견의 경우 외인사가 40.5%, 내인사가 38.2%로 비슷했습니다.

국내 반려동물 수의법의검사 현황(2019~2023) 의뢰동물 생활환경에 따른 사인 비교
국내 반려동물 수의법의검사 현황(2019~2023) 개, 고양이별 사인 분류

많은 사례들이 있지만, 판결이 나오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립니다. 그래서 저도 모든 사건의 결론을 다 알진 못하고요, 언론에서 전하는 소식을 보고 알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동물보호법 위반으로 법정 최고형인 3년형을 받았던 양평 개 대량학살 사건이 기억에 많이 남습니다.

당시 현장에서 개들을 죽음에 이르게 한 피의자를 구속시키는데 제일 중요하고 어려웠던 것이 여러 통에 나뉘어 들어있는 사체 숫자를 특정하는 일이었습니다. 정확한 개체 수를 확인하기 위하여 저희 부검팀에서 이틀동안 마당과 물탱크, 플라스틱 통에 있는 개체들을 일일이 수습하여 사진으로 증거를 남겼습니다.

이 과정에서 심한 악취와 함께 부패로 인해 끈적거리고, 미끌거리는 상태에서 사체를 수습하다 보니 많은 사람들이 헛구역질을 하고 현장을 이탈하거나 일이 끝난 뒤에도 밥을 못 먹기도 하며 힘들어했습니다.

사체를 다 세고, 비교적 덜 부패한 일부 개체에 대해 부검하여 결과통지서를 제출했어요. 대부분의 개체는 영양상태를 추정할 수 있는 신체충실지수(BCS)가 1~3으로 매우 쇠약한 상태였고 위 내용물과 소장 및 대장 내용물도 거의 없어 최소 24시간 이상 굶은 상태인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사진 : 양평경찰서)

다른 사람들이 오해나 선입견을 가지고 있었던 일을 바로잡고 그것이 받아들여질 때, 그리고 사체에 남겨진 흔적과 진술이 다른 것을 통해 범인의 학대 행위를 입증할 때가 제일 보람있는 순간입니다.

또한 누군가의 억울함 또는 잘못을 바로잡을 때와 사건의 진실을 밝혔을 때 역시 일하면서 기억에 남는 순간들입니다.

    

정확하게 사인을 학대로 판단하기 위해서는 우선 수사상황이 뒷받침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경찰에서 던지는 물음(진술과정에서 범인들이 이야기하는 내용)과 얼마나 거리가 있는지에 따라 법원에서 학대의 정황이나 법적 판단을 하게 됩니다. 그러한 뒷받침을 하는 것이 저희의 역할이죠.

증명방법은 앞서 말씀드린대로 여러 과학적 방법이 있습니다. 부검을 통해 사체에 남겨진 흔적을 찾는 분야, 사체에서 약독물을 찾는 분야, 또 질병에 걸린 상태인지 검사하는 분야 등 여러 분야가 존재하며, 각각에 맞는 전문적인 방법을 통해 증명하고 있습니다. 

항상 모든 현상들을 놓치지 않고 꼼꼼히 보려고 노력하고, 어떤 사항들을 되짚어 보고 뒤집어 보는 연습을 꾸준히 합니다.

제일 중요한 것은 선입견을 버리고 깊이 볼 줄 아는 통찰력을 키우기 위해 계속 훈련하는 것 같아요. 사회문제에도 계속 관심을 가져야 하고요, 사건이나 죽음의 양상이 굉장히 다양하기 때문에 사례에 대한 자료를 많이 찾아보고 과거의 사건에 대해 달리 해석할 수 있는 부분이 있는지도 되짚어 봅니다.

동물의 생명권을 보호하고 동물학대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개인적 노력과 사회적 노력 모두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개인이 동물을 생각하는 인식과 태도가 바뀌면, 점점 더 동물에 대한 우리 사회 전체가 바뀌고 나아지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동물학대에 대한 처벌도 강화되어야 합니다. 전보다는 동물보호법이 강화되었다고 하지만 아직 처벌이 매우 약하고 실제로 처벌을 받는 이들도 적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사람들이 생명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동물보호법이 동물학대 문제를 정말 해결할 수 있도록, 또 예방할 수 있도록 잘 보완되어 동물학대문제가 줄어들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스스로 감정을 컨트롤하는 연습을 하면 조금은 스트레스를 덜 받지 않을까 합니다. 매일 사체를 보고 만져야 하는 것 자체에 대한 두려움은 없지만, 항상 신중하게 관찰하고 결론을 내야 하는 부담감은 있습니다.

그래서 퇴근 후와 주말에는 되도록 일 관련 생각을 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또 남편과 같이 여가활동을 하고, 퇴근 후에 같이 저녁도 먹으며 소소한 일상 얘기를 하면서 그날의 기분 좋았던 혹은 나빴던 일들을 얘기하고 스트레스를 푸는 것 같습니다. 남편에게 항상 저의 영원한 친구가 되어줘서 고맙다는 이야기를 전하고 싶습니다.

    

수의법의학의 기본은 동물에 대한 사랑과 존중입니다. 사람의 법의학 역시 기본 개념은 사람의 권리가 억울하게 침해받는 일이 없도록 그 권리를 옹호하는 권리존중의 의학이라 할 수 있거든요. 마찬가지로 수의법의학은 동물의 권리를 옹호하는 학문입니다.

법의학의 발달 정도를 보면 그 나라의 문화수준이나 민주화를 알 수 있다는 말이 있는 것처럼, 수의법의학의 발전 및 활성화를 위해서는 이러한 국민적 인식 제고가 가장 중요합니다.

이제 우리나라도 동물학대 사건 발생 시 더 이상 “~라고 하더라”는 추측이 아닌 검사를 통해 정확한 사인을 밝힐 수 있는 시기가 빠르게 가까워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나라는 짧은 시간에 수의법의학에 대한 관심이 급증했습니다. 해마다 그 관심의 크기가 계속 증가하는 것을 체감하고 있어요.

저도 이 일을 시작하기 전에는 동물학대와 같은 끔찍한 일들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했고, 동물에 대한 검사가 꼭 필요할까 의문도 가졌습니다.

하지만 많은 동물들을 부검하면서 말 못하는 동물들의 억울한 죽음을 많이 보게 됐어요. 그러한 억울함이 해결될 수 있도록 하는 동물부검 시스템이 우리나라에 없다는 것이 너무 안타까웠습니다.

이를 바꾸고자 현재 법의학 수의사로서 힘쓰고 있고, 관련된 시스템을 확립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 길을 가고 싶은 후배들을 위해 시스템을 조금이라도 체계적으로 만들고 싶습니다.

    

수의법의학을 학생들이 경험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관심 있는 학생들은 방학을 이용해 검역본부 질병진단과에 실습을 오고 있습니다. 매 방학 때마다 10명 이상은 오는 것 같아요.

법의학 수의사에게 필요한 역량으로는 성실함을 꼽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3D직업이라고 할 수 있고, 단기간에 잘할 수 있는 일, 화려한 일도 아닐뿐더러 권력이나 부를 얻을 수 있는 일도 아닙니다. 하지만 사회에 꼭 필요한 기여를 할 수 있는 굉장히 보람있는 일입니다.

기본적으로 동물, 생명에 대한 사랑과 존중이 기본 바탕이 되어있고, 헌신할 각오가 있는 사람이라면 많은 보람을 느낄 수 있는 좋은 직업이라고 생각합니다.

   

“성장”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정체되지 않는 삶, 그리고 매 순간 성장하는 삶을 살려고 계속 노력했어요.

항상 편협하지 않고 다양한 가능성을 볼 수 있는 시야를 가지고, 다양성을 존중하고, 혼자 높이 성장하는 사람이 아니라 다른 이들과 함께 성장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지금까지 성장해왔고, 어제보다 오늘 더 나은 내가 될 수 있도록, 늘 그래왔듯이 앞으로도 성장할 것입니다.

이혜원 기자 oni1648@naver.com

[벳스토리:법의학 수의사가 되기까지] 동물의 억울한 죽음을 밝히는 검역본부 이경현 수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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