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수의과대학협회 교육위원회가 2월 12일 회의에서 ‘한국의 수의사상’이라는 용어 사용을 중단하기로 결정함에 따라 인터뷰 시리즈 제목을 변경합니다. 편집자주)
한국 수의학교육을 근본적으로 개선하려는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무엇을 가르치는가’에서 ‘무엇을 할 수 있는 수의사로 만들어내느냐’로 교육을 바라보는 시각이 바뀌고 있습니다.
한국수의과대학협회에서는 최근 수의학교육의 졸업역량(핵심역량)을 정의하기 위한 작업을 본격화했습니다. 졸업까지 어떠한 역량들을 갖춘 수의사가 될지 규정한 후 그러한 역량을 실제로 갖출 수 있도록 대학교육을 바꿔나간다는 것입니다
때문에 ‘졸업역량’을 규정하는 일은 수의학교육 개선의 시작점이 됩니다.
수의사는 임상뿐만 아니라 방역, 축산물위생, 연구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합니다. 임상만해도 반려동물, 산업동물, 야생동물 등 축종에 따라 다양한 모습을 보입니다. 각 분야마다 요구되는 역량도 차이가 있습니다. 그러한 차이들 또한 졸업역량에 반영되어야 할 것입니다.
이에 따라 데일리벳에서 각 분야에서 활동하는 수의사들을 만나, 현장에서 바라보는 수의학교육 개선점에 대해 들어보는 [이런 교육을 원한다] 인터뷰 시리즈를 진행합니다.
제3편은 반려동물 임상 분야입니다. 아직 반려동물 임상이 보편화되지 않았던 1989년 개원하여 한국동물병원협회(KAHA) 회장, 아시아반려동물수의사회(FASAVA) 회장, 2011 제주 세계소동물수의사대회(WSAVA) 조직위원장 등을 역임하고 아직까지 현역 임상수의사로 활동하고 있는 강종일 충현동물병원장을 데일리벳이 만났습니다.
Q. 1980년대 말에 개원하셨으니 한국 반려동물 임상 발전의 산 증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 같다
1989년 8월에 개원한 27년차 임상수의사다. 당시만 해도 반려동물 임상에 대한 별다른 교육도 없었고 정보와 경험도 부족해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그 해 12월 서울에서 개원한 40여명의 뜻있는 원장들이 모여 ‘소동물임상연구회’를 결성했다. 자식에게 부끄럽지 않은 수의사상을 만들어보자는 취지였다. 이후 미국동물병원협회(AAHA)를 모델로 이 조직을 확대하여 한국동물병원협회(KAHA)를 창설했다.
KAHA는 반려동물 임상의 다양한 분야에 대한 심화 교육학습 프로그램을 자체적으로 개설했다. 밤마다 주말마다 학술을 교류하며 국내 반려동물 임상발전에 크게 기여했다.
국내 반려동물 임상의 발전은 해외와의 교류로도 확대됐다. 제7, 9대 KAHA 회장을 역임하며 세계소동물수의사회(WSAVA)를 유치했고, 조직위원장을 맡았던 2011 WSAVA를 많은 분들의 도움에 힘입어 성공적으로 개최했다. 이후 2년간 FASAVA 회장을 맡아 아시아 개발도상국의 수의사 교육 프로그램 발전에 기여했다.
국내 수의과대학의 교육도 힘 닿는 대로 도왔다. 2003년 전남대를 시작으로 충북대, 충남대, 건국대, 서울대 등에서 객원 혹은 겸임교수로서 강의했다. 이와 함께 한국수의학교육학회 부회장, 수의과대학협회 교육위원, 수의학교육인증원 심의위원 등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Q. 원장님께서 개원할 당시만 해도 대학에서 반려동물 임상을 별달리 배우지 못했을 것이다. 현장에 나와 임상역량을 기르기 위해 고생하셨을 듯 한데
본인이 수의대를 다녔던 80년대는 산업동물 중심으로 교육이 진행됐다. 개인적으로는 학생 시절 재미한인수의사회보나 외국 저널들을 보며 반려동물 임상의 꿈을 키워왔지만 당시는 ‘혈변을 보면 다 죽는다’고 말할 정도로 임상수준이 낮았다. 졸업 후 트레이닝을 받고 싶어도 받을 수 있는 곳이 없을 정도였다.
그렇게 졸업 6개월 후 동물병원을 개원해 많은 시행착오를 겪었다. 진료를 하다 궁금증이 생겨도 마땅히 물어볼 곳이 없어 답답했다. 그래서 해외로 눈을 돌렸다.
1993년 미국 WVC에 처음 참가한 후 헨리유(Dr. Henry Yoo) 수의사의 병원에서 단기 연수를 받았다. 이를 시작으로 매년 미국에 건너가 필요로 했던 부분을 연수했다. 또한 일본 홋카이도 대학과 라쿠노 가꾸엔 대학에서 초음파진단, 외과, 안과 등을 지도 받았던 경험은 임상의 든든한 바탕이 됐다.
90년대초만 해도 국내 임상수준은 미국에 30년, 일본에 10년 뒤져 있다고들 했다. 하지만 국내 수의사들의 피나는 노력 끝에 지금은 거의 동등한 수준에 올라섰다고 생각한다.
Q. 수의대에서 교육해야 할 반려동물 임상수의사의 역량을 엿보기 위해서는 원장님께서 현재 병원에서 하는 일들을 전체적으로 살펴봐야 할 것이다. 진료적 측면과 비(非)진료적 측면으로 나눠 말씀해달라.
보호자가 주차장에 들어서면서부터 돌아갈 때까지, 입원환자가 퇴원한 후 적절히 생활하며 다음 진료 예약에 내원하기까지의 모든 사항들이 동물병원의 업무와 연관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진료적 측면에는 보호자가 전화 혹은 내원하여 상담하는 모든 내용이 포함된다. 동물의 전반적인 건강과 각종 질병은 물론이고 영양관리, 예방의학, 행동학적 상담 등도 빠지지 않는다. 병원 안에서의 입원환자 관리, 진단장비의 효율적 적용 및 평가 역량도 갖춰야 한다. 전문성을 강화하고 새로운 지식을 적용하기 위한 꾸준한 노력도 필수적이다.
비진료적 측면은 동물병원 경영이라고 할 수 있다. 동물병원 사업의 재무관리부터 적재적소에 맞는 직원채용과 인사관리 능력이 요구된다. 사료 및 용품의 진열 판매, 미용, 쾌적한 병원 이용 환경 등 보호자에 대한 서비스도 적절히 마련해야 한다.
이와 함께 전문직으로서 사회를 위한 공공참여의 일환으로 유기동물 보호소 봉사나 HAB를 강화하기 위한 여러 외부 활동에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
Q. 학생들이 진료적 측면에서 반드시 배우고 나와야 하는 부분은 무엇인가
‘국내 수의과대학에서도 선진국처럼 졸업 전 충분한 임상 로테이션을 제공하여 신규 수의사를 바로 진료에 투입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생각을 늘 한다. 하지만 현실은 수의대생들이 동물에 관한 기본적인 내용조차 제대로 모르고 졸업하는 모습에 머물러 있다.
질병 중심의 교육만 받고 졸업하다 보니 동물 자체에 대한 기본내용은 등한시한 것이다. 예를 들어 개와 고양이의 흔한 품종과 특징, 사양관리방법을 잘 모르는 것은 물론이고 예방접종이 왜 필요한지, 어떤 종류의 백신을 접종해야 하는지 물으면 놀랍게도 제대로 답변을 못하는 신입수의사들이 많다.
이러한 사항을 묻는 보호자의 질문에 제대로 답변하지 못하면 첫 대면에서부터 무시당할 수밖에 없다. 보호자는 그런 수의사에게는 다신 진료를 받으려 하지 않는다. 그만큼 중요한 역량이다.
어려운 질병관리에 대한 임상역량은 반복적인 케이스를 통해 습득해도 늦지 않지만, 예방의학이나 중성화수술 등 기본적인 진료는 할 수 있는 상태로 졸업해야 한다.
Q. 그러한 기본역량을 갖추지 못한 신입수의사들을 채용하면 병원에서 자체적으로 교육해야 하나
그렇다. 병원에서도 신규 수의사에게 완벽한 임상역량을 바라지는 않는다. 하지만 개나 고양이에 대한 기초적인 질문에 답할 준비조차 되어 있지 않는 수의사에게 보호자 상담이나 진료를 맡길 순 없다. 때문에 본 병원에서는 1개월 간 집중적인 교육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교육에는 근무매뉴얼 등 병원적응에 대한 내용도 있지만 보정, 신체검사, 투약, 채혈, 각종 진단검사 등 기본적인 임상역량도 포함되어 있다.
또한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보호자가 자주 묻는 사양관리나 행동학적 문제에 대한 상담역량도 기른다. ‘중성화수술은 왜 해야 하나요?’ ‘사료는 얼만큼씩 먹여야 하나요?’ ‘분변훈련은 어떻게 시켜야 하나요?’ ‘예방접종에서 보호자가 유의해야 할 사항은 무엇인가요?’ 등 반려동물의 의식주와 건강관리, 훈련에 관한 기초적인 내용들이다.
사실 이는 미국에서 수의테크니션을 교육하는 체크리스트를 한국과 충현동물병원의 실정에 맞게 자체적으로 조정한 내용이다. 테크니션이 할 수 있는 것을 수의사가 못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되지 않나.
Q. 비진료적 측면에서는 학교에서 어떠한 역량을 배양해야 하나
동물병원 현장에서는 아무리 진료가 훌륭했더라도 보호자와 소통이 잘 안되거나 잘못 표현된 말 한마디 때문에 ‘형편없는 수의사’라고 지탄받는 일이 허다하다. 그럴수록 보호자와의 원활한 소통을 위한 대화기법 교육이 절실히 필요함을 느낀다.
역할극이나 상황극을 통해 미래의 수의사들이 자신의 장단점을 보완할 수 있는 교육이 필요하다. 이러한 커뮤니케이션 스킬 교육은 선진국에서는 진료역량 못지 않게 중요시 하는 교육과목이다.
또한 동물병원의 경영자로서 자질을 갖추기 위한 동물병원 경영학과 리더십 함양 교육도 필요하다.
사실 이러한 비진료적 역량은 하루 아침에 해결될 수 있는 분야는 아니다. 졸업 후에도 대화술이나 병원경영에 관한 서적을 꾸준히 탐독해야 한다. 아울러 개원 전 최소 3~5년의 충분한 준비과정을 거쳐야 임상경험 부족이나 주먹구구식 경영 때문에 질 낮은 수의사로 평가절하되는 어려움이 줄어들 것이다.
Q. 원장님께선 수의학교육개선 관련 논의에도 활발히 참여하시면서 관련 심포지엄에서 ‘6년제 전환 이후에도 배출되는 임상수의사의 질은 그다지 달라지지 않았다’는 취지의 지적을 하신 바 있다
개원 후 매년 수의사를 채용해오고 있지만 아직도 예전과 비슷한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그나마 막 국가시험을 치른 졸업생은 조금 낫지만, 공중방역수의사 복무자는 3년 동안 임상교육의 많은 부분을 잊고 오는 경우가 많다. 복무 중에도 미래에 대한 비전을 세우고 틈틈히 임상준비를 하면 좋을 텐데 그렇지 않는 경우가 많아 더욱 안타깝다.
반려동물 임상환경은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고 있고, 임상수의사는 전문직업인으로 인정 받을 수 있도록 역량을 꾸준히 강화해나가야 한다. 임상 현장에서 요구되는 수준에 대학 교육이 미치지 못하는 것도 문제지만, 졸업생들 또한 미래에 대한 준비가 부족하지는 않은지 되돌아보기를 당부하고 싶다.
Q. 타 분야에 종사하는 수의사들도 ‘수의사’라는 이유만으로 반려동물 건강과 관련된 질문을 받는 경우가 많다. 타 분야로 나아갈 학생들에게도 어느 정도의 반려동물 임상 교육이 필요하다고 보시는지
대학 교육이 충분한 임상실습과 로테이션을 통해 어느 정도의 단독 진료 역량을 함양시킬 수 있다면 가장 이상적일 것이다.
이러한 목표가 어렵더라도 지인이나 주변 분들이 흔하게 묻는 반려동물의 양육 방법이나 교육, 예방의학, 다발 질병에 대한 기본적인 답변 능력은 당연히 갖춰야 한다고 생각한다.
Q. 마지막으로 반려동물 임상 교육개선에 대해 제언하실 부분이 있다면
수의대 학제가 6년제로 개편된 지 17년이 지났다. 하지만 졸업생들이나 임상현장에서는 ‘입학할 때는 우수했던 학생들이 졸업할 때는 4년제 졸업생과 별반 다르지 않다’고 성토한다. 이러한 평가에 대학이 좀더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서울대와 전북대를 제외하면 6년제 개편 전후로 교수진 규모를 2~3명 늘리는데 그쳤다. 6년제에 걸맞은 전문적 교육이 이뤄지지 못하는 실정이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수년 전부터 한국수의학교육학회, 한국수의학교육인증원, 대학협회 교육위원회 등에서 다각도로 노력하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인증원은 제주대와 건국대를 거쳐 현재 서울대 수의대의 인증 심사를 진행하고 있다. 타 대학들도 서둘러 인증심사과정에 참여하면서 교육개선을 추진했으면 한다. 시대가 수의사에게 요구하는 바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안주한다면 나락으로 떨어질 수 밖에 없다.
수의학교육의 역량을 강화하려는 많은 노력들이 탁상공론에 그치지 않고 실행에 옮겨져 사회에서 필요로 하는 우수한 수의사를 양성해야만 한다. 그 것만이 앞으로 수의사가 제대로 된 사회적 인정을 받을 수 있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