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3월 출판된 [수의사가 말하는 수의사](도서출판 부키)는 반려동물 임상, 산업동물 임상, 검역, 수의 축산 정책, 공중 보건, 동물약품 개발, 전염병 연구, 야생동물 진료, 수의장교, 미국 수의사 등 각 분야에 종사하는 22명의 수의사들의 이야기를 담아 ‘수의사라는 직업을 가장 잘 알 수 있는 책’이라고 평가 받는 책입니다.
많은 수의사 및 수의대 학생들도 이 책을 읽었을 텐데요, 이 책이 출판된 지도 벌써 10년이 넘었습니다.
이에 데일리벳 학생기자단에서 당시 책에서 소개된 22명 수의사분들을 다시 인터뷰하여 10년 후 모습을 살펴보는 ‘수의사가 말하는 수의사(이하 수말수) 그 10년 후’ 프로젝트 시리즈를 진행합니다.
그 열한 번째 주인공은 권태억 수의사입니다.
권태억 수의사는 여전히 한성동물병원을 운영하며 63수족관과 일반 보호자들이 기르는 다양한 동물들을 돌보고 있습니다.
Q. 수말수가 집필된 지도 10년이 지났다. 근황이 어떠신 지 궁금하다.
그때나 지금이나 서울 관악구에서 한성동물병원을 운영하며 특수동물을 진료하고 있다.
63CITY 수족관의 특수전시생물 진료 전담수의사 역할도 계속하고 있다. 리모델링 후 파충류 동물들이 많이 줄어들었다는 차이는 있다.
이외에도 한국동물병원협회 부회장으로서 임상수의사들의 권익을 위한 활동에 도움을 주고 있다.
수말수 집필에는 대한수의사회 추천을 계기로 참여할 수 있었다. 적절한 시기에 좋은 책이 나왔다고 생각한다. 수의사 진로를 고민하는 초중고교생들이 책을 계기로 찾아오기도 했다. ‘무의미한 일은 아니었구나’ 싶다.
사실 학생들에게 정보를 제공해주고 싶어 참여했던 측면이 있다. 임상수의사가 목표였던 어린 시절 동물병원에 찾아가 실습을 요청했지만 거절당했던 기억이 아직도 남아있다. 지금도 수의과대학이나 주변 학생들의 진로체험이나 상담을 계속하고 있다.
Q. 여전히 특수동물을 포함한 임상수의사로 활동하시지만, 10년 동안 변화도 있었을 것 같은데
10년 전만에도 향후 수의계가 엄청난 속도로 발전하고 동물병원 사정도 훨씬 좋아질 것으로 예상했었다. 하지만 뒤돌아보면 당시의 동물병원 경기가 제일 좋았던 것 같다. 후배수의사들이 ‘좋은 시절에 복 받으셨다’고 농담을 건넬 정도다.
그래도 수의사들이 자율적으로 전문성을 더한 10년이었다. 심해진 경쟁에 내공을 다지고자 수의사들이 더 많이 공부했다.
Q. 책에서도 향후 특수동물 임상의 비중이 늘어날 것이라 예측했는데, 요즘 관련 상황을 어떠한가
매출, 진료수 등을 비교해보면 10년전보다는 당연히 증가했다. 5, 6년 전과 비교해도 진료두수는 60% 가량 많아졌다.
특히 어린 연령층이 특수동물을 많이 기르는데, 이들이 사회인으로서 자리 잡을 10~20년 후에는 특수동물 임상분야가 지금보다 더 발전할 것이라 본다. 장기적으로는 전망을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
특수동물은 유행을 탄다. 시대에 따라 선호하는 동물이 변한다. 예전에는 햄스터를 많이 기르다가 이후 수년간 토끼 붐이 있었다.
요즘에는 고슴도치를 기르는 보호자가 꽤 많아졌다. 프레리독, 라쿤, 미니돼지 등 축종은 다양하다.
Q. 특수동물 임상이 반려동물과 다른 점은 무엇인가
특수동물을 전문으로 보는 동물병원이 많지 않다 보니 보호자가 멀리서도 찾아온다. 그러다 보니 평일에는 내원이 어려워 토요일에 수십 케이스가 집중되는 편이다.
특수동물 진료는 연결성이 부족한 경우가 잦다. 반려견은 예방접종도 비교적 연속적이고 병원과 거리상 가깝다 보니 마음만 먹으면 자주 내원할 수 있다. 반면 특수동물은 거리가 멀고 보호자가 학생인 경우가 많아 자주 내원하기가 어렵다.
질병의 경과나 폐사에 걸리는 시간이 아주 짧다는 점도 애로사항이다.
사람은 아프면 바로 병원에 가니 중병이라도 치료 가능성이 높고 사망까지의 경과시간이 길다. 반려견은 그에 비해 짧은 편이다. 특수동물 아예 아무 표현도 없다가 중증의 증상이 확 덮치는 경우가 많다.
이는 특수동물의 가면현상(Masking phenomenon) 때문이다. 야생에서는 외적으로 약한 모습을 보이면 바로 공격 받는다. 때문에 아프더라도 안 아픈 척 끝까지 버틴다. 반려동물에도 이 같은 현상이 있지만, 야생성이 강한 특수동물에서 더 두드러진다.
이러한 성질 때문에 먹이를 허겁지겁 먹던 새가 1분 만에 갑자기 죽기도 한다. 이런 동물들은 내원 시점도 늦고 진단해 치료하기도 어렵다.
Q. 63수족관에서는 어떻게 진료하나
사실 물에 있는 동물은 직접 만지기보다 눈으로 살펴보는데 그쳐야 할 경우가 많아 진료하기가 어렵다. 때문에 예방적인 측면을 강조하는 편이다.
사육사에게 영양이나 사육환경을 컨설팅한다. 배설물로 인한 물의 pH변화를 주기적으로 체크하고 전염성 질병을 막기 위한 소독도 철저히 실시하도록 유도한다.
Q. 특수동물에 관심 있는 후배수의사나 수의대생들은 원장님이 어떻게 역량을 갖췄는지 궁금할 것 같다
알다시피 국내에는 특수동물 임상 관련 자료가 너무 부족하다. 외국자료에 의존할 수 밖에 없다. 덕분에 인터넷 실력도 많이 늘었다.
독학한 과정은 그야말로 ‘맨땅에 헤딩’이었다. 외국에도 야생동물 자료가 많지 특수동물 자료는 많지 않았다. 하나하나 익혀 혼자 공부할 수 밖에 없었다.
요즘은 ‘특수동물 임상의 전망’을 주제로 외부 강연도 나가는데 여전히 국내 자료가 부족해 외국자료를 주로 활용한다.
사실 특수동물 임상을 잘하려면 개, 고양이를 다루는 소동물 임상을 제대로 익혀야 한다.
같은 질병이라도 특수동물 자료의 수준은 얕고 소동물 임상의 수준은 깊다. 때문에 소동물 역량을 특수동물에 접목시켜 나가야 한다. ‘하나만 판다’는 자세보다는 다양한 경험이 도움이 된다.
특수동물에 대한 국내 교육여건은 좋지 않으니 선진국에 직접 나가서 배워오는 것도 좋다. 일부 학생들은 이미 적극적으로 경험하는 것 같다.
특수동물은 g단위 저울과 마취장비 정도만 갖추면 진료가 가능하므로, 설비투자보다는 공부가 우선이다.
무엇보다 진로는 자기 적성에 맞아야 한다. 특수동물은 특히 섬세한 성격을 요한다고 생각한다. 본인의 성격이나 잘하는 분야에 맞게 선택하길 바란다.
Q. 마지막으로 전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개인적으로는 지금껏 가정에 충실하지 못했던 것을 만회하고 싶다. 임상수의사로 활동한지도 많은 시간이 흘렀다. 벌써 50대 후반이다. 건강을 위해 진료시간도 조금씩 줄이고 있다.
이제껏 여러 경로를 통해 본인의 경험을 나누고자 노력해왔다. 앞으로도 본인을 필요로 하는 곳이 있다면 힘 닿는데 까지 도움을 주고 싶다.
이지은 기자 zee04@dailyve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