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3월 출판된 [수의사가 말하는 수의사](도서출판 부키)는 반려동물 임상, 산업동물 임상, 검역, 수의 축산 정책, 공중 보건, 동물약품 개발, 전염병 연구, 야생동물 진료, 수의장교, 미국 수의사 등 각 분야에 종사하는 22명의 수의사들의 이야기를 담아 ‘수의사라는 직업을 가장 잘 알 수 있는 책’이라고 평가 받는 책입니다.
많은 수의사 및 수의대 학생들도 이 책을 읽었을 텐데요, 이 책이 출판된 지도 벌써 10년이 넘었습니다.
이에 데일리벳 학생기자단에서 당시 책에서 소개된 22명 수의사분들을 다시 인터뷰하여 10년 후 모습을 살펴보는 ‘수의사가 말하는 수의사(이하 수말수) 그 10년 후’ 프로젝트 시리즈를 진행합니다.
그 열네 번째 주인공은 장칠봉 수의사입니다.
당시 미국에서 활동하는 수의사로서 겪는 일상을 진솔하게 전했던 장칠봉 수의사는 현재도 동물병원을 운영하며 반려동물들을 돌보고 있습니다.
(인터뷰는 서면으로 진행됐습니다. 편집자주)
Q. 수말수가 발간된 지도 벌써 10년이 지났다. 감회가 새로우실 것 같다.
사실 [수의사가 말하는 수의사]에 저자로 참여하게 된 사연은 좀 남다르다.
2001년 미주중앙일보 신춘문예에 본인이 쓴 [동물이 아파할 때]가 논픽션 부분에 당선되어 지면에 실렸다. 몇 년이 지나 ‘부키’ 출판사에서 해당 내용 일부를 발췌해 [수말수]에 싣고자 요청해왔다. 그렇게 본인도 22인의 수의사 중 한 명이 됐지만 책에 나온 내용은 모두 2001년 전의 것들이다.
사실 1982년부터 지금까지 미국내 여러 한인신문이나 잡지에 칼럼니스트로 활동해왔다. 때론 시평을 쓰기도 했지만 대부분은 동물들을 이야기를 다뤘다.
동물들을 치료하다 보면 보는 각도에 따라 매일매일의 케이스가 하나의 에피소드다. 개인 저술인 임상일기 수필집 [동물이 아프니 우짤꼬](동행, 2010)도 그 일환이다.
여러 책들로 한국 분들께 소개된 덕분인지 많은 변화가 있었다. 적지 않은 한국의 수의대생들이 방학이나 어학연수를 활용해 내 동물병원이나 집을 찾아 주었다.
Q. 1965년 서울대 농대 수의학과에 입학하셨고, 1980년대부터 미국에서 활동하셨으니 한국 수의사로나 미국 수의사로나 대선배 격이다.
본인의 부친은 대한수의사회 1, 2, 3대 부회장과 대구경북수의사회 1, 2, 3, 4대 회장을 역임하시면서 한국 수의계의 창립을 도운 장진호 박사다. 수의사 가정에서 성장하다 보니 자연스레 수의사가 된 것 같다.
사실 40여년전 미국에 건너갈 무렵만 해도 미국에 비하면 한국의 수의학 수준은 밑바닥이었다. 4+4년인 미국 수의학교육에 비해 당시 한국은 4년제라 교육의 양도 부족했다.
그러나 한국도 수의과대학 6년제 전환을 계기로 지난 20여년간 급속도로 발전했다. 수의대 교육의 수준도 크게 나아진 듯 하다. 서울대 수의대가 미국수의사회 인증을 계속 추진하는 것이 그 반증이다.
Q. 미국 수의사 생활이 순탄치만은 않았을 것 같다.
1978년 미국 켄터키대학 대학원에서 야생동물 기생충학을 전공했다. 1980년 미국 여러 주에서 무보수 인턴으로 시작해 현재는 본인이 소유한 동물병원에서 일하고 있다.
1994년에는 미국수의사 국가시험 출제위원으로서 본인이 출제한 200여개의 소동물 임상문제가 채택되기도 했으니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았다고 볼 수 있겠다.
현재 미국에서 수의사 면허를 받고 임상 또는 연구, 교육기관에 종사하는 우리 한인은 200명 남짓이다.
임상수의사의 고객 중 한인은 극소수고 거의 전부 미국인이다. 한인수의사들은 미국에서 태어난 미국인에 비해 영어가 능통하지 못해 언어소통이 불편할 수는 있다. 하지만 임상하는데 큰 걸림돌이 되지는 않는다고 장담할 수 있다.
그보다 더 어려운 점은 사실 ‘인종차별’이다. 그나마 다른 비전문분야에 종사하는 외국인보다는 덜 차별 받는다는 점이 위안이다. 미국에서 수의사의 사회적 인식이 다소 높은 덕분이다.
Q. 한방수의학에도 높은 관심을 갖고 계신데, 전망은 어떠한가
부친께서 70세의 나이로도 미국에서 한의사로 활동하셨다 보니 어깨너머 배운 한의학으로 관심을 갖게 됐다. 본인도 [수의침구학](서울영지문화사, 2004), [수의한방료법](서울시수의사회,2005) 등을 집필했다.
하지만 미국의 경우를 보면 한방수의학의 전망은 어둡다.
수의사가 한방, 특히 침에 관심을 가진 시기는 대략 30여년 전부터다. 쇠막대기에 불과한 침을 자침하여 일어 서지도 못하던 개가 일어서는 일을 보고 ‘신비의 의술’인 것 마냥 여겼다.
하지만 그 효과에 대한 과학적인 근거나 통계가 없고, 치료효과의 지속성 문제가 점차 드러나면서 미국수의사들의 관심은 점점 사라져가고 있다.
20년전까지만 해도 국제수의침구협회(IVAS)에서 실시하는 수의침술교육은 신청자가 폭주해 몇 년을 대기해야 할 정도였는데, 이제는 미국수의사 신청자가 없어 강좌를 유지할 수 없을 지경이다.
게다가 과거 한 때는 미국의 수의사 연수교육에서 한방약제를 과목으로 포함시키기도 했지만, 이제는 위약 비슷하게 간주하여 과목에서 삭제했다.
때문에 미국에서 한방수의학은 대체의학 변두리에서 겨우 명맥을 유지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Q. 한국에는 미국 수의사 진출을 꿈꾸는 수의대생들이 많다.
미국은 수의사에게 요구되는 역할에 비해 숫자가 상대적으로 적다. 50여개 주에서 수의과대학이 1개 이상 있는 곳이 절반 수준 밖에 안 되기 때문이다. 수의과대학은 입학도 힘들고 학생수도 적다.
그만큼 미국의 수의사들은 희소가치를 누릴 수 있다. 경제적인 면에서도 무시 못할 수준을 유지할 것으로 전망한다.
한국의 수의대 졸업생 누구나 미국수의사 시험에 도전할 수 있는 자격을 갖추고 있다.
다만 한국에는 미국수의사회 인증대학이 없어 (미국)수의사 면허취득 준비기간이 좀 더 오래 걸릴 수는 있다. 대체로 한국 수의대 출신의 미국수의사 준비기간은 2~3년 정도로 알고 있다.
때문에 현재 서울대 수의대가 추진 중인 미국수의사회 인증이 주목된다. 만약 인증을 획득하면 해당 대학 졸업생은 영어 실력만 갖추면 졸업과 동시에 미국 수의사 국가고시 및 주시험에 응시하여 면허증을 취득할 수 있다.
사실 더 중요한 점은 미국 수의사가 된 이후다.
한인 수의사들이 미국에 진출한 40여년전부터 지금까지 적지 않은 한인 수의사들이 이런 저런 사유로 면허를 취소당하기도 했다.
미국은 각 주마다 수의사면허증을 발급하지만, 어떤 문제로 한 주에서 면허가 취소되면 다른 주의 면허까지 무용지물이 된다.
면허를 취소당하고 집 없는 걸인 신세로 전락해 도시 변두리에서 천막 생활을 하는 수의사 후배도 있다. 그와 대조적으로 그간의 경험을 살려 동물병원 경영 전문가로 성공한 사례도 있다.
다시 말해 미국에서는 ‘한 번 수의사가 영원한 수의사’가 아니라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 그리고 어떠한 일이 벌어지든 수의사로서의 삶을 포기해선 안 된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다.
Q. 끝으로 앞으로의 계획을 전해주신다면
미국에서 임상수의사로 일한지도 40년 가까이 되었다. 70세지만 앞으로 건강만 허락한다면 5년은 더 일한 후 은퇴하고 싶다.
조종문 기자 jjdal1989@dailyve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