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얄캐닌코리아는 올해도 해외 고양이 임상 전문가를 초청해 국내 임상수의사와의 학술 교류를 진행했습니다.
이달 초 방한한 랜돌프 배럴(Randolph Baral) 수의사는 호주수의내과전문의이자 수의학 박사로서 고양이 전문 동물병원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이와 함께 국제적인 수의사 학술교류 사이트인 VIN.COM에서 고양이 내과부문 컨설턴트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지난 3일 저녁 로얄캐닌 초청강연이 열린 서울 그랜드인터콘티넨탈 호텔에서 배럴 수의사를 만나 고양이 임상과 동물의료보험, VIN.COM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Q. 한국 방문은 처음인가? 인상이 어떤 지 궁금하다.
한국 방문은 이번이 처음이다. 오기 전부터 한국은 문화적 유산과 첨단기술산업이 어우러진 국가로 알고 있었다. 실제로 와보니 정말 그랬다.
높은 건물들과 넒은 도로, 편리한 교통시스템이 인상적이었다. 서울성벽 순례길과 광장시장, 덕수궁 돌담길, 광화문, 청와대 주변의 고궁을 거닐며 한국의 문화유산도 느낄 수 있었다.
Q. 오늘(12/3) 청와대 주변에서 역대 최대 규모의 시위가 진행 중인데, 현장을 목격했을 것 같다
한국에 오면서 시위현장을 꼭 직접 보고 싶었다. 실제로 보니 한국 시민들에게 큰 감명을 받았다. 시민들에게 분노할 자격이 충분했음에도 불구하고 침착했다.
경찰도 많았지만 가족과 함께 시위에 나선 사람들이 많다는 점도 인상적이었다.
시위현장에서 민주주의를 확인할 수 있었다. 선출한 지도자가 시민을 위해 일하지 않으면 ‘가만두지 않겠다’고 외치는 것이다. 시민들이 나서 대통령 탄핵을 위해 국회를 압박하는 시위를 벌이는 것은 평화적이면서도 훌륭한 주권행사라고 생각한다.
Q. 수의학 쪽 얘기로 돌아오자. 부부가 함께 고양이 환자만 진료하는 동물병원을 운영한다고 들었다.
그렇다. 고양이 환자만 진료한지 20년이 넘었다. 아내는 외과수술을, 본인은 내과진료를 주로 담당하고 있다.
20여년전에 처음 고양이 전문 동물병원을 열었을 때만해도 고양이 임상에 대한 수의학적 지식의 양은 적었다. 그때는 내가 다 아는 줄 알았다(웃음).
하지만 지금은 결코 그렇게 말할 수 없다. 훨씬 더 많은 임상지식이 밝혀졌고 계속 연구되고 있기 때문이다.
한 학회장에서 고양이 임상 학술발전을 다룬 그래프를 봤는데, 1980년대까지 정체되어 있던 연구 숫자가 1990년대부터 폭발적으로 증가하더라.
Q. 1차 동물병원(Primary Care)에서 일하다가 전문의 자격을 취득했다는 점이 특이하다
사실 동물병원을 열고 전문의 과정에 참여하기 전부터도 고양이 임상과 관련된 학술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고양이를 사랑하고, 고양이 임상을 더 잘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전문의 학회에도 참여하게 됐다.
동물병원 운영을 접을 수는 없어서 별도의 레지던시(Residency) 코스에는 들어가지 않았다. 시드니 수의과대학의 리처드 말릭(Dr. Richard Malik) 교수를 멘토로 삼아 병원에서 공부했다.
전문의가 되고, 새로운 학술 성과를 내자면 기존의 임상지식을 아는 것이 먼저다. 지식이란 차곡차곡 쌓아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 과정에서 임상역량을 높일 수 있었다.
사실 이러한 경우는 흔하지 않다. 대부분 대학에서 바로 레지던시 과정에 들어간 후 전문의로서 임상현장으로 나오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하지만 1차 진료에 대해 잘 알면서 전문의로서의 전문성을 보유한 것 좋은 컴비네이션이라고 생각한다. 우리 병원도 GP위주이긴 하지만 최근에는 리퍼 케이스도 늘어나고 있다.
Q. 동물병원이 고양이 임상에서 강점을 가지려면 어떠한 점이 중요한가
보호자들은 본능적으로 수의사가 고양이를 제대로 아는지를 탐지한다. 수의사들이 고양이를 잘 다루면 신뢰하게 된다.
임상을 시작하면서 가졌던 중요 목표 중 하나는 “손님들이 ‘우리 고양이가 원장님을 좋아하네요’라고 말하게 만들겠다”는 것이었다.
수의사라면 당연히 질병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도 가져야 하지만, 동시에 고양이 자체를 이해하고 좋은 관계를 맺을 수 있어야 한다. 그러자면 고양이가 보내는 신호들과 행동학적 특징을 잘 알아야 한다.
요는 고양이를 편하게 만들어줄 수 있느냐는 것이다.
Q. 고양이 친화적인 공간을 만들어내는 노하우가 있나
대기공간을 개와 분리하는 것이 중요하다. 수의사를 만나기전부터 고양이가 스트레스를 많이 받으면 좋을 게 없다.
진료실은 작을수록 좋다. 진료실이 크면 고양이는 이 구석 저 구석 살피느라 스트레스를 받는다. 고양이는 좁은 공간에서 안도감을 느낀다.
공간적인 측면보다 더 중요한 것이 핸들링이다. 비단 수의사뿐만 아니라 동물병원 모든 직원들이 고양이 환자를 어떻게 다루는지 체크해볼 필요가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보호자가 처음 동물병원 문을 열고 들어올 때부터, 어떻게 대기하고, 어떻게 진료받고, 어떻게 떠나는지 까지 전 과정을 시뮬레이션 해보길 추천한다. 이를 통해 어느 지점에서 고양이가 스트레스를 받는지, 어떻게 줄일 수 있는 지를 분석할 수 있다.
물론 고양이만 보는 클리닉을 아예 따로 두면 가장 좋겠지만,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호주에서도 대부분 개와 고양이를 같은 공간에서 함께 진료한다.
Q. 한국에서도 고양이만 보는 동물병원이 하나 둘 생겨나고 있다. 호주에도 많은 지 궁금하다
호주에도 고양이 전문 동물병원은 조금씩 생겨나는 추세지만 많지는 않다.
시드니의 경우 서울의 절반 정도인 5백만 인구가 살지만 고양이 전문병원은 2, 3군데에 불과하다. 이 밖에도 캔버라에 한 곳, 맬버른에 한 곳 등 그리 많지 않다.
Q. 운영 중인 동물병원 홈페이지에서 동물의료보험 가입을 안내한 것이 인상적이었다
진료비 부담은 동물병원에서 벗어나기 힘든 문제다. 보호자에 따라 동물의료에 지불하고자 하는 금액의 상한이 다른데, 진료를 제대로 하자면 비용이 그만큼 증가하기 때문이다.
호주에서도 사회경제적 수준이 높은 편인 시드니에서 임상을 하고 있지만, 여기서도 진료내용과 비용을 두고 보호자와 갈등을 빚거나 토론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분명 보험이 이러한 문제를 해결해준다. 하지만 보험을 가진 내원객의 비율은 극히 적다.
전체 내원환자 중에 보험을 가진 비율은 5~8% 정도에 그친다. 소비자의 시각에서 현재의 보험상품이 가격대 성능비가 나쁘기 때문이라고 본다.
그래도 병원에서는 보호자가 보험을 고려해볼 것을 권장한다. 가령 고양이는 치과질환을 겪게 되는 경우가 많으니, 치과진료를 보장하는 보험이 있다면 고려해보라고 조언하곤 한다.
Q. 한국에서는 일반 보호자나 언론이 동물병원 의료비용을 보는 시각이 비판적인 편이다. 너무 비싸다거나, 같은 진료인데 병원마다 비용이 다르다는 식이다.
호주에서도 마찬가지다. 수의사나 수의임상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일반인들은 수의사가 수의학적 지식을 배우고 병원을 운영하는데 드는 비용을 모른다. 진료비가 병원마다 차이가 나는 것도 사실은 병원마다 진료내용이 세부적으로는 다르기 때문이다.
호주에서도 보호자들이 이 병원 저 병원 전화를 걸어 가격을 물어보고 비교한다. 소비자 단체나 매거진들도 마찬가지다.
수의사들은 진료비용 차이가 실제로는 진료내용이 달라서 생긴 것이라는 점을 계속 교육해야 한다. 가령 우리 병원에 중성화수술 비용을 묻는 전화가 오면, 사람 병원 수준의 마취 모니터링이나 진통처방 등 차이점을 세세히 설명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Q. VIN.COM에서의 상담활동도 궁금하다
지난해 리스본에서 열린 학회에서 VIN.COM 경영자를 만났는데, 그에 따르면 전세계 5만여명의 수의사들이 VIN.COM에서 활동하고 있다. 놀라운 일이다.
VIN.COM에는 수의사들 누구나 궁금한 점을 질문할 수 있다. 다른 이용자나 컨설턴트 등 누구든지 아는 만큼 답변하는 방식이다. 여러 진료과목별로 컨설턴트가 활동 중인데 본인은 고양이 내과 파트를 담당하고 있다.
매일 오후 1시간씩 VIN.COM에 올라온 질문을 보고 가능한 부분에 답변을 달아주고 있다. 여러 진료과목의 협력이 필요한 경우에는 다른 파트에 도움을 요청하기도 한다. 매일 3, 4개의 새로운 질문이 들어오는 편이다.
간단한 충고가 큰 변화를 불러일으키는 경우가 종종 있지 않나. 지구 반대편에서 일하는 수의사들을 도울 수 있다는 점은 정말 환상적이다. 질의응답을 나누는 과정 자체가 좋은 공부가 된다는 측면도 좋다.
VIN.COM에는 수의사들의 질의응답 외에도 많은 임상학술자료의 ABSTRACT도 찾아볼 수 있다. 합리적인 가격에 전문도 제공한다. 한국의 수의사들에게도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니 적극적으로 활용하길 바란다.
Q. 마지막으로 고양이 임상에 관심이 많은 국내 수의사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고양이 임상에 관심이 많다면, 고양이에 대한 사랑을 보호자들에게 보여줄 수 있도록 노력하길 당부하고 싶다.
임상공부에 매진하는 것은 기본이고, 병원에서 받는 고양이의 스트레스를 줄여주는 것도 중요하다.
핸들링, 병원의 고양이 친화적인 환경, 고양이 전문 진료 역량 등의 전반적인 차이를 보호자들에게 명백히 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