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오월드에 머무는 135종의 동물들을 돌보고 있는 김규태 수의사는 병리학자에서 공직 수의사로, 다시 동물원 수의사로 변신한 경력의 소유자입니다.
동물원에서 접하는 다양한 진료케이스를 보고한 연구실적을 인정 받아 최근 2018년 마르퀴즈 후즈후 인명사전에도 등재된 김규태 수의사(사진)를 데일리벳이 만났습니다.
Q. 인명사전 등재를 축하한다.
인명사전에 올라가는 것은 남의 일인 줄만 알았는데 갑자기 ‘인명사전 등재후보로 추천됐다’는 메일이 와서 놀랐다. 아마 동물원 수의학(Zoo Animal Medicine) 분야에 오래 있으면서 관련 논문을 지속적으로 발표한 덕분인 것 같다.
사실 동물원에서 진료를 보다 보면 참고할 만한 자료를 구하기 어렵다. 그래서 나부터라도 특이한 케이스가 있으면 알려야겠다는 생각에 논문을 내고 있다. 2012년부터 본격적으로 준비해서 최근 3년간에는 SCI급 논문만 10여편을 냈다.
Q. 대학이 아닌 현업에 있는 수의사가 논문을 많이 낸다니 특이하다. 주로 케이스 리포트인 것인가?
그렇다. 국내에서나 전세계적으로 최초로 보고하는 것들도 상당수다.
가령 수생환경에서 면역저하에 따른 2차질환으로 알려진 에어로모나스균 감염증 문제를 동물원에서 발견해 보고한 적이 있다. 수생동물이 아니라 사자나 사슴 같은 육상동물들이 에어로모나스균으로 폐사하자 ‘이러면 안 되겠다’ 싶어 전체 동물들을 검사했던 케이스다. 거기에 더해 마우스를 활용한 실험으로 스트레스와 에어로모나스균의 상관관계를 밝히기도 했다.
이 밖에도 사자의 담관암, 물범의 모낭충증, 인공포육을 통해 사람에서 사자로 전염된 피부사상균 케이스, 오릭스의 간성뇌증 등 다양한 케이스들을 논문으로 출판했다.
동물원에 머무는 야생동물들이 워낙 다양하고 케이스도 다채롭다. 논문으로 다뤄볼 케이스라고 보관해둔 것만 300건이 넘어가는데, 시간 부족이 문제일 정도다.
Q. 대전오월드 개관 초기부터 쭉 동물들을 진료해왔다고 들었다.
대전오월드 개관을 준비하던 2001년도에 합류했으니 창립멤버라고 할 수 있겠다. 수의사 2명과 사육사 2명으로 시작했던 동물관리가 이제는 수의사 4명과 40명 이상의 사육사로 늘어났다.
하지만 조류를 포함해 135종 930여마리에 달하는 오월드 내 동물들을 다 돌보기엔 여전히 빠듯한 인원이다.
오월드는 지방에 있는 동물원이지만 규모도 작지 않고 관람객도 많다. 전세계적으로 연간 관람객이 100만명을 넘기면 많은 편이라고 보는데, 오월드의 연간 관람객은 120~130만명에 달한다.
Q. 대학원, 공직을 거친 경력을 보면 대학시절부터 동물원 수의사를 꿈꿨던 것은 아닌 것 같다. 안정적인 공직생활을 뒤로하고 동물원에 향하는 선택이 쉽지 않았을 텐데
수의사라면 누구나 사자, 호랑이를 돌보는 동물원 수의사를 한 번쯤 꿈꾸지 않나. 그런 막연한 로망은 있었다.
졸업 후 수의미생물학 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취득한 다음 가축위생시험소에 입사했다. 3년연간 가축을 수도 없이 부검하면서 웬만한 주요 질병은 다 겪어본 것 같았다. 매너리즘에 빠졌다.
그러던 중 당시 개관을 준비 중이던 대전오월드에서 수의사를 구한다는 공고를 접했다. 임상수의사가 되고 싶은 생각도 있어서 지원했다. 그 당시로 되돌아가 다시 선택하라고 해도 동물원에 올 것 같다.
Q. 지금도 그렇지만 동물원 임상을 배울 기회가 부족해 힘들지 않았나
그래서 더 외국 동물원에 많이 다녔던 것 같다. 30여개국의 60여개 동물원을 방문했다. 관람만 하는 경우도 있지만, 동물원 안쪽의 관리영역도 참관하거나 자매결연을 맺은 동물원에 몇 주간 머무르며 배우기도 했다.
동물원 수의사들끼리 질병관리나 수의학적 정보를 공유하기도 한다. 2000년대 들어 결성된 전국동물원진료수의사회(KAZV)에는 전국 동물원에서 일하는 수의사 30여명이 참여하고 있다.
평소에는 밴드나 카카오톡으로 각종 자료나 임상 케이스를 공유하고, 매년 1~2차례 모여 세미나를 진행하고 있다. 학회지 발간도 추진하고 있고, 최근에는 한국동물원수족관협회(KAZA)의 지원도 받는다.
Q. 20년 가까이 동물원 임상만 하셨으니 나름의 노하우가 쌓였을 것 같다
동물원 동물들을 진료하다 보면 처음 보는 케이스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오히려 비슷해 보이는 케이스라도 원인체가 다른 경우가 많다. 고정관념을 버리고 접근해야 한다.
사실 동물원에서는 ‘동물이 아프면 진료하겠다’는 접근방식은 최대한 피해야 한다. 이미 증상을 보일 만큼 악화된 동물원 동물은 치료도 쉽지 않고 예후가 좋지 않은 경우가 많다.
결국 예방이 핵심이다. 다양한 종의 동물이 살고 있는 만큼 전염병 방역도 중요하다. 정확한 원인이 진단되면 좋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병증을 보이는 동물은 격리하고 혹시 모를 확산 위험을 최대한 빠르게 차단해야 한다.
Q. 일은 힘들지 않나
원칙은 주5일제이지만 동물원 특성상 당직이나 주말근무를 돌아가면서 서야 한다. 기본적으로 관람시간에는 최소한 1명 이상의 수의사가 머물며 비상상황에 대비해야 한다.
동물원 수의사의 일이라는 것이 시간을 많이 투여해야 하는 편이다. 숙달이 되면 시간조절도 가능하고 별문제 없으면 정시 퇴근한다.
하지만 가끔 ‘정말 동물들끼리 짜고 이러나’ 싶을 정도로 몰아서 아픈 경우가 있다. 그렇게 되면 밤을 새야 지 별 수 있나. 오후5시에 쌍봉낙타의 골절을 발견한 날, 서치라이트에 의지해 새벽까지 수술한 기억도 난다.
Q. 마지막으로 전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야생동물, 동물원 수의사 분야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교육을 개선했으면 한다. 학생들이 이 분야에 대해 전문적으로 배울 수 있는 수의과대학이 국내에는 없다. 일부 대학을 제외하면 타 전공 교수가 겸임해 가르치는 실정이다.
TV만 틀어도 야생동물을 쉽게 볼 수 있는데 수의대생은 제대로 교육 받지 못하는 셈이다. 나라가 발전할수록 동물원에 대한 수요는 늘어나고, 그에 따라 수의사에 대한 요구도 커질 텐데 걱정이다.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별반 다르지 않듯, 10년 후에도 별다른 발전을 기대하지 못할까 우려된다. 동물원 내에서 수의사의 입지가 점점 줄어들 수 밖에 없지 않겠나.
미국에서도 일부 수의과대학에 한해 동물원이나 야생동물에 특화되어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1곳이라도 제대로 교육할 수 있는 대학이 생겼으면 좋겠다.
윤상준 기자 ysj@dailyve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