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아시아양돈수의사대회(APVS)가 두 달여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대한한돈협회가 5일 APVS 취소를 촉구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ASF 국내 유입의 원인으로 수의사들을 지목한 셈이다.
한돈협회는 “아프리카돼지열병(ASF)으로 인한 국가 전체의 위기감이 최고조에 달한 상황에서 전세계 양돈관계자를 우리나라로 모으는 행위는 용납할 수 없고 설득력이 부족하다”며 “미국의 국제양돈박람회(World Pork Expo)가 ASF 우려로 전격 취소된 사례를 교훈으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대회 개최지인 부산광역시도 등을 돌리고 있다. 부산시가 최근 대회 조직위와 농림축산식품부에 대회 연기 혹은 취소를 요청하는 공문을 보내온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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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SF는 국경을 넘나드는 동물질병(transboundary animal disease)의 대표적인 사례다. 특정 국가의 노력 만으로는 막는데 한계가 있다. 그만큼 관련국들이 정보를 투명하게 공유하고 대응책을 함께 추진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전문가들 사이에 활발한 교류가 전제돼야 한다. 대학과 연구소, 현장의 수의사들이 머리를 맞대야 한다. 발생국 전문가들로부터 교훈을 얻고, 더 나은 대책을 고민해야 한다.
때문에 선진국에서는 질병 발생상황과는 별도로 학술대회를 열어 집단지성을 이끌어내고 있다. 유럽 각국이 ASF로 몸살을 앓고 있지만, 유럽양돈건강관리심포지움(ESPHM 2019)은 지난달 네덜란드 위트레흐트에서 그대로 열렸다. 대회기간 중 ASF에 대한 기조강연과 발표도 이어졌다.
부산 APVS도 ASF 대응을 위한 국제 교류의 장을 마련한다. 세계동물보건기구(OIE)가 아시아 지역의 ASF 최신 현황을 전하는 한편, 해외 발생국 전문가들을 초청해 생생한 정보를 확보할 계획이다.
이처럼 시의적절하게 마련된 국제학술행사를 오히려 일방적으로 취소하라는 것이 옳은 지 의문이다.
수의사들이 모이는 학술행사로 ASF가 유입될 위험이 행사를 취소해야 할만큼 큰 것인가. 구제역 발생농장의 해외여행 이력에만 주목하던 시절과 다를 바가 무엇인가.
그동안 ASF는 주로 남은음식물이나 불법 해외축산물, 감염된 돼지와의 접촉을 통해 전파되는 것으로 조사됐다. 동물질병 대응을 이끌어야 할 수의사들까지 전염원으로 취급받는 모습이 씁쓸하다.
이런 식이라면 매년 구제역이 재발하는 우리나라 양돈수의사들은 다른 나라 수의학술대회에도 가지 말아야 하는 셈이다. 구제역·돼지열병 청정지역이었던 제주에서 2012년 세계양돈수의사대회를 개최했던 사례와도 앞뒤가 맞지 않는다.
생산자단체와 대회 개최지에서 취소 요청이 이어지면서, APVS 조직위는 조만간 개최 여부와 관련된 공식 입장을 내놓을 것으로 알려졌다.
취소의 명분도 없지는 않다. 생산자 세션을 취소하고 ASF 발생국 참가를 최소화하면서 대회 규모 축소가 불가피한데다, 개최지나 관련 업계의 전폭적인 협조가 없으면 성공 개최를 장담할 수 없다.
게다가 대회 이후로 국내에 ASF가 발생한다면 ‘오비이락’식의 비난에 처할 위험도 높다. 그간 국내 발생한 구제역 사례에서 알 수 있듯 국경을 넘나드는 동물질병(TAD)의 구체적인 유입 경로를 밝히기는 애초에 어렵다. 그러다 보니 눈에 띄는 쪽으로 비난여론이 쏠리기 쉽다.
APVS를 개최하든 취소하든 합리적 근거가 전제되어야 한다. 막연한 불안감에 휘둘리기만 하면 곤란하다. 그것이 동물질병의 전문가인 수의사 집단에 요구되는 자세다. 조직위의 현명한 판단을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