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의사처방제 처방대상 동물용의약품 추가 지정을 앞두고 약사들의 반발이 거세다. 처방대상 지정 고시 개정 검토안에 ‘동물용 항생제를 모두 포함시키겠다’는 대담한 계획까지 포함됐지만, 정작 주목받고 있는 것은 반려견 4종 종합백신(DHPPi)이다.
의약 전문 언론을 중심으로 ‘약사단체가 4종백신 처방대상 지정에 반대한다’는 보도가 연일 쏟아지고 있다. 반려동물의 안전을 위한 조치가 시장 바닥의 밥그릇 싸움으로 전락하는 것 같아 씁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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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백신은 의료인이 접종한다. 주사제는 모두 전문의약품이다. 의사나 간호사 선생님께 백신 주사를 맞는 대신, 싼값에 부모님에게 맞는 옵션은 존재하지도 않고 고려대상도 아니다.
하지만 반려동물에서는 다르다. 백신은 위험할 수 있으니 수의사가 접종해야 한다고 하면 ‘동물병원이 백신을 독점한다’고 비판한다. 소유주는 백신을 구입해 직접 접종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일부 약사의 이러한 주장은 결국 안전불감증에 기반하고 있다. 동물병원 밖에서 수의사가 아닌 일반인이 백신을 주사해도 ‘별일이야 있겠냐’는 것이다.
하지만 주사바늘을 찌르는 행위 자체가 이미 침습적이다. 흔하지는 않지만, 백신접종 직후 과민반응이 일어날 수도 있다. 심하면 사경을 헤매기도 한다. 본지가 운영하는 [동물 자가진료 부작용 공유센터]에도 자가접종으로 인한 다양한 부작용 사례들이 접수된 바 있다.
아무리 접종 후 일어난 사고를 수습하는 것은 수의사들이라지만 ‘별일 없을 테니 아무나 주사할 수 있어야 한다’는 주장은 건강과 안전을 다루는 전문직에 합당하다고 볼 수 없다.
이처럼 백신 접종에 수의사를 배제해도 상관없다는 식의 주장은 일반의약품의 편의점 공급을 줄기차게 반대하는 약사에게는 어울리지 않는다.
전문의약품이 아닌 일반의약품조차 안전성 문제를 거론하며 편의점 판매를 반대하면서, 반려동물 백신접종의 부작용 위험은 별일 없을 거란 식으로 외면한다면 ‘내로남불’이란 비판을 피할 수 없다.
일부 약사들은 이미 보호자 일부가 비용부담으로 동물병원에서의 접종을 포기하거나 중단했다며 4종백신이 처방대상으로 지정되면 이 같은 현상이 가속화될 것으로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비용문제로 인해 백신 접종을 포기하는 문제가 있다면 이들도 동물병원에서 수의사에게 접종을 받을 수 있는 형태로 개선방안을 모색해야 옳다. 아예 수의사를 배제하고 생물학적제제와 주사기를 보호자 손에 쥐어 주는 방식으로 접근해선 곤란하다.
20여년째 거기서 거기인 동물병원 백신접종단가가 정말 접종을 포기하게 만들 정도로 심하게 비싼 것이냐는 차치하고서라도 말이다.
불법 개농장의 자가접종과 일반 가정에서의 자가접종이 다르다는 일부 약사의 주장에도 동의할 수 없다.
둘 다 수의사가 아닌 비전문가가 자행하는 침습행위로서 수의사법이 금지하고 있는 불법 동물진료다. 혹시나 과민반응 등의 사고가 발생했을 때 제대로 대처할 수 없다는 점도 마찬가지다. 일반 가정보다는 개농장에서 접종 횟수가 많긴 하겠으나, 동물 개체별로 따지면 별반 다를 것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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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의료인에게만 전문의약품인 백신주사를 맞을 수 있지만, 혹시 선택권이 주어진다 해도 부모님보다는 의사 선생님을 택할 것이다. 강아지도 말이 통한다면 마찬가지일 것이다. 동물은 사람이 아니니 좀 위험해도 싼 게 좋다고 생각하는가.
동물진료행위를 구성하는 수의사-보호자-환자의 삼각관계(Veterinarian-Client-Patient Relationship)에서 말 못하는 환자(동물)의 이익은 수의사와 보호자가 함께 고려해야 한다. 비용부담을 가지지 않을 수 없는 보호자를 상대로 수의사가 오히려 환자의 이익을 더 적극적으로 대변할 수밖에 없다.
끝으로 백신 사용과 관련해 일부 수의사의 자성이 요구된다는 점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약국처럼 운영하는 ‘무늬만’ 동물병원은 이제 사라져야 한다. 개체별 직접진료 없이 약국처럼 백신이나 의약품을 판매한다면, 이는 불법임과 동시에 수의사라는 전문직의 역할을 뿌리부터 부정하는 꼴이다.
때문에 4종백신을 비롯한 반려동물 백신의 처방대상 지정을 비윤리적 수의사를 일소하는 내부 자정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
불완전한 대수 규정이나 수의사법으로 인해 실질적인 처벌로 이어지지 못할 수도 있으나, 일단 시도라도 해야 이를 보완할 원동력도 확보할 수 있다. 회 차원의 징계는 물론 회원 고발 등 법적 조치를 적극적으로 추진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