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수의사여, 힘없음에 분노할 자격이 있는가 / 이승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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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광역시수의사회장 이승진

30년 가까이 동물병원을 운영하면서 갈수록 반복되는 것 중 하나가 있습니다. 동물병원의 정상적인 영업을 옥죄는 법안 발의나 이권다툼이 벌어질 때마다 수의사의 힘없음을 한탄하며 분노에 찬 어조로 글을 올리는 키보드워리어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점입니다.

저는 묻고 싶습니다. 인터넷 상의 전투적이고 현란한 감정표현이 일회용 분노 배설 외에 남는 것이 무엇인지, 과연 분노할 자격이 있는지를 말입니다.

인간은 사고할 줄 아는 존재입니다. 자신의 처지를 알고 그 처지에서 벗어나기 위해 노력함으로써 성장하는 사회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습니다.

우리 수의사들은 힘없는 처지를 인식하고 분노하지만, 성장을 위한 노력은 남들에게 맡기고 있습니다. 좁은 진료실 안에서 자기만의 세계를 구축하고 수의사카페에 분노를 배출하는 것 이외에 무엇을 하고 있는지 고민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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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여년전 전국에서 모인 수천명의 수의사들이 과천에서 동물진료비 부가세 부과에 반대하는 데모를 벌였을 때, 저희 목소리를 들어주는 정치인 한 명 없었습니다. 이때 ‘목소리를 내더라도 들어줄 사람을 만들어놓고 내어야 한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 이듬해에 국회의원 사무실을 찾아갔습니다. 매달 일정액을 기부하겠다고 약정하고 ‘개인적으로는 혜택을 볼 일이 없지만 수의사회의 안건이 있을 때는 관심을 기울여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이를 계기로 현재까지 여러 명의 국회의원을 후원하고 있습니다.

그 덕분인지 울산 반려동물문화센터에 대한 건의가 받아들여져 올해 개관하게 됐습니다. 농축산 관련 공무원 누구나 할 수 있었던 동물위생시험소장직을 수의사나 방역 담당자로 개편하는 동물위생시험소법 개정에도 힘을 보탰습니다.

후원을 받는 국회의원은 들어주려는 마음자세를 가지고 경청합니다. 우리가 필요할 때만 찾아가면 표를 의식해 최소한의 역할만 하려 하지만, 평소 후원을 받은 의원들은 수의사들이 불이익을 당하지 않도록 하는 최소한의 장치가 된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장기간 후원과 도움을 지속하면 신뢰를 쌓으면, 그 신뢰를 바탕으로 다른 단체를 도울 수도 있습니다.

최근 울산 재개발지역의 길고양이를 보호하는 단체와 함께 후원하는 의원을 방문해 재개발지역 유기동물 개발수익자 부담 이주대책 법안 발의를 의논했고 흔쾌히 최선을 다하겠다는 답변도 들었습니다.

이러한 과정에서 주변 단체와 우호적인 관계가 형성되면, 수의사회가 도움을 요청할 때 기꺼이 도와줄 것입니다. 우리가 필요할 때 떳떳하게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정치인 후원에 대해서는 핑계거리도 많습니다. ‘나는 정치에 관심이 없다’, ‘나는 그 정치인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생각을 하시는 분들이 의외로 많은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저는 정치인 후원이 사회에 대한 봉사이자 기부라고 생각합니다. 올바른 정치인을 후원해 경제적 어려움 없이 정치에만 전념하도록 함으로써 올바른 법안이 만들어진다면 훨씬 더 많은 분들이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이러한 점에서 정치인 후원은 가장 큰 기부이자 수의사의 기본적인 사회적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이제껏 사회생활을 하며 가장 잘한 일 중 하나가 정치인들을 후원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정치인 후원은 어떻게 할까요?

1인당 10만원을 기부하면 종합소득세 정산 시 10만원을 되돌려줍니다.

국회의원 홈페이지에 나와 있는 기부금 계좌에 입금하시고, 동물병원명을 기재해 주시면 됩니다. 이후 국회의원 사무실에 연락해 인적사항을 알려주시면 기부금 영수증을 주소지로 보내줍니다. 이 영수증을 종합소득세 정산 시 제출하면 10만원의 세액공제 혜택을 받을 수 있습니다.

또한 국회의원 1인당 최대 5백만원, 연간 최대 2천만원까지 후원할 수 있습니다. 4명 이상의 국회의원에게 나누어 2천만원까지 후원할 수 있는 것입니다.

또한 이 기부금은 비용처리가 가능합니다. 즉 동물병원의 경비로 처리하면 실제로 본인이 부담하는 금액을 훨씬 줄어듭니다.

저는 올해 4명의 국회의원에게 총 1천만원이 넘는 기부금을 후원하는 것으로 약정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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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수록 얼핏 보기에는 아름답지만 수의사들을 힘들게 하는 법들이 많이 만들어질 수밖에 없는 사회적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습니다.

올해만 해도 동물병원 진료부 의무 발급, 진료수가 공시제 등 여러 건의 법안이 발의됐거나 발의될 예정입니다. 문제는 갈수록 많아진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법안들이 발의돼 입법화된다면 최종적으로 수의사들의 진료에 많은 지장을 초래할 것입니다. 동물병원 운영에도 악영향을 미칠 것입니다.

지금부터라도 대비해야 합니다. ‘모든 수의사들이 1년에 10만원씩 정치인을 후원해야 한다’는 당위성을 갖고 기부하는 분위기를 만들어야 합니다. 만족할 만큼 많은 수의사들이 후원하기에 당장은 한계가 있겠지만, 시간이 걸리더라도 ‘후원해야 한다’는 자세를 전파시키는 노력을 해야 할 것입니다.

두 번째 방법은 진료의뢰를 받는 대형 동물병원들이 후원에 나서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들 대형병원은 일선 수의사들의 많은 도움으로 운영됩니다. 그렇기에 수의사들을 위한 사회적 역할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주고, 또 그러한 역할을 할 때 박수쳐주는 분위기를 만들어가야 할 것입니다. 이들 동물병원에서 후원에 나선 부분을 칭찬하면서, 진료를 의뢰하는 분위기가 조성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대형병원들이 연간 수백만원만 후원에 나서도 수억원의 후원금을 마련할 수 있습니다. 이를 관련 국회의원에게 집중한다면 상당한 규모가 됩니다.

이러한 분위기를 2~3년만 이어간다면, 단지 수의사의 불이익을 막는 단계를 넘어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정책을 적극적으로 만들어갈 수 있을 것입니다.

수백 번 생각하는 것보다 한 번 실천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1인당 10만원 후원하기를 생활화합시다.

또한 진료의뢰를 받는 동물병원들이 수의사들에게 도움을 받는 만큼, 수의사들이 불이익을 당하지 않는 여건을 조성해야 한다는 사회적 역할에 책임감을 가질 수 있도록 분위기를 만들어가야 할 것입니다.

금액이 얼마든 한번 후원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수의사 커뮤니티나 데일리벳에 후원 인증을 올리고 서로 칭찬하는 분위기를 만들어가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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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후배 동료 수의사 여러분, 힘없음에 분노할 시기는 이제 지났습니다.

수의사의 사회적 위치는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올라갔습니다. 이제는 힘을 키우지 않음에 분노해야 합니다. 불이익을 당하지 않을 수 있는 기반을 만들지 않는 우리들 자신에게 분노해야 합니다.

아직 늦지 않았습니다. 그 분노를 우리의 권익을 지키고 사회적 역할을 위해 노력하는 쪽으로 발산해야 합니다.

분노만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것은 없습니다. 이제 ‘1인 1후원’을 실천함으로써 수의사들이 다시는 분노하지 않고 평온하게 생업에 종사할 수 있는 미래를 만들어가도록 다 같이 노력합시다.

희망이 있기에 힘이 들지만, 오늘 최선을 다하는 것처럼 밝은 마음을 가지고 우리가 원하는 미래를 스스로 이끌어냅시다.

[기고] 수의사여, 힘없음에 분노할 자격이 있는가 / 이승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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