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개의 죽음 (지은이 장 그르니에, 옮긴이 지현 / 민음사)
본 서평은 구판(1997)을 바탕으로 쓰여졌으며, 개정판(옮긴이 윤진)이 2020년 출간되었습니다.
어느 개의 죽음과 남겨진 인간
대표적인 반려동물인 개, 고양이는 인간에 비해 매우 짧은 생을 살고, 그렇기에 보통 그들의 죽음은 보호자들에게 불가피한 경험이다.
이 경험은 개인에게 있어 가늠할 수 없는 슬픔이며, 혹은 어림짐작만으로도 마음을 저리게 한다.
이 책은 반려견 타이오의 죽음을 겪은 저자가 느끼는 상실감과 그리움, 삶과 죽음에 대한 고뇌, 더 나아가 인간과 동물의 관계에 대한 기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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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인 장 그르니에(Jean Grenier, 1898 – 1971)는 프랑스 철학자이자 작가이며 알베르트 카뮈의 스승이자 문학적 동지로 알려져 있다.
타이오의 죽음을 눈앞에 둔 시점부터 죽음을 겪은 이후인 1955년 5월 15일에서 6월 12일까지 쓰여진 90편의 짧은 글 속에서 우리는 어렵고 딱딱한 철학과 마주하는 대신, 관계와 존재에 닿는 저자의 서정적인 시선과 깊은 사유를 따라가며 공감할 수 있다.
“녀석이 사랑스러웠던가? 충직했던가? 한 존재가 사라지고 나면 우리는 그 존재에 온갖 장점들을 갖다 붙인다. 그런 값싼 대가를 치름으로써 그에 대한 의무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저자는 사라진 존재에 대해 아름답게 기억하는 것을 관계에 대한 의무에서 벗어나는 ‘값싼 대가’라고, 자신 역시 그러한 ‘위선자’로 여긴다. 남은 이의 그리움과 죄책감이 느껴진다.
하지만 유기견이었던 타이오를 만나 ‘마치 결혼은 결코 않겠다던 남자가 처음 만난 여자와 느닷없이 결혼하기로 결정을 내리는 것과 같은 마음’으로 받아들였던 순간을 비롯하여 소소한 일상과 습관들, 함께 했던 여행, 보살핌에 대한 일화를 통해 전해지는 인간동물관계에서 우리는 종을 초월한 애정과 신뢰를 느낀다.
저자는 죽음이 가까워오는 타이오를 보며 삶과 죽음에 대한 종교적 의미, 인간 우월주의, 신에 대한 의문과 구원, 자유와 구속, 돌봄의 숭고함 등을 들여다보며 새롭게 인식하게 되고, 이러한 질문들은 독자들에게도 깊은 울림을 준다.
“개들은 우리보다 나은 존재가 아니며 우리에게 삶의 교훈을 전해주지도 않는다. 좀 더 낮추어 말하면, 개들은 우리와 똑같다.”
저자는 타이오의 모든 몸짓을 통해 투영되는 자연을 배웠고, 위안을 얻었다. 타이오가 눈물이 가득 고인 눈으로 표현하는 고통은 그래서, 울음을 터뜨릴 수 있는 사람의 것보다 더욱 가슴을 저미게 만든다.
좀더 적절하게 조치를 취하지 못한 건 아닌지, 자신때문에 더 괴롭고 아프지는 않았을지 끊임없는 자책과 괴로움에 힘들어한다. 많은 보호자가 반려동물의 죽음 앞에서 느끼는 감정일 것이다.
결국 고통스러워하던 타이오는 안락사를 통해 죽음에 이르게 되는데, 죽음의 타이밍을 인간이 정하는 안락사가, 고통받고 있지만 ‘살고 싶었을‘ 동물을 위한 일인지, 지켜보기 힘든 보호자를 위한 일인지, 이러한 죽음에 대한 선택의 권리가 정말 자신에게 있는지 자문한다.
이 글에서 묵묵히 자신의 업무를 수행하며, 타이오를 ‘영원히 고통에서 벗어나게 해준 사람’으로 나타나고 있는 수의사에게도 이 질문들에 대해 대답하는 것은 매우 힘든 일이며, 수의사라는 직업이 갖는 가장 아이러니하고 어려운 순간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타이오의 죽음은 저자의 일상을 흔들어 놓았고, 매순간 느껴지는 공허함과 상실감이 글 속에 나타난다.
‘부엌에 있는 바구니를 잠자리로 삼았던 개’가 이제 사라졌으므로, 밤에 부엌으로 가면서 소리가 나지 않을까 염려하지 않아도 된다고, 하지만 그러한 염려가 내겐 더 행복한 것이었을 것이라고 슬퍼하면서, 네가 없으니 중심을 못 잡겠다고 나즈막히 하소연 하면서, 그리고 꿈속에서 타이오를 다시 한번 떠나 보내기도 하면서, 저자는 서서히 부재의 슬픔으로부터 자신을 일으켜 세운다. 그러면서 ‘살아감’에 대한 의미를 자문한다.
저자는 우리가 생에서 겪는 상실 ㅡ 타자뿐 아니라 자기 자신의 일부분, 혹은 모든 것을 잃는 것 ㅡ 로부터 살아남는 것이 우리의 삶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우리를 사랑하는, 사랑할 마음을 지닌 대상을 사랑’하자고, 이를 통해서만 ‘우리는 우리 자신을 얻을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우리는 살고 있다고 믿지만 사실은 살아남고 있을 뿐이다. 우리는 꽃들, 가축들, 우리의 부모들을 잃고도 살아남는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잃고도 살아남는다. 생존하는 동안 육신의 여러 부분들이 우리에게서 벗어나지만 그래도 우리는 살아남는 것이다. 훗날 우리는 미래에 대한 꿈과 추억들을 잃고도 살아남는다. 그러고서도 우리는 ‘산다’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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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의지하고, 나를 위로했던, 함께 살아가던 존재의 사라짐을 통해 저자와, 저자의 글을 읽는 우리는 깊은 슬픔을 느끼고 오히려 당연하게 여기고 있던 삶의 의미에 대해, 행복에 대해 자각할 수 있게 된다.
보호자로서, 수의사로서, 동물의 존재, 그리고 이들의 죽음은 우리의 머리와 마음에 어떻게든 흔적을 남기고, 삶은 그러한 흔적들로 채워질 것이다.
그저 살아남기 위해서가 아닌, 진정 살아가기 위해 우리가 잃지 말아야할 존재들과 가치에 대해 생각해보게 하는 책이다.
주설아 (서울대학교 수의인문사회학교실 박사과정)
한국수의교육학회가 2021년을 맞이해 매월 수의사, 수의대생을 위한 추천도서 서평을 전달합니다.
– 2월 천개의 파랑 (천선란) : 서평 보러가기
– 3월 고기로 태어나서 (한승태) : 서평 보러가기
– 4월 티마이오스 (플라톤, 옮긴이 천병희) : 서평 보러가기
– 5월 어느 개의 죽음 (장 그르니에, 옮긴이 지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