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죽음이 삶에게 말했다 (지은이 김범석 / 흐름출판)
영원한 건 절대 없다더니. 나도 젊다고 하기엔 조금 어색한, 어느덧 40대 중반이다. 환자들의 ‘죽음’들 앞에 설때마다 만감이 교차하는 직업인 수의사. 정작 나의 가족들이나 나의 ‘죽음’에 대해서는 깊게 생각해 보지 못했었다.
얼마전 암으로 투병하시던 어머니를 간병하면서 간접적이나마 어머니의 심경을 헤아려 보고 싶었고, 이해해 드리고 싶었다. 책을 읽은 시점은 정작 어머니가 떠나시고 난 후였지만 말이다.
서울대학교 암 종양내과 전문의인 김범석 교수는 그간의 자신이 겪었던 뇌리에 남는 사례들을 이책에서 총 4부에 걸쳐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다.
1부 예정된 죽음 앞에서
시한부 선고를 받은 암환자들의 죽음을 목전에 두고 각기 다른 방식으로 반응한다.
죽음을 비교적 쉽게 받아들이거나 또는 인정하지 못하는 이들, 혹은 생에 끝내지 못한 그 무언가를 매듭짓고 싶어하는 모습을 다양한 사례를 들어 이야기한다.
수의사로서, 그리고 암을 앓는 반려동물들의 진료가 많은 나는 내 환자들의 보호자들의 모습이 함께 투영되었다. 내 환자들이 말을 할 줄 안다면 어떤 모습일지도 상상해 봤다.
죽음을 인정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분노와 자신의 삶에 성실했던 모습에 대한 아이러니한 회한.
혹은 ‘신은 열심히 산 나에게 왜? 하필 나여야 하지?’ 와 같은 태도부터 치료에 성실히 임하면서 조금씩 꾸준히 죽음을 준비하는 분들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환자들의 모습을 통해 보게 된 것은 ‘죽음’이라는 막연한 두려움이 구체화되었을 때, 남은 인생은 또 어떤 모습으로 살게 될 것인가에 관한 이야기다.
과연 나는? 나에게 닥친다면 나는 어떠한 모습일까? 지난 날의 내 모습을 잘 받아들일 수 있을까? 아니면, 열심히 살았던 지난날의 결과물이라며 암과 함께 그 위에 나의 ‘분노’를 얹어 더 힘든 싸움을 하게 될까?
“초반에 호기롭게 항암치료를 하지 않겠다고 이야기하는 환자들을 보면 안타깝다. 과연 저 마음이 변하지 않을까? 나중에 악화돼서 고통스러워지면 그때가 돼서야 항암치료를 받겠다고 하지는 않을까? 당장 항암치료로 인한 불편이나 고통은 피할 수 있겠지만 나중에 종양이 커지면 그로 인한 고통은 결코 피할 수 없을 텐데….” – 본문 중
2부 그럼에도 산다는 것은
이제 암은 의료기술의 발달과 함께 ‘관리’하며 살 수 있는 질병이 되어가고 있다. 물론 암의 종류와 정도에 따라 다르겠지만 말이다. 조기 발견도 가능한 몇몇의 암들은 격렬한 치료 후 일상생활을 또 영위해 가야 한다.
2부에서는 암 선고 이후 치료와 함께 직장생활, 학교생활, 결혼, 혹은 취직 준비, 일상 가정생활을 영위해 나가는 등 여느 사람과 다를 것 없는 생활을 지속함에 있어 그들만의 고충과 삶의 대한 감사 혹은 삶에 대한 태도의 변화 등에 대한 저자의 환자들의 사례를 들고 있다.
큰 일 앞에 흔들림 없이 산다는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 가야 한다는 것. 한켠에 암이라는 동반자를, 내키지 않지만 같이 살아 가야 한다는 것. 이러한 삶을 보여준다.
생각해보면 주변의 시선들이 오히려 그들에게는 암보다 더한 부담이 되지는 않았을까? 일상을 영위하는 대신 자연을 벗 삼아 매일 등산하고 ‘쉬면 어떻겠냐’는 나의 제안을 거절하시고 열심히 문인활동을 이어 나가신 엄마를 떠오르게 했다.
암과 ‘함께’ 사는 일. 그것 만으로도 일상에 큰 균열이 생겼을 것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열심히 내 생을 살아가겠노라고 결심하는 환자들 곁에 그 뜻을 지지하고 기꺼이 함께 그 길을 같이 가 줄 가족, 친구 혹은 동반자가 있다면 우리 주변에 적지 않은 암 환자들이 살아가기에 조금은 더 편한 ‘일상’들이 되지 않을까?
“진정한 긍정은 결과물이 아니라 한 방울 한 방울 떨어지며 천천히 스며드는 과정임을 깨닫는다. 하루하루 살아나가는 태도 안에 있는 것임을 생각한다. – 본문 중
3부 의사라는 업.
‘수의사’로서의 업과 교차점이 많은 부분이었다. 내가 만나는 분들도 참 다양하다.
처음부터 팀워크가 잘 맞아 반려동물 환자들을 치료하는데 집에서 그리고 병원에서 각자 맡은 역할을 해 가는데 크게 어려움 없이 원활하게 진행할 수 있는 환자들, 혹은 치료과정을 잘 함께 하다가 환자가 죽음에 이르렀을 때는 받아들이기 어려워하는 분들.
혹은 환자가 컨디션이 좋았을 때는 치료를 하지 않겠다고 하다가 컨디션이 나빠지고 나서야 치료를 선택해서 치료가 어려울 때 시작하는 분들 등등…
다양한 믿음과 생각들로 다 다른 분들이지만 분명한 공통점이 있다. 나의 많은 환자들 중 하나인 이 아이는 그 보호자 분께는, 더 나아가 그 가족에게는 세상에 둘도 없는 사랑하는 반려동물이라는 점이다.
이 책에서도 저자는 다양한 생각과 믿음으로 치료에 임하는 환자들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이 부분을 읽다 보면, 머릿속에 나의 몇몇 보호자분들이 떠오른다. 또 한편으론, 아픈 환자들을 끊임없이 치료해야 하는 의사로서의 professionalism에 관한 부분은 많은 공감이 갔다. 나부터 건강해야 환자들에 대한 열정이 식지 않는다는 단순하지만, 중요한 사실!
“나를 가장 먼저 돌볼 사람은 나뿐이다. 스스로를 보살필 수 있을 때 남을 돌볼 수 있는 능력과 여력이 생긴다. 이타적이기만 하려다가 스스로를 돌보지 못해서 다른 사람도 돌보지 못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한 일이 아니다.” – 본문 중
4부 생사의 경계에서
‘인간의 존엄성’. 당연하게 여기며, 깊이 생각해 보지 않았던 약간은 추상적인 부분이었다. 얼마전까지는.
인간의 존엄성이란 단어를 깊게 생각해 본 분이 있다면, 아마도 병원에서 가장 많이 떠올리시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을 한다. 나 또한 그랬으니까.
우리나라의 ‘연명의료결정법’은 2018년 2월 이후에 시행되었다고 한다. 이전에는 무조건 연명을 위한 치료를 실시했었다고 하니.. 많은 환자와 보호자에게는 더 힘든 시절이 아니었을까?
나에게 만약 연명 의료를 결정해야 하는 순간이 온다면? 나는 기꺼이 연명치료를 포기하겠다. 조금이나마 인간의 ‘존엄성’을 지킬 수 있는 길이라 믿기 때문이다.
2018년 2월 이전에 병원에서 가까운 분을 떠나 보낸 경험이 있는 사람들은 더욱 가슴을 치며 읽게 될지도 모르겠다. 여러가지 의미에서.. 책 속의 ‘최선을 다하는 것이 최선이었을까’라는 소제목이 유독 가슴을 울린다.
‘존엄한 죽음은 무엇으로 이루어지는가? 사는 것이 죽는 것보다 고통스러운 마지막 순간에 의사로서 진정 환자를 위하는 일은 무엇인가’ – 본문 중
마치며
주변에 암 진단을 받은 가까운 사람들이 있다면. 혹은 내가 그 본인이라면. 그 마음을 조금이나마 짐작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 줄 것이다.
혹은 임상수의학을 하며, 매일 환자들을 만나야 하는 수의사로서도, 한 번쯤 읽어보면 공감대가 형성될 만한 부분이 많을 것이다.
오늘도 나는 소망한다. 내 환자들이 그리고 나 자신에게도 한번 닥칠 죽음이 ‘조금은 편한 죽음’이기 되기를 말이다.
서경원 (서울대학교 수의과대학 내과학교실)
한국수의교육학회가 2021년을 맞이해 매월 수의사, 수의대생을 위한 추천도서 서평을 전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