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에 대한 예의 (지은이 권석천, 출판사 어크로스)
처음 원고를 부탁받았을 때는 늦여름 휴가를 막 출발하면서였다. 수의교육학회에서 읽고 있는 책 중 하나를 추천 도서로 서평을 써 줄 수 있냐는 의뢰를 처음 받았을 때 순간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서평, 다시 말해 독후감… 허. 언제 마지막으로 써 보았지?
이 소식을 듣고 있던 아내는 순간 “풋” 웃었다. 인문학 전공자인 아내는 내가 글을 얼마나 두서없이 엉망으로 쓰는지 잘 알고 있어서다.
어떤 부탁인지 어느정도 듣고 하겠다고 하고 나니 바로 마음이 무거워졌다. 우선 어떤 책의 서평을 써야 할지 결정하는 것부터가 짐이 됐다.
* * * *
내가 좋아하는 서점이 두 곳 있다. 둘 다 동네서점으로 유명한,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아는 곳이다. 한 곳은 속초에, 다른 한 곳은 제주도에 있다.
서울에 사는 내가 동네서점을 가기 위해 이 먼 곳을 간다는 것이 웃픈 일이지만, 이 두 곳은 베스트셀러만 즐비한 서울 대형 서점과는 달리 나의 식성(?)에 맞는 책으로 디스플레이 되어 있다. 그래서 좋다.
속초에서 책 제목이 좋아 산 책이 이번 휴가에서 나와 동반할 책, 바로 권석천님의 [사람에 대한 예의]다.
나는 에세이는 잘 읽지 않는다. 다른 사람 생각의 흐름을 훔쳐보는 느낌, 저자의 생각에 내 생각을 훈련받는 느낌이 싫어서다.
그런 내가 이 에세이를 읽기 시작한 건 온전히 책 제목 때문이다.
‘<사람에 대한 예의>라, 나는 어떤 사람이었지? 모든 사람들에게 최소한 예의를 지키고 있을까? 혹시 학생들 그리고, 주변에서 날 도와주는 사람들에게 당연하게 부탁하는 일들이 사실은 내가 해야 하는 것이 아니었을까? 적어도 부탁해야 하는 일을 명령조로 한 건 아닌가?’
이 책은 에세이지만, 문장이 명료하다. 문학적인 느낌이 별로 없다. 대신 우리 사회에서 최근에 있었던 일들이 많이 나온다. 영화 이야기도 많다. 아마 저자가 기자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인지 나처럼 문학적인 문장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머리로도 이 책은 이해가 된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쉽게 읽어진다는 말이 맞다. 나는 문학책은 정말 어려워한다. 아름다운 말로 수놓은 주옥 같은 글들은 읽어도 무슨 뜻인지 이해가 안 간다. 사실 심각하다. 많이 부끄럽지만, 그래서 고전을 잘 읽지 않는다.
저자는 기자출신이다. 그래서일까? 이 책은 에세이 같지 않다. 그냥 기사를 읽는 느낌이다. 그래서 좋다. 사실적 표현과, 담백한 문장, 그리고 늘어지지 않는 글들이 단숨에 책을 읽게 만든다. 에세이인데 재미가 있다.
책의 내용은 전반적인 우리 사회의 부조리, 갑질, 막말 등 바로 어제 뉴스에서 본 기사의 논평 같은 느낌이다. 이러한 내용을 영화, 기사 그리고 자신의 기자생활에서 이야기를 불러내어 담담하게 풀어낸다.
대부분의 이야기가 내가 살아오면서 TV로 신문으로, 라디오로 그리고, 영화로 보았던 일들이다. 그리고, 기자여서 볼 수 있었던 뒷 애기들이 숨어 있다. 훔쳐보는 느낌도 든다.
“B의 취중 발언을 A에게 그래도 확인할 순 없었다. ‘OOO 사건 재판하실 때 B와 의견 충돌이 있었느냐’고 물었다. A는 그런 일이 전혀 없었다고 했다. A는 기억을 못 하는 걸까. 기억 못 하는 척하는 걸까. 아니면, B가 잘못 기억하고 있는 것일까.”
이 문장을 읽는 순간 너무 자주 보는 광경이어서 “풋”하고 웃었다. 크게는 선거를 치르고 있는 우리 사회에서, 작게는 진료 중 보호자와의 대화에서, 나는 이런 일들을 너무나 많이 겪고 있다.
그리고 이런 일이 생기지 않도록 우리는 동의서를 받고, 서약서를 받고, 기록을 해놓고, 녹화를 하고, 녹취를 한다. 하지만, 디지털을 이용한 기록도 너무나 쉽게 왜곡이 되는 현실에 망연자실하는 건 왜일까?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그러나 물증의 함정이라는 것도 있다. 물증이 모든 것을 말해주지 않는다. 요즘 방송 기자들이 하는 일 중 가장 중요한 게 CCTV나 블랙박스 영상을 확보하는 것이다.”
“얼마나 위험한 일인가. 카톡과 문자도 자신의 주장과 알리바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조작할 수 있다. 눈으로 보이는 상황 자체를 의도적으로 만들어낼 수도 있다. 물증이 오히려 진실을 비틀게 되는 것이다”
요즘 들어서 왜 이 문장이 와 닿을까. 심심찮게 녹취를 들이밀면서 진실을 왜곡한다. 이제는 상대와 애기하기 전에 녹음장치를 검사해야 하나? 오죽하면 녹음을 금지한다는 문구를 붙여 놓아야 하는 것인지…
“악착같이 무언가를 쓰고 또 쓰는 건 그래서다. 고소장을 쓰고, 공소장을 쓰고, 판결문을 쓰고, 항소이유서를 쓰고, 기사를 쓰고, 보고서를 쓰고, 논문을 쓰고, 회고록을 쓰고, 소설을 쓰고, 시를 쓴다.
인간의 어찌할 수 없는 한계들 속에서 주장으로, 반박으로, 재반박으로 공통의 진실을 찾아가는 과정 자체가 진실인 것이다. 우리가 계속해서 무언가를 쓰고 있는 그 순간, 무엇이 진실인지 고민하는 그 순간, 반딧불이처럼 작은 진실들이 깜박거리며 캄캄한 밤을 밝히고 있는 것이다.”
제발 공통의 진실을 찾아가는 사회가 되었으면 한다. 순간을 넘어가기 위해, 또 자신의 주장만 관철시키기 위해, 있지 않는 진실을 스스로 믿는 ‘흑화’된 사람이 되어가지 않기 위해서 나는 이 책을 내 주변인들에게 권해 본다.
김준영 교수 (건국대학교 수의과대학)
한국수의교육학회가 2021년을 맞이해 매월 수의사, 수의대생을 위한 추천도서 서평을 전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