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의사도 설명의무 있다 – 최근 판례를 중심으로> 최재천 변호사
동물병원 수의사의 ‘설명의무’에 대해 얼마 전 4차례에 걸쳐 집중적으로 소개한 적이 있다.
흥미롭게도 지난 2월 10일 서울중앙지법에서, 아직 1심판결이긴 하지만, 의사의 설명의무처럼 수의사에게도 설명의무를 인정한 판결이 나왔다.
시의도 적절하고, 법적 의미도 강렬하고, 선례적 가치가 있어 판결을 중심으로 설명해보겠다.
* * * *
2020년 7월 반려견주가 반려견의 눈병 치료를 위해 강남의 한 동물병원을 찾아 안약 처방을 의뢰했다.
병원 소속 수의사는 ‘각막 손상이 극심하여 실명할 우려가 있으므로, 제3안검 플랩술을 시행할’ 것을 권유했고, 견주는 이에 동의했다.
같은 날, 반려견에게 아세프로마진(진정제) 0.02mg을 투여한 후 수술을 시행했는데, 수술 직후 호흡곤란증세를 보였고, 곧이어 사망했다.
쟁점은 크게 두 가지였다. 첫째, 처치과정에서의 과실. 작은 쟁점이 여럿 있었다.
수의사가 전신마취를 위해 필요한 심장상태를 제대로 확인했는지, 수술 직후 반려견이 호흡곤란 상태에 빠졌음에도 적절한 응급조치를 취하지 아니하였는지에 대해 법원은 수의사의 과실을 인정하였다.
둘째, 설명의무 위반이라는 과실. 지난번 기고에서 설명했듯이, 의사의 환자에 대한 설명의무는 대단히 광범위하고, 과실의 범주도 그 중요도에 따라 다양하게 평가하는 게 우리 법원의 입장이다.
그렇다면 동물병원, 그러니까 수의사의 반려동물주에 대한 설명의무는 어떻게 될까. 법원은 의사의 환자에 대한 설명의무에 대한 법리를 그대로 끌어와 인정했다.
“고도의 전문성을 필요로 하는 의료행위로서의 유사성과 동물에 대한 의료행위에 관하여도 동물 소유자에게 자기결정권이 인정되어야 하는 점 등에 비추어 (환자에 대한) 설명의무의 법리는 동물에 대한 의료행위에 있어서도 그대로 유추적용할 수 있다”고 판시했다.
당연히 동물병원 측은 각종 합병증과 후유증 등 위험성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는 내용이 기재된 ‘수술(검사/마취)동의서’에 반려견주에 설명이 있었다는 점을 들어 충분한 설명을 이행했다고 항변했다.
하지만 법원은 “형식적인 것이니까 그냥 사인만 하면 된다”고 설명을 들었다는 반려견주의 재항변을 인정하면서 이 사건 수술에 관하여 설명의무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았고, 이로써 반려견주의 자기결정권이 침해되었으므로 결론적으로 수의사는 설명의무를 이행하지 않은 것이라고 판시했다.
또한, 동물병원측은 수의사의 사용주로서 손해배상책임이 있다는 것을 인정했다.
결국 법원은 수술 과정에서의 책임과 설명의무의 책임이라는 두 가지 책임 모두를 인정한 셈이다. 수의사가 잘못했고, 수의사를 고용하고 있는 동물병원은 사용자로서의 민사상 책임을 져야 된다고 판시한 것이다.
청구액수도 쟁점이었다. 판결문을 기초로 추정해보면, 사망한 반려견을 A라는 소유자와 B라는 여자친구가 공동 양육했던 것으로 보인다. 물론 병원은 A가 데려갔다. 그래서 A는 위자료와 장례비 조로 1,648만 5천 원을, B는 위자료로 1,500만 원을 청구했다.
법원은 A에게 위자료 200만 원과 장례비로 33만 원을 인정했다. B는 동거인으로 전입신고 되어있다는 점 말고는 정신적인 충격을 받았다고 인정하기에 부족해 B의 청구는 받아들일 수 없다고 결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