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리티지로펌] 수술동의서에 `민형사상 이의제기 않겠다` 서약한다고?

수의료계약에 있어서 민형사상 일체의 이의를 제기하지 않겠다는 서약서의 효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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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제소 합의와 관련한 법률적 이슈> 변호사·수의사 김성철

동물병원 이용자의 알권리와 진료 선택권을 보장하기 위한 개정 수의사법이 지난 1월 4일 공포됐습니다.

수의사에게는 동물의 수술 등 중대진료를 하는 경우에 동물 소유자 또는 관리자에게 설명하고 동의를 받을 의무를, 동물병원 개설자에게는 수술 등 중대진료의 예상 진료비용을 사전에 고지할 의무를 부여했습니다.

진찰 등의 일정한 진료비용은 이용자가 알기 쉽도록 게시할 의무도 부과했습니다.

수의사법 개정에 대한 후속 조치로서 주무관청인 농림축산식품부는 지난달 하위 법령인 수의사법 시행규칙 일부개정령 안(案)을 입법예고한 바 있습니다.

해당 개정안에는 동물병원 수의사가 반려동물에 대한 수술 등의 중대진료행위에 앞서 그 보호자에게 ‘수술등 중대진료 및 전후에 발생할 수 있는 어떤 일에 대해서도 일체의 민형사상 이의를 제기하지 않을 것을 서약’하도록 하는 ‘수술등중대진료 동의서’의 서식을 담고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의사와 환자 간의 의료행위에 앞서 체결하는 의료계약에 있어서도 수술 등의 진료행위에 따라 발생할 수 있는 후유증 등에 관하여 일체의 이의를 제기하지 않겠다는 서약서의 효력을 인정하지 않는 법원의 입장을 고려할 때, 이번 개정안은 상당히 이례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에 이번 시간에는 이른바, ‘부제소 합의’의 유효성 등 그 법적 이슈에 대해서 알아보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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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으로 어떠한 분쟁에 대하여 당사자 간에 타협이 이루어진 이후, “당해 사건과 관련하여 乙(을)은 향후 甲(갑)에게 민·형사상 일체의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는 식의 문구를 넣은 합의서를 작성하게 되는데, 이와 같은 합의가 전형적인 ‘부제소 합의’가 됩니다.

이와 같은 부제소 합의는 계약서의 형태로 작성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서약서’, ‘동의서’의 형태로도 얼마든지 작성할 수 있습니다.

또한, 분쟁 상황이 발생하기 전이라도 ‘계약자유의 원칙’상 당사자는 얼마든지 ‘부제소 합의’를 할 수 있습니다.

만약 당사자 중 1인이 부제소 합의를 위반하여 법원에 소송을 제기한 경우, 상대방이 부제소 합의의 존재를 주장하면, 법원은 권리보호의 이익이 없다는 이유로 소 각하(소 제기의 요건을 갖추지 못하여 사건에 대한 본안 판단 절차도 거치지 않은 채 곧장 재판을 종결하는 것)하게 되는 효력이 있습니다.

그래서 법원은 당사자의 권리보호 차원에서 향후 예상되는 분쟁 내지 현재 진행 중인 분쟁의 당사자가 체결하는 부제소 합의가 유효하기 위한 요건을 엄격하게 보고 있습니다.

부제소 합의의 유효성이 문제가 된 사건들과 관련하여 그동안 법원에서 내려진 판례를 종합하여 볼 때, 부제소 합의가 유효하기 위한 요건은 크게 ① 부제소 합의 내용이 당사자가 처분할 수 있는 권리에 관한 것일 것, ② 포괄적 합의가 아니라 특정한 권리관계에 대한 합의일 것, ③ 민법에서 정한 무효 내지 취소 사유가 없는 합의일 것, ④ 합의 시에 예상할 수 있는 상황에 관한 것일 것 등 이상 4가지로 요약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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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부제소 합의 내용이 당사자가 처분할 수 있는 권리에 관한 것일 것

우선 첫 번째 요건과 관련하여, 부제소 합의는 ‘당사자가 처분할 수 있는 권리에 대한 것’이어야 합니다.

예를 들어, 형사상 고소권은 공법상의 권리로서 미리 포기될 수 있는 권리가 아닙니다. 그렇다면 부제소 합의서상으로 ‘형사상 일체의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라는 내용은 고소권도 포기한다는 의미이고 이는 공법상의 권리로서 자유로이 처분할 수 없으므로 결국 형사상 일체의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는 문구는 무효가 됩니다.

참고로 폭행, 명예훼손 등 형사 사건에서는 당사자 간의 합의점을 찾고 그 피해자가 가해자에 대한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는 의사표시를 하는 내용을 담은 합의서를 체결하게 됩니다. 이와 같은 합의도 일종의 부제소 합의라고 볼 수 있는데, 이는 형사상 권리를 미리 포기하는 것은 아니므로 유효한 합의입니다.

 

② 포괄적 합의가 아니라 특정한 권리관계에 대한 합의일 것

두 번째 요건과 관련하여, 당해 사안에서와 같이 ‘수술등중대진료 및 전후에 발생할 수 있는 어떤 일에 대해서도 일체의 민형사상 이의를 제기하지 않을 것을 서약’은 포괄적인 부제소 합의에 해당하여 무효가 될 것입니다.

이와는 달리 반려동물에 대한 수술의 후유증과 관련하여 반려동물 보호자에게 배상해주면서 “반려동물에게 발생한 후유증과 관련하여 당해 합의서에서 정한 합의사항에 대해서 추후 이의를 제기할 수 없다”는 취지로 권리관계를 특정하여 부제소 합의를 하는 것은 유효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③ 민법에서 정한 무효 내지 취소 사유가 없는 합의일 것

세 번째 요건과 관련하여, 민법에서는 상대방의 궁박, 경솔 또는 무경험을 이용하여 자기의 급부에 비하여 현저하게 균형을 잃은 반대급부를 하게 함으로써 부당한 재산적 이익을 얻는 행위를 불공정한 법률행위 또는 폭리행위로 보아 무효라고 규정하고 있습니다(민법 제104조).

또한 자유로운 의사가 아닌 강요 등에 의한 합의였거나, 착오로 의사의 불일치가 있는 것이 명확한 경우와 같이 의사표시의 하자가 있는 경우를 취소 사유로 규정하고 있습니다(민법 제109조 내지 제110조).

부제소 합의에 무효 사유, 의사표시의 하자와 같은 취소 사유가 없어야 유효한 합의가 됩니다.

 

④ 합의 시에 예상할 수 있는 상황에 관한 것일 것

부제소 합의가 유효하기 위한 마지막 요건으로, 합의의 당사자가 하는 합의의 내용은 ‘합의 시에 예상할 수 있는 상황에 관한 것일 것’이어야 합니다.

일반적으로 의료사고 피해자가 병원과 합의를 하면서 “추후 이 사건 의료사고와 관련된 모든 권리를 포기하고 어떠한 이유로든 민형사상 이의를 제기하지 아니한다”는 합의서를 작성했더라도, 합의 당시 당사자들이 예측하지 못한 중대한 후유장해가 발생했다면, 다시 추가적으로 손해배상을 요구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이 법원의 일관된 입장입니다.

이와 같은 법원의 입장에서 볼 때 수술 등의 중대한 수의료행위가 있기 전에 해당 수의료행위로 환축에게 어떠한 후유증 내지 장해가 발생할지 예상할 수 없는 단계에서 수술등 중대진료 및 전후에 발생할 수 있는 어떤 일에 대해서도 일체의 민형사상 이의를 제기할 수 없도록 하는 내용의 서약서는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그와 같은 동의서 작성 당시에 반려동물의 보호자가 예상할 수 없는 상황에 관한 것에 관한 합의일뿐만 아니라, 그와 같은 권리의 사전 포기로 인하여 반려동물 보호자의 권리행사가 극심하게 제한된다는 점을 고려할 때, 그러한 서약서는 향후 법원으로부터 무효라는 판단을 피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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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기에서 설명해드린 사항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때, 최근 농림축산식품부가 입법예고한 수의사법 시행규칙 일부개정령 안(案)에 포함된 ‘수술등중대진료 동의서’ 서식은 부제소 합의가 유효하기 위한 요건을 고려하여 수정되어야 할 것입니다.

이와 별개로 동물병원을 운영 중이신 수의사분들께서도 기존에 수술 전에 반려동물 보호자로부터 수술에 관한 동의서에 ‘민·형사상 일체의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는 식의 문구를 넣으셨다면 삭제 내지 변경을 통하여 서약서 자체가 무효가 되는 불측의 상황을 미연에 방지하실 것을 조언 드리며 글을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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