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리티지로펌] 수술동의서 조항 일부가 무효라면 전부 다 무효인가
민형사상 일체의 이의를 제기하지 않겠다는 조항이 무효라면 나머지 조항의 효력은?
<동의서·서약서·계약서 등의 조항 일부가 무효일 경우의 법률적 이슈> 변호사·수의사 김성철
지난 기고문(바로가기)에서는 최근 농림축산식품부가 입법예고한 수의사법 시행규칙 일부개정령 안(案)에 포함된 ‘수술등중대진료 동의서’ 서식의 내용을 다뤘습니다.
동물병원 수의사가 중대진료행위에 앞서 그 보호자에게 ’수술등 중대진료 및 전후에 발생할 수 있는 어떤 일에 대해서도 일체의 민형사상 이의를 제기하지 못하도록’ 작성시키는 서약은 향후 법원으로부터 무효라는 판단을 피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점을 살펴본 바 있습니다.
해당 ‘수술등중대진료 동의서’에는 반려동물의 보호자가 ‘수술등 중대진료 및 전후에 발생할 수 있는 어떤 일에 대해서도 일체의 민형사상 이의를 제기하지 않을 것을 서약’하는 내용뿐만 아니라(부제소 합의 조항) 다른 사항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수의사로부터 수술등 중대진료에 관하여 설명을 들었다’(설명의무 조항), ‘수술 등 중대진료와 관련한 수의학적 처리를 담당 수의사에게 위임한다’(위임 조항)라는 내용입니다.
만일 반려동물의 보호자가 환축에 대한 수술에 앞서 당장 수의료행위를 받지 아니하면 생명이 위태롭다는 급박한 상황에 처하여 수의사가 제시하는 수술 동의서나 진료 설명서 등의 내용을 자세히 검토할 정황도 없이 동의하였다면 어떨까요?
그 수술 동의서나 진료 설명서는 보호자가 그 내용의 이익 또는 불이익을 따질 경황이 없이 형식적으로 작성된 것이므로 보호자의 진정한 동의가 포함되었다고는 할 수 없어, 설명을 들었음을 확인하는 서약서 자체에 무효 사유가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보호자가 수의사로부터 수술 등에 관한 설명을 들은 것이 사실인 경우라면 ‘수의사로부터 수술등 중대진료에 관하여 설명을 들었다’라는 서약은 일응 유효하다고 평가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앞서 살펴본 것처럼 수술등 중대진료와 관련하여 보호자가 수의사에게 일체의 민형사상 이의를 제기하지 않겠다는 서약이 무효라면, 설명을 들었다는 조항도 당연히 무효로 되는 것이 아니겠냐는 의문이 들 수 있습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동의서·서약서·계약서(동의서나 서약서도 계약서의 일부를 구성한다고 볼 수 있어, 이후 ‘계약서’로 통일하여 설명합니다) 등의 조항 일부가 무효라 하더라도 다른 조항은 유효가 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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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법은 “법률행위의 일부분이 무효인 때에는 그 전부를 무효로 한다. 그러나 그 무효부분이 없더라도 법률행위를 하였을 것이라고 인정될 때에는 나머지 부분은 무효가 되지 아니한다”라고 규정하고 있습니다(민법 제137조 참조).
계약의 일부가 무효라 하더라도 나머지 부분이 유효할 수 있다는 것이죠.
즉, 일부무효에 관하여 민법은 법률행위(대표적인 것이 ‘계약’입니다) 전부가 무효로 됨이 원칙이지만, 예외적으로 당사자 쌍방이 법률행위 당시 일부무효임을 알았더라도 나머지 부분에 대해 법률행위를 하였을 것이라고 인정되는 경우라면, 나머지 부분은 유효라고 하여 이른바 ‘일부무효’의 법리가 적용될 수 있음을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위와 같은 민법 제137조의 일부무효 법리는 강행규정(당사자의 의사에 의해 그 적용을 배제할 수 없는 규정)이 아니라 임의규정(당사자의 의사로 적용을 배제할 수 있는 규정)입니다.
따라서 계약을 체결하는 당사자 간의 약정으로 배제할 수도 있습니다. 일부무효 사유 발생 시 나머지 부분의 유효 여부에 대해 당사자 간에 약정으로 미리 정해 놓을 수도 있는 것입니다.
다만, 위와 같이 민법 제137조의 단서인 예외조항이 적용되어, 일부무효 부분을 제외한 나머지 부분만은 유효로 되기 위해서는 여러 조건이 있습니다.
일단, 법률행위의 일체성이 인정되면서도 그 일체의 법률행위가 가분적(可分的)이어야 합니다. 무효인 일부와 나머지 부분을 나눌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 후, 당사자가 이러한 법률행위 중 일부가 무효임에도 불구하고 나머지 부분만으로 법률행위를 했겠는지에 대한 가정적 의사를 탐구합니다. 전체의 법률행위를 했을 당시를 기준으로 나머지 부분만이라도 법률행위를 했을 것이라면 나머지 부분만은 유효가 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일부무효’의 법리는 우리 민법에만 있는 것은 아니고, 영미법 등에서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해외 업체와 국제계약서를 체결하게 되면 통상 들어가는 일반조항에 주의적으로 ‘분리가능성(Severability)’ 조항을 두어 계약서상 규정들 일부가 무효가 되더라도 나머지 부분을 유효로 보아 계약을 유지하고 이행할 수 있도록 하고 있습니다.
이 같은 원칙을 우리의 사안에서 문제가 되는 ‘수술등중대진료 동의서’에 적용해보겠습니다.
반려동물의 보호자는 한 장의 동의서를 작성하였지만(일체성), 세부적으로 그 동의서는 부제소 합의 조항뿐만이 아니라, 설명의무 조항 및 위임 조항으로 나누어지는 바(가분성), 첫 번째 요건은 충족됩니다.
나아가 해당 동의서를 작성하는 반려동물의 보호자 입장에서는 수술등 중대진료 및 그 전후에 발생할 수 있는 어떤 일에 대해서도 일체의 민형사상 이의를 제기하지 않겠다는 서약이 무효가 되더라도 특별히 수의사에게 수술 등 중대진료를 맡기지 않겠다거나 그에 관한 설명을 들었다는 점을 부정할 사정은 없을 것입니다.
결과적으로 일부무효 법리가 적용될 수 있는 요건을 모두 충족하여 ‘수술등중대진료 동의서’상의 설명의무 조항 및 위임 조항은 유효하다고 평가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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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기에서 설명해드린 일부무효의 법리를 고려할 때, 법률적으로 효력을 가지기 어려운 ‘부제소 합의 조항’을 수술 동의서에 넣어서 반려동물의 보호자로부터 동의를 받고 계시는 수의사분들의 경우, 나머지 설명의무 조항 및 위임 조항까지 전부 무효가 되는 불이익은 받지 않을 것이라는 점은 분명합니다.
그러나 수의료분쟁을 피하기 위하여 꼭 필요한 전제는 수의사와 반려동물 보호자 간의 ‘신뢰관계’라고 생각됩니다.
수의사분들은 보호자와의 신뢰관계를 위해서 정직하고 충실한 설명의무의 이행 및 수의료계약의 체결 등을 통하여 향후 수의료분쟁에 휘말리는 상황을 사전에 방지하실 것을 조언 드리며 글을 마치고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