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국내 사육곰을 구조하고 한국에 민간 곰 생츄어리를 짓고자 ‘곰 보금자리 프로젝트’라는 이름으로 활동하고 있는 단체다.
2018년부터 곰의 보금자리를 만들기 위해 애쓰고 있지만 아직 마땅한 부지도 구하지 못했다. 현재는 강원도 화천의 한 농가에서 사육곰을 매입한 후 농장을 개조하여 곰들을 돌보는 중이다.
2021년에 곰 15마리를 매입했으나 세 마리를 떠나보냈고 최근 화천의 또 다른 농가에서 두 마리를 추가 구조하여 현재는 14마리의 곰들을 돌보고 있다.
매주 서울에서 화천을 오가며 곰을 돌보기 시작한 것이 2년, 상근돌봄활동가를 채용하고 곰들의 일상에 돌봄을 제공한 것이 1년이 다 되어간다.
하지만 곰을 돌볼수록 고민과 궁금증은 한가득 쌓여만 갔다. ‘어떻게 하면 곰을 더 잘 돌볼 수 있을까’ 하는 지극히 기초적인 고민에서부터 건강관리와 먹이급여에 관한 자잘한 의문들까지.
궁금한 것은 많아도 명확한 답을 주는 이는 없었다. 한국에는 야생과 농장의 경계에 걸친 사육곰이라는 존재를 돌봄의 대상으로 바라본 이가 적었기 때문이다.
야생에 살아 마땅한 곰들이 인간의 돌봄 대상이 되었을 때 우리는 그들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이들을 잘 돌보기 위해선 어떤 것들이 필요한지 알고 싶었다.
우리에겐 꿈만 같은 그 생츄어리라는 곳에서는 곰들을 어떻게 돌보며 지내는지 조언과 답을 구하고자 2월 21일부터 8일간의 일정으로 베트남에 다녀왔다.
해외 생츄어리에 견학을 다녀온 것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2018년에도 곰 보금자리 프로젝트 활동가가 열흘 간 동남아시아 곰 생츄어리 세 곳을 견학하며 생츄어리의 시설과 운영, 돌봄을 배우고 돌아왔다.
2019년에는 활동가 한 명이 베트남 곰 생츄어리에서 3개월가량 머물며 생츄어리에서의 곰의 일과, 트레이닝, 행동풍부화가 어떻게 진행되는지 직접 체험하며 경험을 쌓았다.
그러나 이번 견학은 화천에서 직접 곰을 돌보며 곰들의 일상에 관여하는 돌봄활동가들이 생츄어리를 방문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달랐다.
곰을 매일 마주하는 이들이 가지는 의문과 고민은 곰들의 일상에 깊게 맞닿아 있다. 그렇기에 생츄어리에서 보고 듣고 경험하는 모든 것들이 우리가 돌보는 곰들의 삶을 더 나은 방향으로 변화시킬 것이다.
더 나아가 훗날 국내에 곰 생츄어리가 생기고 누군가 사육곰을 잘 돌보는 법에 대해 고민할 때 우리가 그들에게 조언과 답을 전하는 역할을 할 수 있으리란 바람도 가져본다.
탐다오 국립공원(Tam Dao National Park) 내에 위치한 애니멀스 아시아(Animals Asia Foundation)의 생츄어리, 포포즈(Four Paws International)가 운영하는 닌빈 곰 생츄어리(BEAR SANCTUARY Ninh Binh), 캇티엔 국립공원(Cat Tien National Park) 내에 위치한 프리더베어스(Free the Bears)의 생츄어리가 우리의 방문지였다.
생츄어리마다 규모와 운영방식은 다르지만 곰들의 일과는 엇비슷하다.
출근한 직원들이 방사장의 전기울타리를 확인하고 곰들이 가지고 놀 수 있는 커다란 장난감을 배치하고, 방사장 이곳저곳에 먹이를 숨기고 나면 곰들은 방사장으로 나간다.
수천 평의 방사장에는 풀과 나무가 무성하다. 곰들은 이곳저곳 돌아다니며 숨겨진 먹이를 찾고 장난감을 가지고 놀거나 같이 놀고 싶은 상대를 골라 투닥거리며 장난을 친다.
실컷 놀고먹은 곰들은 평상이나 해먹, 잔디밭 등 자기가 원하는 곳에 드러누워 낮잠을 잔다. 스스로 선택하고 결정한 일상을 보내는 곰들의 모습은 이곳이 곰이 곰답게 살아갈 수 있는 곳임을 증명하고 있었다.
우리도 지난해 화천 농가에 ‘곰숲’이라 부르는 작은 방사장을 만들었다. 풀과 나무가 무성한 생츄어리의 수 천평 방사장에 비하면 100평 남짓한 소박한 방사장이다.
곰들이 이용할 만한 구조물은 활동가들이 톱질한 통나무 더미와 끙끙거리며 나른 돌무더기 정도다.
아직 합사 훈련이 부족한 탓에 한 번에 한 마리만 쓸 수 있다. 한 마리가 방사장에 나가있는 동안 나머지 곰들은 4평 남짓한 사육장에서 하루를 보낸다.
사육장 안에서도 할 수 있는 풍부화물을 이것저것 넣어주지만 긴 하루를 버티기엔 역부족이다.
풍부화물을 가지고 놀다가 흥미가 떨어지면 고개를 빙빙 돌리거나 사육장 안을 반복해서 돈다. 너무 오랜 시간 갇힌 공간에서 살아온 탓에 생긴 스트레스로 인한 정형행동이다.
베트남 생츄어리의 돌봄활동가들은 곰들이 방사장에 나가노는 동안 사육장을 청소한다. 청소가 끝나면 방사장에서의 곰들의 행동과 반응을 관찰하며 남은 일과를 보낸다.
같은 곰을 매일 지켜보며 하루의 대부분을 관찰에 할애한다. 어떤 곰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서로 친한 곰은 누구인지, 행동에 불편함이 생기진 않았는지 확인하고 관찰내용에 따라 어떤 곰에게는 더 세밀한 돌봄을 고려한다.
누군가를 돌본다는 것은 그 대상을 자주 그리고 오래 들여다보는 것임을 다시금 깨닫는 순간이었다. 언어가 다른 존재의 뜻을 알 길은 그저 오래 보고 자주 보고 공부하는 것뿐이다.
먹이와 장난감마다 곰들의 반응이 다르고 아프거나 불편한 것이 생기면 행동에 변화가 생긴다.
하루 종일 곰들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순간순간 달라지는 곰들의 반응과 변화가 데이터로 쌓인다. 그 어떤 연구결과보다 값진 자료들이다.
돌봄활동가 세 명이서 청소, 먹이준비, 시설관리를 하는 중인 우리에게 여유로운 관찰이란 비교적 사치스러운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쉬운 마음이 컸다.
세 곳의 생츄어리 모두 베트남 정부가 무상으로 임대한 땅에서 운영하고 있다. 운영·시설·돌봄에 발생하는 비용은 모두 단체의 후원금으로 부담하지만 몇 만평에 이르는 땅을 무상으로 사용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효용이다.
생츄어리 지을 땅을 몇 년째 찾아 헤매도 마땅한 부지를 구하지 못해 난항을 겪고 있는 우리의 눈엔 마냥 부러울 뿐이다.
운영과 돌봄은 운영하는 단체의 몫이지만 정부와의 협업을 무시할 수 없다. 베트남에서는 정부가 곰 구조를 결정하면 단체가 시간과 인력을 내어 구조를 돕고 생츄어리의 방향성에 관해서도 함께 논의한다.
정부의 능력만으로 사육곰 문제를 전부 해결할 수 없고, 그럼에도 정부에게 책임이 있다는 것을 정부가 인식하고 있기에 가능한 운영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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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에 곰 생츄어리를 짓겠다는 마음을 먹고 처음 동남아시아의 곰 생츄어리로 견학을 갔던 것이 2018년이다.
그 당시 한국에는 540여마리의 사육곰이 남아있었다. 5년이 흐른 지금 한국에는 300여마리의 사육곰이 남아있다. 생츄어리는 여전히 지어지지 않았다. 사육곰 문제의 주체와 책임에 대해 논의하는 사이 200여마리의 곰들이 철창 안에서 평생을 보내다 죽은 것이다.
국내에서 곰이 탈출했다는 사고 소식이 주목받을 때마다 ‘아직도 한국에 웅담 산업이 남아있냐’며 비난하는 목소리가 크다. 인간의 몸보신을 위해 살아있는 존재를 가두어 고통을 주는 것이 옳지 않다고 여기는 이들이 많아졌다. 그것이 비윤리적 행위임을 인식하는 사회가 된 것이다.
사육곰 산업 종식에 대한 합의는 마쳤다. 사회도 변화하고 있다. 이제는 행동하고 문제를 해결할 일만 남았다. 제대로 잘 해결하는 방법이 무엇인가 고민할 차례다.
우리 사회가 사육곰 문제를 해결함에 있어서 사육곰을 철창 밖으로 꺼내는 것만으로 갈무리 짓는 것이 아니라 구조한 곰들을 어떻게 돌볼 것인가, 인간이 동물을 착취했던 그 부끄러운 역사를 어떻게 기록하고 성찰할 것인가에 대해 충분히 고민하며 해결해 나아가길 바란다.
머지않은 날에 국내 사육곰 모두가 철창 밖을 벗어날 수 있도록, 그들에게 마땅한 돌봄이 주어질 수 있도록 사육곰 문제해결에 많은 관심과 응원을 간절히 바란다.
글 김민재(곰보금자리프로젝트 활동가) 사진 곰보금자리프로젝트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