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천명선 교수
서울대 수의대 수의인문사회학연구실
■사례
정부가 5년마다 수립하는 <동물복지종합계획>과 축산법은 교배 6주가 지난 임신돈을 관행적 분만틀(gestation stall)에 사육하는 것을 금지하고 돼지 한 마리 당 사육 면적을 늘리도록 했다. 이 조치는 2030년부터는 모든 농장에서 의무화된다.
공무원인 수의사 A는 축산정책위원회의 일원인데, 해당 위원회 회의에서 이 정책이 비현실적이고 축산생산성을 떨어뜨린다는 축산농가의 지속적인 항의와 비인도적인 농장 환경을 변화해야 한다는 동물보호단체 대표 측의 비판 사이에서 혼란스럽다.
수의사 A는 어떤 입장을 취해야 할까?
동물복지는 수의사의 새로운 가치인가?
수의사는 동물의 건강과 복지를 우선 가치로 고려한다. 동물복지(animal welfare)를 우선 가치로 고려한다는 것은 수의 윤리에서 어떤 의미를 가질까?
동물에 대한 대중의 인식이 변화하고 반려동물의 수가 늘어나면서 동물복지는 수의학에 있어 새로운 가치로 떠올랐을까?
그렇게 보기는 어렵다. 동물이 잘 먹고, 움직이고, 스트레스에 노출되지 않도록 하는 것은 동물의 돌봄과 치료가 분리되어 있지 않았던 고대 수의학에서도 중요했다.
예를 들어,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마의학 서적인 <신편집성마의방(新編集成馬醫方, 1399)>은 서문에서 “말은 살아있는 동물인지라 혹 부리고 시킴에 있어 그 몸에 맞지 않거나 물과 풀이 잘 맞지 않아 병이 생기면 … 목숨을 해칠 수 있어 … 말 못하는 동물이 죽음을 면하고 사람이 그 이익을 잃지 않도록 하여 … 백성과 미물(동물)을 사랑하라는 공자와 맹자의 가르침을 실현” 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고 밝히고 있다.
근대적 의미의 수의사는 비교적 짧은 역사를 가진 직업이다. 처음 근대 수의학교육기관이 생겨난 18세기 후반에 그 목적은 명확했다. 국가에 건강한 군마를 제공하고 농업을 황폐하게 만드는 가축전염병을 예방하고 치료하는 전문가를 양성하는 일이었다.
그러나 모든 새로운 직업군이 그러하듯 수의사도 사회에서 자신들의 정당성과 전문성을 인정받아야 했다.
수의학교가 없을 무렵에도 동물을 치료하는 사람들은 존재했다. 이들은 전문교육을 받은 수의사의 도움 없이도 가축의 건강을 유지하고 새끼를 받고 질병을 치료했다. 그렇다면 수의사는 무엇을 차별적인 전문성으로 내세울 수 있었을까?
영국의 사례1)를 참고로 하면, 수의사는 비전문가와 다르게 동물을 잔인하고 비인도적인 방식으로 다루지 않고 인도적이고 의학적인 방식으로 다룬다는 점을 부각시켰다.
동물의 죽음과 질병을 다루는 일은 동물에게 고통을 유발하기 쉬운데 비전문가들은 이 과정을 경험에만 의존하기 때문에 전문가인 수의사에게 맡겨야만 동물에게 주는 피해를 줄일 수 있다는 것이다.
동물학대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높아지던 당시 상황에서 이런 수의사들의 주장에는 힘이 실렸고 동물치료에 대한 전문직의 독점권을 확보하는데 도움을 주었다.
즉, 직업의 근대적 여명기에도 동물복지를 살피는 일은 수의사의 전문성을 확립해 나감에 있어 중요한 요인이었던 셈이다.
<각국의 수의 윤리 강령과 정책에서 동물복지에 대한 수의사의 임무>
•“수의사는 동물의 건강과 복지를 우선적인 가치로 고려하고 지향하여야 한다.” (대한수의사회 수의사의 윤리강령)
•“Veterinarians play an essential role in protecting animal health, animal welfare, public health and the environment by providing a wide range of services.” (European Veterinary Code of Conduct, FVE)
•“Veterinary surgeons seek to ensure the health and welfare of animals committed to their care and to fulfil their professional responsibilities.” (Code of Professional Conduct for Veterinary Surgeons, UK)
•“Being admitted to the profession of veterinary medicine, I solemnly swear to use my scientific knowledge and skills for the benefit of society through the protection of animal health and welfare, the prevention and relief of animal suffering, the conservation of animal resources, the promotion of public health, and the advancement of medical knowledge.” (Veterinarian’s Oath, AVMA)
동물복지와 수의윤리
우리나라 동물보호법에는 동물복지에 대한 정의가 없다. 다만, 동물복지축산을 정의하며 “동물이 본래의 습성 등을 유지하면서 정상적으로 살 수 있도록 관리하는 축산농장(동물보호법 제29조 동물복지축산)”이라고 하여 간접적으로 설명하고 있을 뿐이다.
최근 정부의 동물복지 강화방안(2022)2)은 동물복지를 “건강하고 안락하며 좋은 영양 및 안전한 상황에서 본래의 습성을 표현, 고통, 두려움, 괴롭힘 등 나쁜 상태를 겪지 않음”이라고 정의했다.
이 정의가 동물보호법 또는 동물복지법에 그대로 적용될지는 명확하지 않으나 동물복지를 정책화하는 과정 자체가 가진 윤리적인 함의를 반영하고 있다.
동물복지의 개념은 2차세계대전 이후 집약적 축산이 증가하면서 정립되기 시작했다. 루스 해리슨(Ruth Harrison)의 <동물기계(Animal Machine, 1964)>가 야기한 사회적 이슈가 <브람벨 리포트(Brambell Report, 1965)>3)로 이어지면서 동물의 상태를 측정하고, 동물의 요구를 파악하는 일에 전문성이 강화되었다.
그 중 한 흐름은 찰스 웨슬리 흄(Charles Westley Hume)이 주도한 UFAW(Universities Federation for Animal Welfare, 1926년 런던동물복지연맹으로 설립됨)의 활동에 잘 나타나 있다.
이 기구의 설립 목적은 동물의 필요와 요구를 과학적으로 이해하고 이를 충족시키는 방법을 연구하고 실용적인 해결방법을 제시하는데 있다. 즉, 동물복지를 “동물에 대한 윤리적인 책임을 기반으로 이들의 상태를 파악하고 개선하는 일”로 구체화한 것이다.
RCVS(The Royal College of Veterinary Surgeons)는 ‘동물복지는 수의학의 핵심이며 모든 업무가 동물복지에서 시작되고 끝나기 때문에 모든 역량을 유지하는데 본질적인 요소’라고 설명한다.4)
그러나 수의학이 가지고 있는 근본적인 갈등의 요인인 환자와 고객의 이익 충돌 측면에서 직업 윤리와 동물복지를 추구하는 직업의 본질이 어긋나는 상황이 벌어진다. 환자의 이익을 절대적으로 지켜야 하는 의료인으로서, 그리고 인간인 고객(동물의 소유주이며 동물의료 서비스에 대한 대가를 지불하는 주요 이해당사자)을 고려해야 하는 전문직으로서의 갈등은 동물복지에서도 불거진다.
또한, 한 사회에서 동물의 가치에 대한 공감대와 동물에 대한 태도가 다양한 스펙트럼을 지니고 있으며 시대에 따라 변화하고 있기 때문에 불안정한 동물의 지위는 이런 갈등을 심화한다.
어쩌면 수의사는 윤리적으로 가장 미지의 영역인 종간 윤리(interspecies ethics)의 전선에서, 준비되지 못한 채, 적대적인 다툼에 노출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수의사는 이런 위기의 상황에서 소극적으로 피하기보다는 윤리에 기반한 업무 수행을 통해 리더십을 발휘하고 동물의 이익을 대변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이는 사회가 요구하고 있는 믿을 수 있는 동물의 대변자이며 동물의료 제공자로서 수의사의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다.5)
이런 수의사의 동물복지 분야 리더십은 다양한 형태로 구체화된다. 예를 들어, 영국수의사회는 2016년 “동물복지를 위해 목소리를 내는 수의사(Vets speaking up for animal welfare )”6)를 발간했다.
영국수의사회는 지난 50여년간 동물이 세상을 경험하는 방식과 동물의 관점에서 동물이 필요로 하고 원하는 것이 과학적으로 규명되었고, 이로 인해 수의사가 동물의 이익을 객관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능력이 이전에 비해 향상되었다고 인식한다. 그래서 수의사가 동물복지에 대한 강력하고 가시적인 리더십을 가질 것을 천명했다.
수의사는 개인 차원에서 동물 소유주와 직접 만나 동물의 이익을 최선으로 보호할 책임이 있으며, 지역 사회에서는 언론 및 홍보 활동을 통해 동물복지 전문지식을 제공하고, 국가 차원에서는 수의사 협회를 통해 공식적인 동물복지 정책을 제안하는 활동으로 이런 리더십을 펼칠 수 있다.
어떻게 접근할 것인가?
동물의 상태를 개선하는 것이 윤리적 당위성을 가진다면 개선하는 방식을 찾아야 한다. 이 접근에는 이른바 최적의 표준(golden standard)을 세우는 것과 점진적인 개선(incremental improvement) 전략이 가능하다.7)
최적의 표준은 타협할 수 없는 이상적인 기준을 의미한다. 절대적인 용어로 표현되고 이런 요구사항이 지켜지지 못하는 상황을 배제한다.
우리 사례에서 보자면 유예기간을 두지 않고 관행적인 스톨 사육은 즉시 중단되어야 하고, 군사 사육(group housing)을 도입하여 그 기준에 따르지 못한 농가는 즉시 사업을 지속할 수 없도록 조치해야 한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다.
그러나 의무론적인 윤리관에 입각한 이런 방식은 실제 현장에서 거부감과 저항을 가져오게 된다. 또한, 최적의 표준을 찾기 위한 다양한 협의를 불가능하게 한다.
그래서 대부분은 점진적인 개선의 방식을 취하게 된다. 공리주의적인 윤리관에 기반한 이런 방식은 동물에게 미치는 해악을 가능한 줄이면서 인도적으로 동물을 이용할 수 있는 가능한 방법을 찾아가는 방식이다.
물론 “동물이 어떤 경우에도 수단이 되어서는 안 되는” 동물권 윤리(animal rights ethics)” 관점에서 보자면 동물 이용을 합리화하는 변명이라고 비판할 수 있다.
사례에서 임신돈의 스톨 사육 제한에 있어 기존의 농장은 2030년까지 유예 기간을 두고 시설과 사육 방식을 개선하도록 했고, 새로 허가 받는 농장은 처음부터 관행적인 스톨 사육을 할 수 없도록 규제함으로써 이미 점진적인 개선 방식을 적용하고 있는 셈이다.
여전히 임신돈 스톨 사육 제한에 대한 저항은 존재한다. 그러나 약 10년간 축산업계와 연구자들은 몇 가지 적용 가능한 임신돈 개량 스톨이나 군사 방식을 개발하여 제안하고 있다.8)
이전까지의 논의가 선언적이고 단편적이었다면 이제는 보다 다양한 근거와 시각을 바탕으로 돼지 농장에서의 동물복지를 논할 수 있다. 사육시설 개선과 증축으로 인한 생산 단가의 증가나 사육 두수의 감소는 동물복지 제품 시장의 증가와 함께 근거 기반으로 논의되어야 한다.9)
건강한 모돈과 건강한 상태로 자라나는 자돈을 확보하는 것은 현대 축산에 있어 가장 큰 목표이다. 모성을 드러내고 보다 자연스러운 방식으로 새끼를 돌보도록 하는 개량 스톨이나 군사 방식이 축산 생산성의 발목을 잡는 비현실적인 대안이라고 치부하기에는 좋은 결과를 보인 사례들이 많이 있다. 스톨과 군사 방식 전환 시 돼지에게 발생가능한 문제점과 그 해결방안은 기존의 동물복지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충분히 찾고 해결할 수 있다.10)
공무원인 수의사 A는 생산성 측면에서의 비용의 증가와 국가의 동물복지 정책과 통상 압력, 스톨 사육에 대한 개선을 요구하고 있는 소비자 및 투자자의 움직임을 고려하여 점진적인 개선 방안을 만들고, 개선 지표를 세워야 한다.
이는 사회가 수의사에게 요구하고 있는 동물복지의 리더로서의 역할과 동물의 건강과 복지를 우선으로 고려하는 전문직으로서의 수의사의 역할을 윤리적으로 수행하는 방안이다.
불행히도 지금까지 수의사들은 동물복지 정책의 리더로서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필요한 역량을 키우는데 소홀했다.
현재 수의과대학에는 동물복지 관련 정규교과가 편성되어 있고 비정규 특강이나 학생 주도 모임을 통해 학생들은 동물복지에 대한 기본 지식을 쌓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양한 동물복지 이슈에 대한 과학적인 분석을 내리고 이에 근거해서 전문가로서 견해를 제시하거나, 동물복지 이슈에 대해 보호자나 산업계, 대중, 다른 수의사 등 다양한 이해당사자와 적절한 방식으로 의사소통하며 리더십을 발휘하는데 있어서는 대다수가 여전히 부족하다고 느낀다.12)
이로 인해 동물복지 문제를 강조하는 것이 부담스러울 수 있으며 문제를 외면하거나 의견 내기를 꺼려할 수 있다.
그러나 수의계는 보다 전략적으로 동물복지 연구에 참여하고 동물복지에 대한 교육을 강화하여 동물과 관련된 다양한 사회 문제에 있어 전문가적인 해결책을 제시해야 할 의무가 있다. 또한, 근대 영국의 사례에서 보듯 동물복지를 살피는 일은 수의사의 전문성과 사회로부터의 인정을 확보함에 있어서도 의미를 가진다.
* * * *
<수의 윤리 라운드토론-함께 고민하는 수의윤리> 칼럼을 마치며
지난 2년간 총 24편의 칼럼을 통해 반려동물 안락사, 사전동의, 동물의료 비용, 동물학대와 같은 수의윤리의 주요 이슈와 함께 아직은 낯선 의학적 무의미함, 새로운 치료법 적용의 윤리, 의료에서의 오류(medical error) 등 총 23개의 주제를 다루었다.
서울대학교 수의인문사회학 연구실의 필자들은 동료 수의사들이 보내주신 다양한 피드백과 격려에 힘 입어 칼럼을 게재해 왔음에 깊이 감사드린다. 게재된 칼럼은 계획 중인 수의윤리 단행본에 포함될 예정이다.
앞으로는 기존의 칼럼과는 다른 방식으로 수의학에서의 윤리 문제를 다뤄보고자 한다. 비록 그 시작은 미미하고 혼란스러울지라도 동물을 진료하고 돌봄에 있어 우리 모두의 윤리적인 고민이 동물과 인간 모두에게 도움을 주고, 스스로 더 좋은 수의사가 되는데 도움을 줄 것이라고 믿는다.
각주
1) Woods, A. (2012). The History of Veterinary Ethics in Britain, ca.1870-2000. Veterinary & Animal Ethics: Proceedings of the First International Conference on Veterinary and Animal Ethics. Oxford, UK, Blackwell Publishing Ltd: 3-18.
2) <동물복지 강화 방안>. 농림축산식품부 보도자료 (2022.12.6). (출처: 농식품부 웹사이트 https://www.mafra.go.kr)
3) Report of the Technical Committee to enquire into the Welfare of Animals kept under Intensive Livestock Husbandry Systems (Accessed at: https://archive.org/details/b3217276x, 2024.11.16)
4) The Royal College of Veterinary Surgeons (2022). Day One Competences. (Accessed at https://www.rcvs.org.uk, 2024.11.16)
5) Arkow, P. (1998). Application of ethics to animal welfare. Applied Animal Behaviour Science, 59(1), 193-200.
6) British Veterinary Association (2016). Vets speaking up for animal welfare, BVA animal welfare strategy. (출처: https://www.bva.co.uk/media/3124/bva-animal-welfare-strategy-final-version.pdf, 2024.11.16)
7) Mullan, S., & Fawcett, A. (2017). Veterinary ethics: navigating tough cases. 5M Publishing Sheffield: 117-212.; Mellor, D., & Stafford, K. (2001). Integrating practical, regulatory and ethical strategies for enhancing farm animal welfare. Australian Veterinary Journal, 79(11), 762-768.
8) 농촌진흥청 국립축산과학원 (2021). 임신돈 군사사육시설 적용 매뉴얼.
9) “어미 돼지 가뒀던 ‘사육틀’ 없애면…시민 77% “추가 비용 낼 것” 한겨레 애니멀 피플 (2024.10.24) (출처: https://www.hani.co.kr/arti/animalpeople/farm_animal/1164211.html, 2024. 11.16); “돼지에겐 흙밭이 호텔인데…”분통 터트린 축산 농가들 [한경제의 신선한 경제], 한국경제 (2022.9.16) (출처: https://www.hankyung.com/article/202209164628i, 2024. 11.16)
10) 윤진현 (2024). 돼지 복지. 한겨레출판. 60-75.
11) 일부 식품산업 투자자들은 해당 산업에서 동물복지를 고려하지 않는 회사에 투자하지 않겠다는 원칙을 세우고 있다. “Why billionaire Carl Icahn’s is feuding with McDonald’s over gestation crates” Fisrtpost (2022.2.22) (Accessed at: https://www.firstpost.com/world/why-billionaire-carl-icahns-is-feuding-with-mcdonalds-over-gestation-crates-10398861.html, 2024.11.16)
12) Choi T., Jung Y., & Chun M.S. (2023). Current Status of Animal Welfare Education in Korean Veterinary Schools. Proceeding of the International Symposium of The Korean Society of Veterinary Science, 123.
<수의 윤리 라운드토론은 대한수의사회, 서울대 수의대 수의인문사회학교실과의 협의에 따라 KVMA 대한수의사회에 게재된 원고를 전재한 코너입니다-편집자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