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기칼럼] 김희종의 야생동물이야기⑥ – 매
지난 6년 동안 야생동물수의사로 지내면서 내 나름대로의 원칙들이 생겼는데 ‘야생동물에게 절대 정을 주지 않는다’는 것이 그 중 하나다.
야생동물이 사람과 가까워져 야생성을 잃게 되면 결국 자연으로 돌아갈 수 없는 그냥 ‘동물’로 전락해버릴 수 있고 정을 주다 보면 마음이 약해져 안락사를 해야 될 경우 주저하게 되는 일이 생기기 때문이다.
물론 각인이 되기 쉬운 어린 새끼 때를 제외하면, 구조되는 야생동물들 대부분은 야생성이 워낙 강해서 내가 일방적으로 정을 준다고 해도 쉽게 나를 따르거나 좋아해주지 않는다.
그런데 이런 원칙을 깨고 작년부터 내가 정을 주며 돌보고 있는 야생조류 한 마리가 있다. ‘매종’이라고 이름을 붙여준 ‘매(영명: peregrine falcon)’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국내에서 확인된 맹금류는 34종 5아종 정도이며 크게 수리과(Family Accipitridae)와 매과(Family Falconidae)로 나누어진다.
수리과에 속하는 ‘독수리, 참매, 말똥가리’ 등 28종이 국내에서 확인된 상태이며 매과에 속하는 맹금류 중 국내에서 볼 수 있는 종은 ‘황조롱이, 비둘기조롱이, 쇠황조롱이, 새호리기, 핸다손매, 매’ 등 6종이 있다.
사실 전국적으로 흔하게 서식하는 텃새인 황조롱이, 국내에서 번식을 하는 새호리기와 매를 제외하고 나머지 매과에 속하는 3종은 야생동물구조센터에 거의 들어오지 않는다. 월동만 하거나 우리나라에 서식하는 개체수가 많지 않고 이동 시기에만 소수가 관찰될 정도로 흔하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 매(학명: Falco peregrinus)는 환경부지정 멸종위기 Ⅰ급, 문화재청 지정 천연기념물 제323-7호로 보호를 받고 있는 종이다. 보기 드문 텃새로서 해안이나 섬의 절벽에서 번식하고 겨울철에는 주로 하구, 농경지나 개활지에 나타난다.
지난해 5월 초, 인천의 한 동물병원에서 어린 매 한 마리를 보호하고 있었다.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일반 동물병원에서 새를 보호하고 있을 때 가장 흔하게 발생하는 문제는 부적절한 입원관리라 할 수 있다.
이 어린 매 역시 철장 안에서 보호받고 있었는데, 그로 인해 꽁지깃 대부분이 마모되고 일부는 부러지거나 휘어진 상태였다. 좁은 공간이 익숙하지 않은 대부분의 야생조류는 이런 철장에서 계류하였을 경우 이차적으로 날개깃이나 꽁지깃의 손상이 발생해 비행능력의 저하로 이어져 야생에서 살아남기 어렵게 된다.
이 매는 일주일 정도 후 충남야생동물구조센터로 이송이 되어 ‘13-458’이라는 개체번호를 갖게 되었다. 양측 날개와 꽁지깃의 손상 외에는 특별한 문제점이 없는 상태였다.
하지만 손상된 깃 탓인지 비행 상태가 좋지 못하여 당분간 야외 계류장에서 보호를 한 뒤 나중에 재평가를 해보기로 결정하였다. 그 당시 센터 직원 모두는 넘쳐나는 새끼 동물들의 구조와 관리로 정신이 없던 시기였다.
사육 상태에서 야생조류, 특히 맹금류나 물새류에게는 가장 흔하고 임상적으로 중요한 범블풋(bumble foot)이라는 질병이 있다. 일반적으로 과체중, 활동 제한, 부적절한 횃대 등으로 인해 발의 피부와 피하조직에 병변이 발생하며, 발피부염(pododermatitis)이라고도 불린다.
단순한 깃 손상으로 진단되어 야외 계류장에 머물고 있던 ‘13-458 매’는 두 달 뒤 양쪽 발에 범블풋 발생이 확인되었다.
범블풋은 초기에 발견하였을 경우 적극적인 치료와 환경 개선, 체중 조절 등을 통해 치료될 수 있지만 보통 지속적이고 장기적인 치료를 요하는 완치가 매우 까다로운 질병이다. 주기적 검사와 관리 소홀로 인해 범블풋 조기 발견이 늦어져 결국 ‘13-458 매’는 치료 중 양쪽 3번 발가락의 인대 손상과 기능장애를 갖게 되었다.
평상시 건강 상태를 제대로 확인하지 못한 잘못과 양쪽 발가락의 영구적인 운동 기능장애까지 만들어버린 죄책감에 나는 나의 원칙을 깨고 ‘13-458 매’에게 정을 붙이기로 했다.
그렇게 깃과 양쪽 발가락의 손상으로 자연으로 돌아갈 수 없게 된 ‘13-458 매’는 충남야생동물구조센터의 교육용 조류(educational bird)이자 내가 평생 돌봐줘야 할 ‘매종’이가 되었고 1년 넘게 센터에서 나와 함께 지내고 있다.
센터에 처음 왔을 때와 다른 점이라면, 지금은 갇혀 있는 공간이 아닌 센터 복도에서 다른 교육 조류들과 함께 지내며, 몸이나 부리를 만져도 반항하지 않고, 장갑을 낀 손에 먹이를 올려 부르면 내게 날아온다는 점이다.
더욱이 올해 여름 손상된 깃털이 모두 빠지고 성조 깃으로 갈아입어 아름답고 용맹스런 모습으로 탈바꿈하였다.
다친 동물의 치료를 위해서는 정확한 진단 아래 최적의 치료를 실시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나 사실 야생동물에게 있어서 그보다 더 중요한 건 종(species)의 특성에 맞는 입원·사육 관리 즉, 재활과정이라 할 수 있다.
만일 초기에 꽁지깃싸개를 해주었거나 적절한 입원장에서 보호하여 깃 상태가 온전하였다면, 범블풋에 민감한 맹금류임을 고려하여 철저한 예방을 통해 발에 손상이 발생하지 않도록 관리해주었다면 매종이는 지금 내 옆에 있었을까?
난 야생동물은 야생에서 살아야 그 존재 가치가 있고 그들 역시 행복하다고 믿고 있다. 내가 아무리 정을 주고 개방된 공간에서 하루 30분 정도나마 날 수 있게 해준다고 해서 과연 매종이는 지금 자신의 삶을 만족스러워할까?
야생동물에겐 ‘사람의 정’이 아닌 ‘자연의 삶’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