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의사들의 주장은 간단명료하다. 수의사의 진료·처방 없이 비(非)수의사가 반려동물에게 주사해선 안 된다는 것이다. 비전문가의 무분별한 주사행위는 동물학대라는 것이다. 제도야 어찌됐든 실질적으로 불가능해야 한다는 주문이다.
동물진료행위를 관리하는 법제는 크게 두 요소로 이뤄진다. 동물에서 쓰이는 의약품의 유통(약사법)과 진료행위 그 자체(수의사법)를 균형 있게 규제하는 방식이다. 선진국도 우리나라도 접근법은 같다.
그렇다면 일반인 보호자가 수의사 처방 없이는 주사제를 살 수 없도록 만들거나, 어떤 경우에서든 주사행위 자체를 금지해야 한다.
영국이나 일본은 전자에 방점을 찍는다. 처방의무대상이 아닌 주사제는 일반인이 사용할 수 있지만, 정작 반려동물용 주사제는 피하주사를 포함해 모두 수의사 처방에 의해서만 판매되도록 제한하고 있다.
결국 비수의사의 무분별한 주사행위는 실질적으로 금지된 것이다. 애초에 보호자나 브리더들이 원하지도 않는다는 점은 차치하겠다.
본지가 접한 정부 측 입장도 비슷하다. 수의사법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수의사처방 없이도 판매할 수 있는 주사제가 버젓이 있는 상황에서 ‘살 수 있는 약인데 쓰면 불법’이라고 규정하기 어렵다는 얘기다. 주사제를 수의사처방제에 포함시키는 방법으로 규제해야 한다는 분위기를 풍긴다.
그렇다면 반문할 수 밖에 없다. 왜 수의사 처방 없이도 아무나 주사제를 구입할 수 있도록 내버려 뒀나?
처방의무대상 약품을 지정하는 것도 농식품부(방역관리과)고, 수의사법을 운영하는 것도 농식품부(방역총괄과)다. 물론 내부적으로는 담당부서가 다르다지만 일선 수의사들이 보기에, 일반 국민들이 보기엔 어차피 똑같은 정부다.
멀리 떨어진 일도 아니다. 수의사처방제 처방의무대상 동물용의약품 성분이 확대 고시된 것은 불과 2주전이다. 농식품부 내부적으로는 처방약품 확대방안과 자가진료 허용범위 지침안을 비슷한 시기에 검토했을 것이다.
반려동물용 생독백신을 모두 처방의무대상으로 지정하겠다던 농식품부는 11시 59분에 돌연 입장을 바꿨다. 가장 많이 쓰이는 반려견 4종 종합백신(피하주사제)을 제외했다.
방역관리과는 자주 쓰이는 피하주사제를 처방 없이도 살 수 있게 구멍을 뚫어주고, 방역총괄과는 비수의사의 피하주사를 전면 허용하겠다고 했으니 균형도 맞은 셈이다.
지금은 수의계의 시선이 수의사법 시행령 운영지침에만 쏠려 있다. 물론 일반인의 주사행위를 전면 허용하겠다는 동물학대적 방침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점은 당연하다.
하지만 실질적인 성과는 해당 지침을 없애거나 내용을 바꾼다고 해서만 거둘 수 없다. 주사제의 유통문제를 함께 다뤄야 가능하다.
수의사의 진료·처방 없이는 일반인 보호자의 손에 주사제가 쥐어질 수 없어야 한다. 그래야 비전문가의 주사행위를 실질적으로 막을 수 있다.
앞으로 수의계의 주장과 투쟁이 여기에 방점을 찍기를 감히 당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