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獸포주의] `The Plague Dogs` 실험동물, 그 생명의 무게를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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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의사나 수의과대학 학생들은 동물을 다룬 영화나 드라마에 좀더 관심을 가지기 마련입니다. `이 장면은 과학적으로(수의학적으로) 말이 안 된다`며 집중에 방해를 받기도 하지만, 스쳐 지나가는 장면에도 깊은 인상을 받곤 합니다.

데일리벳 4기 학생기자단이 마련한 ‘수(獸)포주의’ 시리즈는 수의대생의 시각에서 동물을 다룬 이야기들을 바라봤습니다.

[The plague dogs], [옥자], [1분만더], [컨테이전], [수의사 두리틀]이 차례로 연재됩니다.

이 기고문은 작품에 대한 스포일러를 다수 내포하고 있음을 미리 알려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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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의학의 발전으로 사람들은 보다 윤택한 삶을 영위하고 있다. 그러나 그 이면에 수많은 실험동물의 희생이 있다.

마틴 로센 감독의 The Plague Dogs(1982)는 리처드 애덤스의 동명 소설을 토대로 만들어진 영화다.

다소 음산한 분위기의 검은 배경에 ‘October 15 – Day 1’이라는 빨간 글씨가 보이며 시작되는 이 영화의 주인공은 사람과 가장 친근한 동물인 ‘개’다.

영화 첫 장면부터 블랙 래브라도 리트리버인 ‘로프’가 물속에서 허우적거리며 괴로워하는 장면이 나온다. 로프는 ‘익사 실험’에 사용되는 실험동물이다.

영화 속에서 과학자들은 담담한 말투로 얘기를 나누며 개가 물에 빠졌을 때 어느 정도까지 신체가 버틸 수 있는지, 어떤 증상을 보이는지 기록하고 있다.

과학자들은 발악하는 로프의 모습에도 큰 감흥 없이 평온하다. 과학자들은 정신을 잃고 죽을뻔한 로프를 건져 올려 다시 살려낸다. 다음 실험을 위해서다.

(사진 : [The Plague Dogs] 장면 캡쳐)
(사진 : [The Plague Dogs] 장면 캡쳐)

장면이 바뀌면, 케이지 안에 여러 실험견들이 보인다. 개 중에 사람들이 오면 반가워 꼬리 치는 우호적인 개들도 눈에 띈다.

또 다른 주인공인 폭스테리어 ‘스니터’는 사람에게 애정과 믿음을 잃지 않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스니터는 실험동물이 되기 전 가정에서 자라던 반려견이다. 스니터의 주인은 스니터를 대신해 차에 치여 죽고, 스니터는 결국 연구실로 팔려왔다.

사육사의 실수로 철장문이 덜 닫히자 로프와 스니터는 실험실을 탈출한다. 자유를 얻게 된 두 주인공에게는 동화같은 장면보다는 현실적이고 냉정한 세상이 기다리고 있다. 종국에는 굶주림에 사람의 시체를 파먹으며 허기를 달랠 정도다.

소문이 퍼지고 상황이 악화되자 정부에서는 로프와 스니터를 사살하려 한다. 마지막 장면에는 마치 첫 장면이 오버랩되듯 로프와 스니터가 물 속에서 허우적거리고 있다. 실험견이었을 때도 익사 실험을 해야 했던 로프는 결국 사람들에게 내몰려 바다로 스스로 뛰어들어 숨을 헐떡이며 헤엄친다.

자욱이 깔린 물안개 속에서 ‘Keep going…’, ‘Don’t you see it? An island?’, ‘Stay with me…’ 라는 말과 함께 끝까지 살고 싶어 하던 두 생명의 모습이 안개와 함께 서서히 옅어지며 영화는 막이 내린다.

무거운 내용과 비참한 결과는 소설 같지만, 동시에 현실적인 문제를 시사한다. 우리가 외면하고 있던 실험동물권과 그 생명의 무게를 담담히 보여준 영화였다.

(사진 : [The Plague Dogs] 장면 캡쳐)
(사진 : [The Plague Dogs] 장면 캡쳐)

매년 4월 24일은 ‘세계 실험동물의 날’이다. 연구과정에서 실험대상으로 쓰이는 동물들의 고통을 줄이고, 인간의 이득을 위해 학대되는 실험 자체를 줄여나가자는 목적으로 1979년 영국에서 처음 시작됐다.

우리나라도 점차 실험동물 복지 개선을 위한 움직임이 보인다. 동물보호시민단체 카라(KARA)는 ‘어린이, 청소년 동물해부실습 반대 SNS 운동’을 펼치기도 했다.

실험동물에 대해 반대하는 사람들도 당장 모든 실험동물을 없애자고 주장하지는 않는다. 적어도 연간 실험동물 두수를 200만마리 이하로 줄이고 무분별한 희생을 피하자는 것이다.

지난 6월 15일 기동민 국회의원과 동물복지문제연구소 ’어웨어’가 주최한 ‘비글에게 자유를 허하라’ 국회 토론회에서는 “건강한 실험동물도 대부분 안락사 되는 것이 현실”이라며 “수의대에서부터 실험동물 처우를 개선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전국의 수의과대학들은 매년 수혼제(獸魂祭)를 열어 연구나 학생실습 과정에서 희생된 실험동물들의 넋을 위로한다.

‘이미 희생시켜 놓고 무슨 의미가 있느냐’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수혼제는 평소에 인식하지 못하던 생명의 소중함을 다시 한 번 일깨우는 시간이다. 수의대생 각자가 실험동물에 대한 생각을 정리하고, 생명에 대한 진지한 물음을 던지는 계기다.

 
우리나라에서 사용된 실험동물은 2016년 한 해 동안 287만 9000여 마리로 2015년(250만7천여두)보다 오히려 늘었다.

‘실험동물은 필요악’이라는 표현은 익숙하다. 비윤리적이라며 동물실험을 없애기에는 인간에게 주는 유익함도 컸다.

하지만 불필요한 실험을 반복하기 위해 생명을 희생시키는 것이 과연 합당한 것인지는 생각해 볼 문제다. 실험동물이 보인 반응과 사람의 반응이 전혀 다른 경우도 있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동물실험이 오히려 인간에게도 비효율적일 수 있다는 얘기다.

현재 우리나라도 OECD가 권고하는 동물대체시험기준을 적용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동물 사용을 대체하고(Replacement)하고, 불가피할 경우 사용하는 동물 수를 줄이며(Reduction), 고통을 최소화(Refinement)하는 3R원칙이다.

사람의 세포를 활용하거나 컴퓨터 데이터 분석으로 독성을 예측하는 등 과학기술의 발전이 조만간 동물실험을 완전히 대체할 지도 모른다.

(사진 : [The Plague Dogs] 장면 캡쳐)
(사진 : [The Plague Dogs] 장면 캡쳐)

우리는 The Plague Dogs의 마지막 장면을 보며 함께 숨이 막혀오는 무거움을 느낄 수 있다. 안개 속에서 헤엄치며 사라져가는 두 주인공의 모습은 절망적인 죽음을 직감케 한다.

그러나 로프는 말한다. 계속 헤엄치라고, 섬이 보이지 않느냐고… 결국 두 주인공은 희미해지다 완전히 시청자의 시야에서 벗어난다.

인간과 실험동물의 생명의 무게는 얼마나 다를까? ‘반려’동물과 ‘실험’동물의 생명의 무게는 어떻게 다를까?

현재와 미래의 수의계 종사자들은 실험동물이 가진 생명의 존엄성과 그 무게를 가슴깊이 새기며 관련 직군으로써 책임감을 가지고 동물복지권에 앞장서야 한다. 로프와 스니터가 살 수 있는 ‘섬’을 만들어주는 것이 앞으로 수의사들의 역할일지도 모른다.

데일리벳 4기 학생기자단

경북대 김규민, 제주대 배영림

[獸포주의] `The Plague Dogs` 실험동물, 그 생명의 무게를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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