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시험 개선 구체적 로드맵 그린다‥政 무관심은 한계
수의교육학회, 동물보건의료정책연구원 의뢰로 국시 개편 및 세부운영방안 연구 개시
한국수의교육학회가 수의사 국가시험 개편 및 세부 운영방안 연구에 나선다. 2019년 진행한 1차연구의 후속 연구다.
1차연구에서는 국시 문항 분석, 응시생·교수진 설문, 수능·의사국시 비교분석 등을 통해 수의사 국시의 문제점과 개선방안을 도출했다.
동물보건의료정책연구원 의뢰로 진행되는 이번 2차연구에서는 국시 개선방안의 세부적인 추진 로드맵을 그린다. 개선동력을 확보하기 위한 정부, 수의사회, 국가시험위원회 등 이해관계자의 의견 수렴에도 초점을 맞춘다.
중구난방 출렁이는 국시 출제
평가목표·문제은행·검토위원 분리 방안 모색
1차 연구에서 현행 국시의 다양한 문제점이 도출됐다.
우선 시험문제의 타당성·난이도를 관리할 수 있는 기반이 부족했다. 출제위원과 검토위원이 따로 선정되는 수능이나 의사 국시와 달리, 수의사 국시는 별도의 검토위원이 없다.
국시에 낼 만한 타당성이 있는 문제인지, 오류는 없는지, 난이도가 어떤 수준인지는 전적으로 당해 출제위원에게 맡겨진 셈이다.
국시 문제가 명확한 평가목표를 가지지 못한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됐다. 평가목표를 정립하고 그에 맞게 문제를 출제하는 구조가 아니다 보니, 그해 출제위원으로 누가 들어가느냐에 따라 출제 경향이 요동친다는 것이다.
같은 과목이라도 A대학 교수와 B대학 교수가 중점적으로 가르치는 내용이 다르다. 출제목표와 가이드라인이 없는 상태에서 A대학 교수가 출제위원으로 참여하면, B대학에서는 제대로 다루지 않았던 부분에서 문제가 출제된다. A대학 출신 응시생에게는 쉽고, B대학 출신 응시생에게는 어려운 문제가 된다.
1차연구에서 연구진이 수의해부학의 9개년 출제영역을 분석한 결과 영역별 분포가 중구난방이었다. 8개년 기출의 최저 정답률 평균은 9.6%에 그친데다, 특정 문항은 2.2%에 불과했다. 그해 수의사가 된 500명 중 489명이 틀린 문제가 있었던 셈이다.
출제경향이 흔들리는데 문항까지 비공개이다 보니 응시생들은 음성적으로 복원한 기출문제에 매달린다. 그해 출제위원이 평소 내던 시험문제와 비슷하게 출제하면 쉬운 문제가 된다.
수의교육학회 연구진은 이번 2차연구에서 수의학교육 학습성과를 국시 평가목표로 활용하기 위한 방안을 모색한다.
의사 국시, 해외 수의사 면허시험 사례를 바탕으로 ▲출제진·검토진 분리 ▲문제은행 도입 ▲축종별 출제비율 확립 등을 위한 방법론도 연구한다.
실기시험 도입 로드맵 그린다
치과의사 국시, 추진 10년만에 실기시험 시행
실기시험 도입 방안도 2차연구의 핵심 과제 중 하나다. 수의사 졸업역량(Day 1 competency)의 핵심이 실기역량에 있다. 하지만 주사는 놓을 수 있는지, 피는 뽑을 수 있는지조차 확인하지 않고 면허증을 내어주고 있는 것이 현행 수의사 국시다.
1차연구에서도 교수진과 학생 모두가 실기시험 도입 필요성에 공감대를 보였다.
남상섭 교수는 “졸업하자마자 공중방역수의사로 임용된 수의사가 가축의 채혈도 제대로 못한다는 문제의식이 있다”며 “실기교육에는 대학별로 큰 격차가 있을 수밖에 없다. 이를 조화롭게 가르치기 위해서는 실기시험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2차연구는 실기시험 도입을 전제로 로드맵을 그린다. 치과의사 실기시험 도입 등 유사 사례를 참고해 예산·조직 확보 방안을 마련한다.
치과의사 국가시험은 2022년도 필기시험에 앞서 지난해 실기시험을 처음으로 도입했다. 2012년 치과의사 국가시험 실기시험 도입 추진위원회를 구성한지 10년만이다.
치의 국시 실기시험은 ‘결과평가’와 ‘과정평가’로 구성됐다. 첫 실기시험에는 766명이 응시해 721명이 합격했다(합격률 94.1%).
‘결과평가’는 응시생들이 각 대학에서 치과치료용 장비를 사용해 수복·근관·보철을 각 1문항씩 수행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한국보건의료인국가시험원 실기시험센터에서 진행된 ‘과정평가’는 응시생들이 표준화환자를 대상으로 병력청취·구내검사·영상검사·치료계획수립 등 기본임상술기를 수행하는 내용으로 시행됐다.
정부 당국은 관심 부족·책임 떠넘기기
이해관계자 의견수렴, 국시위원회 개편도 모색
2차연구는 농식품부, 검역본부, 대한수의사회 등 국시 관련 이해당사자의 의견에 주목하고 있다.
아무리 문제점과 해결방안을 지적한들 국시를 주관하는 정부의 의지 없이는 소용이 없기 때문이다.
실기시험이 아니더라도 출제진·검토진 분리나 문제은행 운영 등에는 더 많은 인력과 예산이 요구된다. 하지만 농식품부는 시험관리를 이관한 검역본부가 추진할 사안이라며 떠넘기고, 검역본부는 조직·예산 부족을 내세우는 형편이다.
남상섭 교수는 “(시험관리주체인) 정부가 전향적으로 나서거나, 관리기관을 아예 이관해야 국시 개선을 기대할 수 있지만 둘 다 어려운 상황”이라며 답답함을 드러냈다.
연구진은 이번 2차연구에서 국시 주관기관 이관 방안을 검토하는 한편, 국가시험위원회가 국시 개편을 이끌 수 있는 조직으로 변화하는 방안도 함께 모색할 계획이다.
남상섭 교수는 “현재 진행 중인 진료 표준화 논의도 결국 수의사의 역량이 어느 정도 표준화되어야 실현 가능하다. 대학 간 교육격차가 진료 표준화 추진에도 걸림돌이 되는 셈”이라며 “국가시험을 개편하고, 그에 맞게 대학이 자구책을 마련하도록 유도하는 것이 효율적인 접근”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