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시입학생·정시입학생 차이 있나’ 건국대 수의대생 10년 추적해보니
한국수의교육학회, 수의과대학 입학 조명..’비인지적 능력도 평가해야’ 서울대 MMI 눈길
한국수의교육학회(회장 남상섭)가 수의과대학의 ‘입학’을 조명했다. 2월 24일 서울대 수의대에서 열린 수의교육학회 정기학술대회에서는 수의대에서 공부를 잘할 학생, 좋은 수의사가 될 잠재력을 가진 학생을 어떻게 선발할지에 대한 고민을 공유했다.
2009년 이후 입학한 건국대 수의대생을 입학전형별로 추적한 결과, 학업에서는 두드러진 차이를 보이지 않았다. 다만 학교 적응이나 중도탈락 측면에서 수시입학으로 들어온 학생이 상대적으로 나은 지표를 보였다.
학업 성취, 나아가 좋은 수의사가 될 지 여부는 수능 성적으로 대표되는 인지능력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지적도 나왔다. 소통능력·전문직업성·윤리의식 등 비인지적 능력, 이른바 ‘인성’에도 영향을 받는다는 것이다.
이를 학생 선발에 반영하기 위한 방법론으로는 다면평가면접(MMI)에 주목했다. MMI는 국내 의대에도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수의대에서는 서울대가 처음 도입해 10년째 운영하고 있다.
정시가 좋니, 수시가 좋니
건국대 수의대생 10년간 추적해보니..
성적은 ‘글쎄’ 중도탈락은 ‘뚜렷’
대학입시는 한국사회의 끝나지 않을 논쟁거리다. 수의과대학도 예외는 아니다. 혹자는 수능 성적만 보는 정시가 공정하다고 한다. 정말 수의사가 되고 싶은 수험생인지 알아보려면 수시가 더 적합하다는 주장도 있다.
남상섭 교수는 2009년부터 건국대 수의대에 입학한 학생들을 전형별로 추적해 왔다. 남 교수는 “수의대에 가장 적절한 전형이 무엇인지 가늠할 기초자료도 없었던 상황”이라며 “‘입학·교육과정을 꾸준히 모니터링해야 한다’는 김진석 당시 학장의 당부로 데이터를 모아왔다”고 전했다.
건국대 수의대의 모집 정원은 80명 안팎으로 전국에서 가장 많다. 정원내 인원이 70명, 정원외 인원이 10여명이다.
입학 전형도 정시를 비롯해 학생부종합, 논술, 고른기회(농어촌·기회균등), 재외국민·외국인 등으로 다양하다. 그 중에서도 정시 비중이 높은 편이다. 2009년 이후 들어온 건국대 수의대생의 절반 이상(56%)이 정시로 입학했다.
남 교수는 2009년 이후 입학한 건국대 수의대생의 전형별·연도별 학업성취도(평점), 졸업역량 자기평가, 학업지속비율을 분석하는 한편, 교수진 대상 포커스 인터뷰를 실시했다.
그 결과, 자퇴·제적생을 제외한 09~14학번 학생들의 12학기 평점 평균은 3.2~3.3 사이에서 유지됐다. 연도별로는 유의적인 차이가 없었다.
입학전형별 평점평균은 학생부교과·학생부종합 > 정시 > 논술·고른기회·재외국민 순으로 나타났다. 다만 일부를 제외하면 통계학적 유의성이 두드러지지는 않았다.
이를 학기별로 분석한 결과, 예과에서는 입학전형별로 평점 편차가 컸지만 본과4학년으로 갈수록 상향 수렴되는 양상을 보였다. 입학전형을 불문하고 수의대에 남은 학생들은 시간이 지나며 어느 정도 학업에 적응한 것으로도 풀이될 수 있다.
졸업역량에 대한 자기평가에서도 정시·수시에 따른 큰 차이는 확인되지 않았다.
09~15학번 졸업생을 대상으로 졸업역량 성취기준 34개 항목에 대한 5점 척도 자기평가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정시 출신은 평균 3.88점, 수시 출신은 평균 3.81점을 기록했다.
반면 학업지속비율에서는 정시·수시의 차이가 뚜렷했다.
2009~2020년 입학생 984명 중 중도탈락(제적·자퇴)한 50명 중 41명이 정시에 집중됐다. 해당 기간 정시선발 인원이 557명으로 많긴 하지만, 이를 감안해도 정시 입학생의 중도탈락비율이 높은 편이다.
학업적응도를 반영하는 유급 비율도 정시(13.1%)가 더 높았다.
남상섭 교수는 “전공에 대해 잘 모르고 들어온 정시 입학생들이 많이 나가는 것은 우리나라 입학 구조상 어쩔 수 없는 측면도 있다”면서 “이들을 수의대에 어떻게 잡을 수 있는지가 다음 과제”라고 지목했다.
건국대 교수진 대상 인터뷰에서도 수시전형 입학생들의 전공 적응도나 만족도가 높은 편이라는 평가가 나왔다.
남상섭 교수는 “입학정책에 정답은 없지만, 정부의 규제가 강하다 보니 대학이 운신할 수 있는 폭도 좁다”면서 “그 안에서 원하는 학생을 선발하려면 인재상이 명확해야 하며, 이를 확인할 수 있는 도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비인지적 능력도 중요하다
다면평가면접(MMI) 주목
구조화·객관화된 면접 장점, 예산·인력 소요 단점
그러한 도구로서 이날 학회가 주목한 것은 면접이다. 천명선 서울대 교수는 서울대 수의대가 2013년부터 수시면접에 도입한 다면평가면접(MMI, Multiple Mini Interview)을 소개해 눈길을 끌었다.
천 교수는 학생의 입학 후 성취가 반드시 수능점수나 고교 성적으로 대변되는 ‘인지능력’에 의해서만 좌우되지 않는다는 점을 지목했다.
특히 의학계열에서는 전문직업성, 인성, 대인관계역량 등 ‘비인지적 능력’이 학업 및 전문직으로서의 성취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이를 학생 선발과정에서 확인하려면 적어도 이야기를 나눠 봐야 한다. 비인지적 능력을 확인하기 위해 다양한 문제를 제시하면서도, 신뢰성·타당성을 높이기 위해 개발된 방법이 MMI다.
MMI는 말그대로 짧은 면접을 여러 번 하는 방식이다. 수험생의 비인지적 능력을 평가하는 여러 스테이션을 설치하고, 스테이션마다 면접자(교수) 2인을 배치한다.
수험생은 각 스테이션을 10분 정도씩 돌며 미니면접을 반복한다. 각 스테이션의 면접자는 사전에 준비된 문제와 평가표를 바탕으로 면접점수를 매기고, 이를 취합해 평균을 낸다.
MMI는 2004년 캐나다 맥마스터 의대에서 개발됐다. 이후 영미권 주요 의대에서 선발기법으로 자리 잡았다. 국내에는 2007년 강원대 의대를 시작으로 2012년 서울대 의대를 비롯해 다수의 의대로 확산됐다.
천 교수는 “좋은 의사가 될 학생을 선발하기에 괜찮은 방법으로 여겨지고 있다. 서울대 의대는 수시뿐만 아니라 정시로도 MMI를 확대했다”고 전했다.
해외에서는 수의과대학에서도 입학에 활용되고 있다. 이날 천 교수는 영국·캐나다·미국 수의대의 MMI 관련 연구를 소개했다. 국내에는 서울대가 유일하다.
서울대 수의대는 현재 수시 일반전형에 MMI를 실시하고 있다. 생명현상의 이해, 정보분석 능력, 다양성, 전문직업성, 고교학업활동 등 5개 영역으로 스테이션을 구성한다.
천 교수는 “바람직한 수의사상을 바탕으로 MMI로 평가해야 할 비인지적 요인을 정한다. 스테이션별로 평가표와 시나리오, 수험생들의 예상 대답에 대한 추가질문까지 준비한다”며 “행동사건, 상황면접, 의견발표, 토론, 롤플레이 등 유형도 다양하다”고 설명했다.
여러 스테이션에 걸쳐 다양한 비인지적 능력을 평가하면서도, 전통적인 면접과 달리 면접자 1~2인의 주관에 의해 결과가 좌우되지 않는다는 장점이 있다.
다만 면접 문제 및 시나리오 개발과 실제 면접에 필요한 인력·예산 문제가 단점으로 꼽힌다.
천 교수는 “윤리적인 민감성이나 사회·전문가집단이 요구하는 전문직으로서의 자질을 평가한다. 어떤 수의사를 키워야 하는지가 MMI와도 일맥상통한다”면서 “수의대 입학생 면접 방식으로 신뢰성, 타당성, 수용성이 확인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