꿀벌 실종 위험 예년보단 덜하지만..전염병 확산·약물 오남용 심각
수의사에 의한 진단·처치, 사양관리 기본원칙 강조..꿀벌수의사회, 대한수의학회 추계대회 세션
올해 겨울철 꿀벌 실종현상은 예년보다 나아질 것으로 전망됐다. 하지만 각종 바이러스성 질병을 포함한 전염병이 심각하게 확산된데다 자가진료·관납에 의한 약물 오남용 문제는 여전하다.
꿀벌들을 튼튼하게 관리하려면 수의사에 의한 진단·처방, 기본적인 사양관리 원칙 준수가 중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대한꿀벌수의사회(회장 임윤규)는 11월 30일(목) 제주국제컨벤션센터에서 열린 대한수의학회 2023 추계국제학술대회에서 꿀벌 세션을 열었다.
먹이 부족, 농약, 전염병, 응애..다각도로 위협받는 꿀벌
허주행 꿀벌수의사회 업무부회장은 “올해는 그나마 작년, 재작년보다는 월동봉군 소멸피해가 덜한 상황이지만 겨울이 끝날 때까지 방심할 순 없다”고 말했다.
2021년말 사회적으로 주목을 받았던 겨울철 꿀벌 실종현상은 지난 겨울 더욱 두드러졌다. 한국양봉농협 자체 조사결과 조합원 사육봉군의 63%가 사라졌다.
꿀벌 실종현상의 원인은 복합적이다. 사육 밀도 증가와 기후변화로 인한 먹이 부족, 외부 농약 노출, 응애를 포함한 각종 전염병과 그에 따른 항생제·살충제 남용, 말벌 피해 등이 다각도로 꿀벌을 위협한다.
이날 발표에 따르면, 국내 봉군밀도는 1㎢당 21.79봉군으로 뉴질랜드(3)의 7배, 미국(0.27)의 80배에 달한다. 타 가축에 비해 초기투자비용이나 규제장벽이 낮아 귀농·귀촌과 함께 양봉농가도 늘어나면서 봉군밀도가 크게 증가했다.
밀원수는 늘지 않는데 꿀벌이 증가하니 먹이가 부족해진다. 벌들의 먹이활동영역이 겹치면서 전염병 확산에도 취약해졌다.
기후변화도 먹이를 더욱 부족하게 만든다. 환경에 살포되는 농약도 꿀벌을 위협한다. 소나무재선충병 방제를 위해 살포되는 네오니코티노이드 계열 농약은 꿀벌의 귀소를 감소시키는 등의 부작용으로 유럽에서는 사용이 금지되어 있다.
가을은 꿀벌이 월동을 준비하는 중요한 시기이지만, 벼 수확철이기도 하다. 논에 드론으로 살포되는 농약은 꿀벌의 면역력을 저하시킨다.
양봉농협·꿀벌동물병원 왕진 현장 PCR 진단
검은여왕벌방바이러스 양성률 75%
법정전염병 부저병은 검사 기피 의심
허주행 부회장은 “응애 문제와 질병이 (꿀벌 실종현상의) 큰 원인”이라며 “꿀벌의 활동반경이 겹치면서 질병이 엄청나게 빨리 확산될 수 있는 환경”이라고 지목했다.
그러면서 한국양봉농협 동물병원과 대전 꿀벌동물병원이 실시한 꿀벌 전염병 검사결과를 소개했다. 실험실적 검사는 물론 포스트바이오와 협력해 도입한 현장PCR기기를 활용했다.
2020년부터 본격화한 검사실적은 매년 증가 추세를 보였다. 지난달까지 누적 3,554건을 검사했다. 꿀벌에서 알려진 감염병 36종 중에서 국내에서 주로 문제되는 14종을 검사하고 있다.
이날 발표한 검사결과에 따르면, 바이러스성 질병 중에서는 검은여왕벌방바이러스(BQCV)가 가장 만연되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여왕벌이나 애벌레가 썩어 검게 변하는 양상을 보이는 BQCV의 양성률은 75%에 달했다.
날개불구바이러스(DWV), 이스라엘급성마비증바이러스(IAPV)의 양성률도 25%가 넘었다. 전체 검사질병 중에서 가장 많이 검출되는 질병 TOP3가 이들 바이러스성 질병이었다.
반면 주요 세균성질병으로 꼽히는 부저병의 양성률은 5~8%대에 그쳤다. 이에 대해 허주행 부회장은 부저병이 법정 가축전염병이라 과소평가됐을 가능성을 함께 지목했다.
타 축종의 2~3종 가축전염병과 마찬가지로 병성감정기관에서 법정 가축전염병 양성으로 진단되면 이동제한 등의 방역조치가 이어지며 경제적 피해를 입을 수 있다 보니, 아예 검사의뢰 자체를 꺼리게 된다는 것이다.
바이러스성 질병 이외에는 설사 증상이 특징적인 진균성 질병 ‘노제마증’이 20%로 가장 높은 양성률을 보였다.
관납 지원이 부추기는 약물 오남용
수의사에 의한 진단·처치, 사양관리 기본원칙 강조
허주행 부회장은 “꿀벌은 바이러스 등 감염병에 상당히 취약하다. 백신도 없고, 차단방역도 사실상 어렵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농가의 약물 오남용이 꿀벌 피해를 악화시킨다는 점을 함께 지목했다. 꿀벌 사용이 허가된 약물을 많이 사용하는 것은 물론 허가되지 않은 타축종용 항생제·살충제 등을 다양하게 오남용한다는 것이다.
관납 지원제도가 이 같은 오남용을 부추긴다. 허주행 부회장은 “매년 상반기에 공짜로 약을 나눠주다 보니 일부 양봉농가는 경험에 의존해 약부터 쓰고 보는 식”이라고 꼬집었다.
신호철 건국대 교수는 이날 식약처 의뢰로 수행했던 PLS 도입 대비 벌꿀 중 잔류동물용의약품·농약 동시시험법 개발 연구를 소개했다. 당시 국내에 꿀벌용으로 허가됐던 항생제·살충제 9종뿐만 아니라 해외에서 쓰이는 주요 약물까지 포함해 검사법을 개발했다.
여기에는 엔로플록사신이나 테트라사이클린, 피프로닐 등 타 축종 축산물에서도 항생제내성이나 잔류문제가 지목됐던 주요 약물이 포함됐다.
연구진은 개발한 잔류시험을 활용해 당시 시판 중이던 아카시아꿀·잡화꿀·밤꿀·마누카꿀·로얄젤리 등 양봉제품 43종을 실험적으로 모니터링했는데, 국내에서는 꿀벌에 사용이 허가되지 않은 약물도 상당수 검출됐다.
신 교수는 “잔류 정도가 심각하진 않았지만 확보한 시료의 상당수에서 잔류가 확인됐다. 많은 약물에 꿀벌들이 노출되어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고 설명했다.
일부 살충제의 경우 꿀벌에 직접적으로 사용하지 않았더라도 먹이활동 과정에서 주변 환경으로부터 노출됐을 수 있지만, 항생제 잔류는 농가 사용을 강력히 시사한다는 분석도 나왔다.
허주행 부회장은 “올해는 벌꿀 작황이 좋아 먹이가 풍부해 벌들의 상황도 예년보다는 좋다”면서도 “자가진료에 의존해 약물을 오남용하면 결과가 좋지 않다. 수의사가 정확한 진단을 내리고 그에 맞게 올바른 처치가 이어져야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당부했다.
다른 축종에 쓰이는 영양제나 약품을 오남용하기 보다는 먹이를 충분히 공급하고 사양관리에 소독을 철저히 실시하는 등 기본 원칙을 지킬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한다는 점을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