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동물병원 항생제 처방률 영국과 비슷..다빈도 성분 15종이 처방 92% 차지
동물병원 100곳 전자차트 4년치 분석해 항생제 처방실태 파악한 ‘실사용데이터’ 첫 선..EMR 데이터화로 ‘근거기반 수의학’ 강화
1일 제주국제컨벤션센터에서 열린 대한수의학회 국제학술대회에서는 동물병원의 전자의무기록(EMR)에 대한 세션이 별도로 마련됐다.
이날 세션은 개별 동물병원에서 전자차트에 만들고 있는 의무기록을 모아 빅데이터로 만들어야 한다는데 주목했다.
분석할 수 있는 빅데이터가 되어야 근거기반 수의학(evidence-based veterinary medicine), 더 나아가 정밀의료(precision medicine) 발전의 토대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창민 전남대 교수는 “이미 국내 동물병원 대다수에 EMR이 보편화됐지만 분석하기에는 불가능한 형태다. 의료데이터로서는 가치가 높지 않다”고 지적했다. 전자적으로 기록되곤 있지만 해당 환자를 치료할 때만 활용될 뿐 빅데이터로 모이진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미 해외에서는 동물의료 빅데이터를 활용한 연구가 이어지고 있다. SAVSNET, VetCompass 등을 운영하는 영국이 대표적이다.
개 승모판폐쇄부전 893마리의 의무기록을 분석해 예후인자를 규명하거나, 개 48만마리에서 스테로이드·항생제 사용의 당뇨병 위험증가 가능성을 회고적으로 분석하는 식이다.
실제 동물병원에서 만들어진 실사용데이터(Real World Data)를 활용해 근거기반 수의학을 강화하고 있는 것이다.
동물병원 100곳 전자차트 4년치 분석해 항생제 처방실태 파악
평균 항생제 처방률 22%..영국과 비슷
인체용의약품 비중 70%
국내에서도 이와 유사한 시도가 진행되고 있다. 이날 김형석 페토바이오 대표는 반려동물 항생제에 대한 실사용데이터 연구결과를 소개해 눈길을 끌었다.
페토바이오 연구진은 검역본부 의뢰로 국내 동물병원 100개소의 전자차트 데이터 최근 4년분을 분석해 항생제 처방 실태를 조사했다. 항생제 성분명은 물론, 제품명, 약어 등을 모두 포함해 자연어 처리 기술을 적용했다. 분석 대상에 포함된 전체 내원건수는 311만건에 달한다.
조사대상 동물병원은 지역별로는 수도권 76개소와 비수도권 24개소, 규모별로는 중소형(수의사 4인 이하) 38개소와 대형(수의사 5인 이상) 62개소로 구성됐다.
인체용 항생제까지 포함한 반려동물병원의 본격적인 항생제 사용량 통계조사는 이번이 처음이다.
분석 결과 조사대상 동물병원의 전체 방문건수 대비 항생제 처방률은 22%를 기록했다. 동물병원에 내원한 환축 5마리 중 1마리에 항생제가 처방된 셈이다.
김형석 대표는 “영국에서의 선행 연구에서 21~25%의 처방률을 보인 것과 비슷한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조사대상 동물병원에서 쓰인 항생제는 55성분 218품목으로 확인됐다. 이중 동물약으로 허가된 성분은 25종, 인체약으로 허가된 품목은 41종, 동물약·인체약으로 모두 허가된 성분은 11종으로 나타났다.
이중 많이 쓰이는 상위 15개 성분이 전체 항생제 처방의 92.4%를 차지했다. Cefalexin, Amoxicillin-Clavulanate, Metronidazole이 가장 많이 처방된 항생제였다.
조사대상 동물병원에서 처방된 항생제의 70%가 인체용의약품이었다.
동물약·인체약 모두 품목허가된 성분들의 경우 성분에 따라 비중이 달랐다. 동물병원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항생제인 Cefalexin의 경우 인체약 사용비율이 96%로 압도적이었지만, Amoxicillin-Clavulanate는 58대42로 큰 격차는 아니었다.
사용목적별로는 감염성질환 치료가 82%로 대다수를 차지했다. 수술에서의 예방적 사용비율은 7%에 그쳤다(미분류11%).
사람에서 중요한 항생제, 동물병원에서도 쓰여
처방량 점차 증가 추세
향후 실사용데이터 분석 연구로 발전 기대
사람에서 중요한 항생제도 동물병원에서 다수 사용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동물병원 다빈도 처방 항생제 성분 15종 중 7종이 사람에서 중요한 항생제(CIAs)로 세계보건기구가 지정한 것들이다. 여기에는 엔로플록사신 등 매우 중요한 항생제(HP-CIAs) 4종도 포함된다. 이들이 조사대상 동물병원 항생제 처방의 40%를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항생제 처방이 점점 증가하는 추세라는 점도 눈길을 끈다.
조사대상 동물병원에서 사용된 항생제는 2019년 13.1DAPD에서 2022년 16.3DAPD로 꾸준히 증가하는 경향을 보였다(DAPD:1000마리의 동물에서 측정되는 일일 의약품 사용량 지표).
김형석 대표는 “일단 어떤 항생제를 얼마나 사용하는지 기초데이터를 확보하는데 초점을 맞췄다”면서 사람에서 실사용데이터를 활용한 연구가 이미 보편화되어 있는만큼 동물에서도 향후 실제 진료에 도움을 주는 방향으로 발전할 수 있다는 점을 시사했다.
특정 질병에서 어떤 처방이 더 효과가 좋은지를 비교 분석하거나, 인체약을 사용했던 실사용데이터를 동물약 품목허가를 위한 시험자료로 활용하는 식이다.
김 대표는 “대규모 임상시험을 요구하기 어려운 수의 분야에서는 실사용데이터 연구가 활성화되고 적극 활용되어야 한다고 본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