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 신경근육병증 논란에도 역학조사 못했다..법령·체계 개편 필요성 지목

충북대 민경덕·이범준 교수 ‘반려동물 질병 예찰 및 역학조사 체계의 현황과 과제’ 조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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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나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AI)가 발병하면 역학조사가 벌어진다. 직접적인 발생원인을 규명하거나 위험요소를 분석하기 위한 자료를 만든다.

하지만 반려동물에서는 원인 불명의 질환으로 인한 폐사가 이어져도 별다른 역학조사가 진행되지 못하고 있다. 법적 근거도 주체도 불명확한 채로 있다.

충북대 수의대 민경덕·이범준 교수는 국내 반려동물 질병 예찰 및 역학조사 체계의 현황과 과제를 조명한 리뷰 논문을 대한수의학회 학술지 KJVR에 6월 발표했다.

최근 들어 국내에서는 반려동물이 다수 폐사한 사례가 연이어 발생했다. 2023년 서울의 동물보호시설 2곳에서 H5N1형 고병원성 AI에 감염된 고양이가 폐사했다. 이중 한 곳에서는 38마리가 한 달 새에 집단 폐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올해는 고양이에서 원인불명의 신경근육병증이 논란이 됐다. 수의사들과 반려묘 보호자들 사이에서 심하면 폐사에 이르는 신경근육병증이 다발한다는 이야기가 돌면서 수의사회와 동물보호단체, 정부가 자체 조사를 벌였다.

하지만 잠재적인 원인으로 지목됐던 사료에 대한 유해물질 검사에서 별다른 이상이 발견되지 않았고, 피해규모조차 공식적으로 집계되지 못한 상태다.

연구진은 “노출된 고양이와 그렇지 않은 고양이의 위험을 비교하기 위한 역학조사 대신 사료에서 유해물질을 검출하는데 초점을 맞췄다”면서 “역학조사가 부족해 구체적인 원인과 연관성을 찾기 어려울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국내에서 반려동물에 대한 질병 감시, 역학조사를 벌일 체계가 낙후되어 있다는 점을 꼬집었다. 이를 주도할 기관도 없고, 역학조사를 벌일 법적 근거도 없는데다, 신뢰할 수 있는 의료데이터를 수집할 시스템도 부재하다는 것이다.

농장동물의 전염병은 가축전염병예방법을 축으로 관리한다. 가축전염병예방법이 규정한 법정 전염병은 평시에 발병 여부를 감시하고, 신고가 의무화되어 있다. 구제역이나 고병원성 AI 등 주요 전염병이 확인되면 역학조사를 벌이기도 한다.

하지만 반려동물에는 관련 지침이 없다. 가축전염병예방법에 광견병이 포함된 정도다. 법정 전염병이 아닌 질병으로 역학조사를 벌이기도 어렵다.

그나마 지난해 고양이에서 발병한 고병원성 AI에 대해 역학조사가 진행됐던 것은 고병원성 AI가 법정 전염병이었기 때문이다. 신경근육병증을 일으킨 원인이 가늠되지 않는 상태에서는 역학조사를 벌일 법적 근거도 불분명하다.

설령 반려동물의 질병 문제에 대해 역학조사를 벌이려 해도 의료데이터를 확보할 수 있는 방법부터 마땅치 않다. 다수의 동물병원이 진료과정에서 생성한 데이터를 잘 모으면 질병의 유병률이나 시공간적 추세 등 유용한 정보를 확보할 수 있지만, 여의치 않다.

최근 대한수의사회가 고양이 신경근육병증 증례에 대한 진단·치료 정보를 수집했지만 온라인 설문조사나 이메일로 개별 동물병원이 일일이 응답하는데 의존하는 형편이다.

반면 영국은 SAVSNET이나 VetCompass와 같은 이니셔티브를 통해 다수의 동물병원으로부터 의료데이터를 모아 유의미한 분석 결과를 내놓고 있다.

   

연구진은 반려동물 질병 감시와 역학조사 체계를 수립하기 위한 과제를 제언했다.

질병 감시 및 역학조사를 담당할 기관을 명확히 해야 한다면서 검역본부를 현실적인 대안으로 제시했다. 영국의 SAVSNET이나 VetCompass가 대학이 중심이 된다는 점을 지목하며 민관 파트너십 필요성도 덧붙였다.

반려동물 질병을 감시하고 역학조사할 수 있는 법적 근거 마련도 촉구했다. 반려동물과 사람이 함께 감염되는 인수공통전염병은 공중보건 측면에서도 중요한만큼 가축전염병예방법에 주요 반려동물 질병을 감시 및 역학조사 대상으로 포함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아울러 반려동물과 농장동물 모두 원인 불명의 질병에 대해서도 역학조사를 실시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해야 한다는 점도 지목했다.

의료 데이터 수집을 위한 틀을 만들고, 수의사에 대한 역학 관련 교육을 강화해야 한다는 점도 과제로 꼽았다.

특히 표준 코드를 수의사들이 사용하도록 강제하는 것은 행정적 부담이 큰 만큼, 수의사들이 생성한 데이터를 표준화된 코드 정보로 변환하는 시스템을 적용하는 편이 현실적이라는 점을 덧붙였다.

민경덕 교수는 “(고양이 신경근육병증) 사태를 지켜보면서 역학조사 없이 무언가를 원인이다, 아니다 논쟁하는 것이 답답하다는 생각이 들었다”면서 “역학조사만으로 인과관계를 확정할 수는 없지만, 인과관계를 판정하는데 분명히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누군가의 잘못이라기 보다는 법적인 규정이 없는 것이 문제”라며 “이번 사태를 계기로 다음번에는 역학조사가 시의성 있게 이뤄질 수 있도록 규정을 마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민 교수는 “동물의 질병 원인을 밝히는 것은 원헬스 관점에서 사람 건강에 대한 위해요인을 사전에 찾아내는 일”이라며 “비감염성 질병을 포함한 원인미상 질병에 대한 역학조사체계를 갖추는 것은 동물뿐만 아니라 사람의 건강에도 도움이 된다”고 강조했다.

고양이 신경근육병증 논란에도 역학조사 못했다..법령·체계 개편 필요성 지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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