웅담 채취를 위해 기르는 ‘사육곰’은 현재 국내에 540여 마리가 남아 있습니다. 1985년 수입이 금지됐고, 2014년부터 진행된 중성화수술 사업이 지난해 마무리되면서 남아 있는 곰들이 사망하면 국내의 사육곰 산업도 사라지게 됩니다.
하지만 이들이 죽음을 맞이하기 전에 열악한 철창 속을 벗어난 새 보금자리를 찾아주려 하는 움직임이 시작되고 있습니다. 녹색연합은 내년까지 어린 사육곰 3마리를 임시보호소로 구출할 계획까지 세웠습니다.
아래는 곰들이 살아갈 수 있는 ‘생추어리’를 만들고자 나선 ‘Project Moon Bear’ 팀의 글입니다. 한겨례, 오마이뉴스 등에도 기 게재됐음을 알려드립니다 <편집자주>
우리가 곰 보금자리를 지으려는 이유
가축은 오랫동안 사람 손에 길러졌습니다. 그래서 인위적인 관리가 없으면 생존이 어렵습니다. 오랜 유전자 변이를 통해 태어날 때부터 정도의 차이는 있더라도 사람의 손길과 시선에 익숙하고 의존합니다.
그러나 야생에서 포획되거나 포획된 어미에게서 난 야생동물은 태생적으로 사람의 관리를 필요로 하지도 않고 익숙해지기도 어렵습니다.
종에 따라 다르지만, 야생동물을 사람이 관리하고 사육하는 것은 동물에게 큰 스트레스를 주기 때문에 해당 종에 대한 높은 이해와 고도화된 시설, 인력이 필요합니다.
반달가슴곰도 야생동물입니다. 천연기념물 329호이자 멸종위기 야생생물의 국제거래를 규제하는 CITES 협약 부속서 I 국제거래금지종입니다. 사람이 가두어 기른다고 몇 세대 안에 완전히 가축화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집약적 사육 환경에서는 물론이거니와 전시를 위한 동물원의 환경에서도 신체와 정신의 건강을 유지하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동물복지 선진국에서는 이 고등포유류를 반입하거나 기르는 데에 엄격한 기준을 두고 사실상 개인에게 사육을 허락하지 않습니다.
사육곰, 비극의 역사는 현재 진행형
한국의 산림청은 1980년대 초, 반달가슴곰을 식용으로 기르라고 홍보했습니다. 뒤늦게 잘못을 깨닫고 수입은 금지했지만, 한국은 중국과 함께 2018년에도 여전히 반달가슴곰의 쓸개를 팔 수 있도록 허용하는 단 두 개의 나라입니다.
웅담의 약효는 이미 언급이 무의미할 정도로 더 좋은 대체 약물이 많이 나와 있지만, 중국과 한국의 보신 문화는 아직 미신을 믿는 수준을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국가가 과학적 근거로 그 믿음을 반박할 수준에 이르지도 못했습니다.
곰의 사육과 도축은 어떠한 규제도 없이 이루어집니다.
2005년 환경부에서 정한 <사육곰 관리 지침>에는 “쾌적하고 깨끗한 환경에서 최소한의 생존권을 유지할 수 있는 적정한 사육시설”이라는 앞뒤가 맞지 않는 수사를 쓰고 있지만, 권고사항일 뿐 어느 농장에서 살아있는 곰의 쓸개즙을 채취하는지, 불법으로 번식을 시키고 있는지 관리감독하지 않습니다. 그럴 능력도 인력도 의지도 없습니다.
도축방법은 낮은 수준의 권고기준조차 없습니다. 마취약 주사 후 방혈하는 방법부터 목을 매다는 교수형까지 다양합니다. 이 과정에서 동물복지를 적용할 주체는 아무도 없습니다.
소관 부처인 환경부는 곰이 열 살 이상이 되면 죽여서 웅담을 쓸 수 있도록 하는 시행규칙만 만들어 놓았을 뿐입니다.
2017년에 완료한 반달가슴곰의 중성화는 더 이상의 증식을 막기 위한 임시방편이었습니다. 중성화 이후 곰들은 여전히 열악한 환경에서 지내야 했으므로 동물복지를 고려한 당국의 후속 조치가 필요했습니다.
그러나 2012년 충남대 산학 협력단의 용역연구에서 곰을 매입하는 방안을 제시하였음에도 불구하고 환경부는 중성화 이후 곰들이 좁은 시멘트 바닥에서 도축연한을 기다리며 살도록 방치하는 방안을 선택했습니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고통을 매일 매시간 느끼는 곰들의 일상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정책은 천박하고 조처는 무식했습니다.
농가는 도축 연한인 10년을 넘긴 개체들도 판매하지 못하거나 판매하지 않고 있습니다. 판로가 없기도 하거니와 추가 보상금에 대한 기대가 있기 때문입니다.
34개 농가 대부분은 정부의 전수 매입을 원합니다. 전수 매입 시 예상 매입비용은 3년간의 중성화 사업비를 넘지 않을 것으로 예상합니다. 환경부의 의지만 있으면 가능하다는 뜻입니다.
일부 농가에서는 보상금도 받고 곰도 도축해서 한몫을 챙기고 싶어 하고, 어떤 농가는 보신용 식품으로 곰 사육을 지속하고 싶어 하기도 합니다.
명백하게 동물학대임에도 동물보호법이 미비하고 행정이 무능하기 때문에 공공연히 할 수 있는 주장입니다.
사육곰의 복지를 위해 해야 할 일은 다양합니다.
야생생물 보호 및 관리에 관한 법률 (야생생물법), 동물원 및 수족관의 관리에 관한 법률 (동물원법) 등 멸종위기 야생동물 사육이나 거래에 관한 법률을 지금보다 구체적이고 촘촘하게 만들어야 합니다.
동물복지를 관할하는 정부부처와 지자체의 공무원들은 동물복지에 대해 공부를 해서 정상적인 행정이 가능해야 합니다. 모든 동물의 복지에 대해 일상적인 관리와 감독이 필요합니다.
지금은 사람과 가장 가까이 지내는 애완동물을 잔인하게 죽여도 동물단체의 노력이 없으면 기소조차 되지 않습니다. 매우 느리게 나아지고 있는 재판정에서의 사고도 조금 더 빠르게 변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가 하려는 활동은 당장 좁은 우리에서 먹이와 물도 제대로 얻어먹지 못하고 목숨만 붙어있는 540여 마리 반달가슴곰을 구조해 이들의 자연수명이 다 할 때까지 보호하는 것입니다.
자연으로 돌아가 살아낼 능력이 없는 곰들에게 자연과 같은 환경을 제공할 수는 없지만 최소한의 동물복지를 보장해주고자 합니다.
건강에 위해가 없도록 양질의 먹이와 물을 충분히 공급받을 것입니다. 곰들이 볕과 바람을 느끼고 싶을 때는 나갈 수 있고 눈과 비를 피하고 싶을 때에는 들어가 웅크리고 있을 것입니다.
수의사가 상주하며 곰들의 질병을 예방하고 사고에 대처할 것입니다. 곰들끼리 싸우지 않는 방법을 배우고 서로에게 또 사람에게 감정을 드러내어 소통하게 될 것입니다.
한국 정도의 경제력을 가진 나라에서 국가도 기업도 어느 단체와 개인도 야생동물을 위한 생추어리를 만들지 않았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입니다.
밀렵되거나 밀수된 야생동물을 압수해야 하지만, 동물을 보호할 곳이 없어서 학대의 현장에 그대로 두어야 하는 것이 현실입니다.
우리는 녹슨 철창을 열고 곰들에게 흙바닥과 하루 종일 할 일이 있는 공간을 만들고자 합니다. 야생동물을 가두려면 이렇게 가둬야 한다는 본을 짓고자 합니다. 그렇게 한국의 동물복지에 작은 숨구멍을 하나 더 뚫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