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의학 A to Z] 동물복지를 공부하는 수의사 [V:2부]
Veterinary humanities and social studies : 곰보금자리프로젝트 최태규
[1부] 수의인문사회학과 수의사에서 이어집니다<편집자주>
Q11. 수의사님의 전공인 동물복지가 수의인문사회학에 포함된다고 볼 수 있나요?
일단 제가 공부했던 응용동물행동학의 동물복지학 석사 과정이나 에든버러 대학의 동물복지 관련 연구들은 자연과학에 가까워요.
동물의 행동을 통해 복지가 어떤 상태인지 평가하거나, 새로운 방법으로 어떤 동물의 고통이나 기분을 평가하고 행동을 관찰합니다. 자연과학적일 수밖에 없죠.
과학적인 기반을 제공하기 위한 연구이지만, 그게 다는 아닙니다. 그런 연구들이 사회에서 제도적으로 자리 잡을 수 있을까, 어떻게 합의할 것인가는 사회학적인 문제가 될 수 있어요.
물론 사람들을 설득하려면 과학적 증거는 매우 중요하죠. 하지만 동물 윤리나 인문학적·철학적 기반이 사회에 존재해야 정책으로까지 나아갈 수 있습니다.
수의인문사회학에 동물복지 분야가 들어간다기 보단 인간동물학, 동물윤리학, 인류학처럼 물고 물린 교집합이 있는 것 같아요.
Q12. 동물복지를 공부할 장소로 영국을 택한 이유가 있나요?
동물복지 연구에서 미국과 유럽은 분위기가 많이 다릅니다. 학풍도 다르고 연구주제들도 달라요.
미국의 연구는 대기업과 사이가 좋아요. 타이슨 푸드(Tyson Foods)같은 초거대 기업이나 맥도날드, 버거킹처럼 축산물을 사용하는 글로벌 기업과 협력한 연구가 많아요.
물론 그 기업을 통해 길러지는 동물의 복지가 나아질 수도 있죠. 하지만 이들에게 면죄부를 줄 수도 있습니다. 어쩔 수 없이 독립적인 연구결과를 내기는 힘들겠죠.
Q13. 유학 후 돌아와서 동물원에서 활동하셨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동물원에서의 동물복지에 대한 연구도 활발한가요?
에든버러에서는 에든버러 동물원과 에든버러에 있는 몇몇 대학이 함께 연구하는 경우가 많아요. 영국왕립수의과대학이면 런던동물원과 일을 많이 하고요.
국내에는 그런 연구가 부족해요. ‘동물원 동물에게 이런 치료를 해봤다’는 식의 임상적인 내용은 있지만, 동물의 입장에서 하는 연구는 아닙니다. 학교 안에서도 이런 연구를 이끌어 갈 만한 분을 찾기 어렵네요.
사실 제가 영국에서 공부를 하고 돌아오면서 (국내에) 자리가 없을 것이란 말을 많이 들었어요. 대개 그런 말씀은 교수 자리를 얘기한 겁니다. 사실 교수는 안 하면 되거든요.
그 ‘자리’를 제가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하면 엄청 많아요. 돈이 안돼서 그렇지(웃음). 할 일은 많은데 제가 다 못해내서 문제죠.
Q14. <관계와 경계: 코로나 시대의 인간과 동물>-“팬데믹 상황의 동물원 동물들” 강연에서 ‘동물과 가장많은 시간을 보내고 가까운 거리를 유지하는 사육사의 직업 만족도는 동물복지와 직결된다’는 내용이 흥미로웠습니다. 이를 위한 수의사의 역할은 무엇인가요?
수의사만이 할 수 있는 일은 많죠. 그 중에서도 핵심은 약물입니다. 통증에 대해서 가장 잘 알고, 통증을 줄여주는 약물을 쓰죠.
Q15. 동물복지에서 통증이 큰 부분을 차지하는데, 동물실험에서도 중요할 것 같아요
통증을 일으키는 일은 동물실험에서 아주 큰 부분을 차지합니다. 사실 동물복지를 전공하지 않아도 수의사라면 통증의 등급을 나누고 실험과정을 결정하는데 개입할 수 있어야 합니다. 실험동물전임수의사 제도가 논의되는 것도 이 때문이겠죠.
시대에 따라서 실험동물 윤리가 점점 발전하고 있어요. 동물복지에 대한 논의가 많이 이루어진 나라에서는 (심각한 고통을 유발하는) 실험들을 점점 하기 힘들어지고 있어요. 한국은 아직 아니지만요.
우리나라에도 동물실험윤리위원회가 있지만, 실제 구성이나 작동방식을 보면 한계가 있어요. 문제를 알아도 제기하기 힘들고, 문제 제기를 한다 해도 수의사는 소수에 불과합니다. 윤리위가 동물실험기관의 소속이기도 하고요.
아직은 동물실험관리에 수의사가 반드시 참여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단계지만, 정작 수의사가 들어가서 어떤 역할을 하느냐에 대한 문제도 함께 논의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Q16. 반려동물, 농장동물, 동물원, 야생동물, 사육곰 등 저마다 상황이 다르고 동물복지 문제도 다를 것 같습니다. 현재 가장 문제가 시급한 분야가 어디인지 궁금합니다.
가장 시급한 문제는 마릿수로 보나 삶의 질로 보나 농장동물이겠죠. 짧게 살지만, 거기서 조금만 더 살면 못 견디고 죽어버릴 정도의 상황에 놓여 있으니까요.
그 쪽이 급하다고 생각하지만 곰보금자리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는 이유는 이 문제가 곧 해결될 수 있다고 생각해서입니다. 그것도 짧은 시간 안에요.
자꾸 관심이 가는 분야는 물고기 복지입니다. 농장동물 중에서도 가장 많고, 가장 소외된 분야이기도 합니다.
동물복지축산농장 인증제도는 있지만 물고기 동물복지 농장은 없어요. 관리부서가 달라서 이기도 하지만, 동물보호법에서도 식용으로 쓰이는 물고기는 척추동물이지만 보호 대상이 안됩니다. 제일 소외되어서 그런가 마음이 가네요.
Q17. 야생동물의 복지에 관한 연구도 이루어지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야생동물은 동물복지의 영역에서 그다지 바라보고 있지 않습니다. 동물복지의 여러 정의들 중 ‘사람의 관리 하에 있는 동물들의 정신적·신체적 안녕을 걱정하는 것’이라는 정의도 있거든요.
야생에서는 누군가 계속 살고, 죽고, 다칩니다. 어떤 개체는 경쟁에서 밀리기도 하고, 어떤 종들은 서로를 돕습니다. 그냥 알아서 벌어지는 일은 건드리지 않는 것이 가장 좋죠. 물론 이미 많이 건드려 놔서 안 다룰 수는 없지만요.
가령 야생동물이 병에 걸렸거나 아파 보일 때 ‘안락사를 해줘야 하는가’를 고민한다면 여러 맥락이 있을 수 있습니다. 사람에게 잡혀 왔다면 안락사를 할 수 있겠지만, 그렇지 않고 죽어가는 동물들을 찾아다니면서 안락사를 해줘야 할까요? 다 구조해야 할까요? 북극곰이 굶어 죽는다고 물범을 잡아다 주어야 하는 것은 아니니까요.
Q18. 인문잡지 <한편> 4호 동물-“동물원에서의 죽음”과 <관계와 경계: 코로나 시대의 인간과 동물>-“팬데믹 상황의 동물원 동물들”에서 동물원 수의사로서의 경험을 공유해주셨는데요, 동물원이나 대동물 수의사로 근무하면서도 다양한 갈등이 있었을 것 같습니다. 그러한 일상에서도 수의인문사회학을 대입해볼 지점이 있을까요?
대동물 임상은 별로 하고 싶었던 일은 아니에요. 농장주의 경제적 이익을 위해서, 이해타산이 맞는 선에서 진료를 해야 되니 별로였어요. 그렇지만 뭐 먹고 살려면 싫은 것도 해야 하니까요.
동물원에는 ‘곰 생츄어리를 만들어보겠다’는 생각으로 들어갔어요. 거기서도 동물을 어떻게 다룰지, 진료 수준을 어느 정도로 가져갈 지, 안락사를 할지 말지, 인공수정 실험을 하는 것이 옳은지 등을 가지고 동물원 구성원 분들과 이야기를 나눴죠. 저에게 발전적인 생각이 많이 들기도 했고요.
수의사도, 사육사도, 테크니션도 있지만 동물에 대한 생물학적·수의학적 지식만으로 할 수 있는 일은 정말 별로 없어요. 더 중요한 것은 ‘동물을 어떻게, 무엇으로 대할 것인가’ 입니다.
동물을 무조건 사람과 똑같이 생각하면 좋다는 건 아닙니다. 오히려 그건 더 나빠요. 동물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고 해주는 것, 그 필요가 사람의 필요와 상충될 때는 절충하는 것이 되겠죠.
하지만 아직까지는 사람 위주로 생각하는 것 같아요. 가령 인공수정 같은 실험이 동물에게 무슨 의미가 있는지 고민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냥 인공수정을 할 수 있는지 없는지 알아보기 위해, 기술적인 성취를 위해 인간의 욕심으로 동물을 희생시키는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경우가 많아요. 인문학적, 철학적 고민이 없으면 그렇게 되기 쉽죠.
Q19. 그렇다면 동물복지 측면에서는 인공수정 같은 기술로 멸종위기종 동물들을 보전하는 것이 의미가 없는 일인가요?
물론 현실적으로는 동물복지의 관점만으로 볼 순 없겠죠. 생태학적인 윤리나 동물의 권리 등을 여러 맥락에서 조합해 판단해야 합니다.
동물복지의 관점만 가지고 보자면, 동물을 생산하기 위한 보전사업이 학대라는 겁니다.
Q20. 수의인문사회학이라는 분야가 국내에는 많이 생소한 것 같아요. 관심있는 학생이나 수의사가 경험해볼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요?
사람을 만나보는게 가장 좋습니다. 수의인문사회학 교실분들을 찾아가 물어보는 거죠. 실습이 맞는 분야는 아닌 것 같아요.
비슷한 생각을 가진 분들끼리 스터디를 하는 것도 좋습니다. 제가 영국에 있을 때도 에든버러 수의과대학에서 학생들이 주도해 동물윤리 컨퍼런스를 했어요. 영국뿐만 아니라 유럽, 미국에 있는 윤리학자까지 모여서 2박 3일 동안 ‘수의사는 어떤 사람이어야 하는지’ 등을 이야기합니다.
한국에서도 전국 수의과대학이 다 같이 해도 재밌겠다고 생각했어요.
[3부 동물의 죽음과 동물복지]로 이어집니다.
윤서현 기자 dbstjgus981218@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