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의학 A to Z] 동물의 죽음과 동물복지 [V:3부]
Veterinary humanities and social studies : 곰보금자리프로젝트 최태규
[2부] 동물복지를 공부하는 수의사에서 이어집니다<편집자주>
Q21. 인문잡지 <한편> 4호 동물- “동물원에서의 죽음”에서 “죽은 동물에게도 존엄성을 부여하는 일은 살아있는 동물에게 실질적인 이득을 준다”는 부분이 인상깊었습니다
일단 동물복지라는 말은 살아있는 동물에게만 적용됩니다. ‘어떻게 죽이느냐’, ‘동물이 어떻게 느끼느냐’까지가 동물복지의 영역이죠. 죽은 동물에게는 의식도 통증도 행복도 고통도 없으니 복지를 이야기하진 않아요.
다만 우리가 죽은 동물을 대하는 태도는 살아있는 동물을 대하는 태도에 수용될 수밖에 없어요. 그 반대도 마찬가지고요. 서로 연관성을 갖기 때문에 죽은 동물을 어떻게 대하는지 고민이 필요하다는 이야기였습니다.
동물원에서 죽은 동물은 대부분 의료폐기물로 처리되거나, 큰 동물들은 렌더링(rendering)됩니다. 고온·고압으로 처리한 후 갈아서 비료로 사용합니다.
그 방법이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다만 기억하는 방식은 고민해봐야 한다는 거죠.
사실 동물원은 (동물이 죽었다는) 기억을 하지 않으려고 애를 써요. 동물원에서 동물이 죽었다는 사실을 내보이지 않으려 하고 지우려 하죠. 그게 흠이라고 생각하거든요.
하지만 죽지 않는 동물은 없어요. 지금 동물원에 살아 있는 애들보다 더 많은 애들이 죽어갑니다. ‘그들의 존재를 지우는 것과 기억하는 것 중에 지금 살아 있는 동물들의 복지에 어느 편이 도움이 될까’를 생각해보면 후자라고 생각합니다.
사육사든 수의사든 동물원을 좋아하고 동물과 관계를 가졌던 사람들은 이제 죽어 없어진 동물들을 떠올리고 싶은 마음이 클 것이라 생각해요. 사람이 죽으면 무덤이나 납골당을 만드는 것처럼요.
Q22. 책에서 “동물의 고통을 중요하게 여기는 동물복지학에서는 동물이 살아서 고통받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면 안락사 시키는 것이 인도적이라고 판단한다. 동물복지는 동물이 살아 있는 동안 겪는 좋은 경험과 좋지 않은 경험의 축적이고, 동물의 삶이란 고통으로만 가득 찰 때 살 만한 삶, 존엄한 삶이 아니라는 것을 인간이 판단할 책임이 있다는 관점이다”는 내용이 다소 신선했습니다.
반려동물 보호자의 안락사 결정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안락사에는 여러 이유가 있을 수 있어요. 아파서 죽음을 앞두게 되면 안락사를 고민하기도 하지만, 극단적으로는 보호자가 더 이상 키우지 못하게 됐다며 안락사를 요청하는 경우도 있죠.
보호자가 안락사를 생각한다 해도 개인의 부족한 경험과 인식만으로 판단할 것은 아닙니다. 보호자가 안락사를 하려는 원인에 대해 사회가 대안을 제시해주고, 수의사도 동물의 입장을 먼저 생각하며 훨씬 적극적인 역할을 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가령 생애말기 동물을 기르는 보호자가 “18살이 되고, 걷지도 못하고, 대소변을 손으로 받아내야 하고, 밤에도 아파서 낑낑대고, 마약성 진통제까지 써도 잠을 못 자는데 수의사는 안락사를 거부한다. 어떻게 해야 하나”고 이야기를 해요.
수의사 입장에서야 며칠이라도 더 살 수 있다면 시도해볼 수 있겠죠. 하지만 저는 그 수의사가 틀린 판단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이런 케이스가 많아요.
최종적으로는 보호자가 결정하겠지만, 수의사가 그에 필요한 지식을 주고 ‘(안락사를)하겠다, 하지 않겠다’의 옵션을 풍부하게 줄 수 있어야 합니다. 수의사는 가이드를 주는 사람이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Q23. 밥을 잘 먹는지를 삶의 의지로 생각하고 안락사를 판단하는 사람들도 있어요.
동물에게 ‘살려는 의지’가 무엇인지 사람 위주로 생각하다 보니 먹는 것으로 판단한 것 같은데 착오가 좀 있죠.
장염 걸려 아파서 밥을 안 먹는 개는 그럼 살려는 의지가 없을까요? 말이 안 되죠. 먹을 만한 상황이면 먹고, 못 먹을 만한 상황이면 못 먹는 거죠.
‘개들이 죽을 때가 되면 안다. 그래서 원래 잘 먹는 애인데 입을 딱 닫고 안 먹는다’는 이야기들을 실제로도 많이 하는데..그냥 아파서 그런 겁니다.
Q24. 그렇다면 유기동물, 야생동물처럼 주인이 없는 동물은 안락사에 대한 판단이 오로지 수의사의 몫인 건가요?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동물원이 아니라면 야생동물의 경우 ‘야생으로 돌아가 생태계의 일원이 될 수 있는지’가 기준입니다. 그런데 수의사는 사실 생태를 깊이 배우지는 않죠. 그래서 생태를 공부한 사람, 재활을 담당하는 사람과 함께 판단해야 합니다.
유기동물도 마찬가지입니다. 지역의 유기동물 숫자, 입양가능성, 재정상태 등을 다 고려해야죠.
Q25. 동물복지에서 바라보는 안락사에 대한 견해가 이제껏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죽음’의 의미와 다소 상반되는 부분이 있는 것 같아 새롭습니다. 가치관 차이로 인한 갈등도 있었을 것 같아요.
갈등까지는 가지 않더라도 가치관 차이는 있고 의견들도 많이 다르죠. 수의사 집단 안에서도 일어날 수 있고, 동물보호단체와도 다른 부분이 있죠.
한국에서 동물보호단체라면 보통 ‘동물권’을 이야기하죠. 동물권도 스펙트럼이 넓어요. 하지만 엄격하게 보자면 ‘사람과 동물이 다를 게 없다’는 주장이 분명히 있어요.
저는 동물과 사람은 완전히 다르고, 다르게 대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어떤 부분에서는 같겠지만요. 고통이나 통증 같은 것을 다르게 대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복지를 위해서요.
사람과 동물은 복지를 위한 요구가 달라요. 동물도 종별로 개체별로 필요한 것은 다 달라요. 그들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아는 것이 동물복지입니다.
동물보호단체에서는 일반적으로 사람과 똑같이 대해야 동물을 윤리적으로 대하는 것처럼 생각하는 경향이 많아요. 예컨대 ‘죽이느냐 마느냐’의 문제에서 가장 많이 부딪히죠.
동물을 죽이는 것은 모든 것을 빼앗는 행위이고, 동물에게 죽고 싶은지 물어볼 수도 없으니 옳지 않다고 규정하는 경우가 많아요.
하지만 죽이는 일이 동물복지를 위해 중요한 수단이 될 수도 있어요.
가령 나이가 많아 심각한 질병으로 많이 아픈 동물이 있다면, 저는 더 심해지기 전에 빨리 보내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반면 수의사들은 대개 (안락사를) 하지 않으려고 해요. 정말 아파서 죽을 때까지 고치고 계속 치료하는 일이 어떤 선(善)처럼 되어 있거든요. 그렇게 배웠기도 하고, 경영 측면에서도 이득이 되죠.
아직 발전 과정인 것 같아요. 사실 동물복지를 제대로 배우지 못한 수의사 분들이 대부분이거든요.
반면 동물복지를 생각하는 수의학이 덕목으로 자리잡은 국가에서는 안락사 시점이 훨씬 빨라요. 안락사를 생각하면 보통 서구권에서 동물들이 자는 것처럼 주인과 헤어지는 장면이 떠오르죠? 자세히 보면 그 동물들은 그렇게 만신창이가 되어 있지 않아요. 주인과 안고 충분히 좋은 교감을 나눌 수 있는 상태에서 편안하게 떠나죠.
Q26. 안락사 시점이 빨라지고 자주 시행된다면 수의학의 발전을 저해할 수 있지 않을까요?
안락사를 하지 않고 계속 치료하는 이유 중에는 ‘이렇게 하면 고칠 수 있나?’라는 수의학적 호기심도 있습니다. 그 호기심이 수의학 발전의 원동력인 것도 사실이죠. 하지만 그 동물을 위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나중에 비슷한 케이스가 있으면 고칠 수 있게 된다’는 이야기도 많지만, 거기서 가치관이 조금 갈라집니다. ‘네(환자)가 아무리 힘들어도 나는 수의학 발전을 위해 해보겠다’고 한다면, 수의학 발전은 무엇을 위한 것일까요?
제가 수의과대학에 다닐 때에는 수의학이 동물을 위한 학문이 아니라고 단정지어 이야기하는 교수님이나 선배들이 많았어요. 사람을 위해서, 사람이 동물을 잘 이용하기 위해서라는 거죠.
하지만 이제는 사회가 수의사들에게 그렇게 이야기하진 않아요. 정해진 철학이나 윤리는 없어요. 시대에 따라서 계속 변하죠. 이제 변화한 시대는 수의사에게 더 높은 도덕성과 동물윤리 수준을 요구하고 있어요.
그럼 수의사는 그렇게 응해야 해요. 물건을 고치는 대장장이가 아니라, 살아있는 동물을 사회 안에서 치료해야 하는 임무를 받은 사람이니까요.
Q27. 수의사님이 생각하시는 국내의 동물복지 발전가능성과 방향이 궁금합니다
발전 가능성 정말 많아요. 지금 상태가 워낙 안 좋거든요.
동아시아에서 한국은 경제 수준에 비해 동물은 물론 사람에 대한 윤리 수준이 낮아요. 아시아권이 소수자나 약자에 대한 배려가 부족한 문화권이기도 하고요. 인권 수준이 올라야 동물권도 함께 올라갈 것 같아요.
가령 일본만 해도 동물복지가 아니라도 동물행동학 관련 연구는 꽤 있어요. 연구가 부족하다는 것은 현상을 파악조차 하지 못하고 있다는 말이거든요. 그래서 걱정이 좀 됩니다.
농식품부가 쓰는 동물복지 예산을 보면 무슨 개 사료를 개발하거나 반려견 놀이터 만드는 건설 예산이 대부분이에요. 놀이터 만들고 보호소 만들죠. 그 외에는 이렇다할 동물복지 예산이 없어요. ‘동물복지가 무엇인가’ 감을 못 잡고 있는 거죠.
앞으로 동물복지가 무엇인가, 동물에게 무엇이 필요한가, 반려동물을 어떻게 키워야 하는가에 대한 연구가 많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논의의 장도 열고요.
[4부 동물복지 실천가로 활동하는 수의사]로 이어집니다.
윤서현 기자 dbstjgus981218@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