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의학 A to Z] 동물복지 실천가로 활동하는 수의사 [V:4부]
Veterinary humanities and social studies : 곰보금자리프로젝트 최태규
[3부] 동물의 죽음과 동물복지에서 이어집니다<편집자주>
Q28. 곰보금자리프로젝트처럼 동물복지에 대한 생각을 실천으로 옮기고 있는 원동력이 궁금합니다.
제 성향이기도 하고 습관 같기도 한데, 저는 하고 싶은 것보다 해야 될 것 같은 걸 먼저 하는 편입니다. 하고 싶은 걸 하고 있으면 좀 죄책감이 들어요. 현실이 시궁창이라는 걸 계속 인지하려고 애쓰는 편이거든요. 그게 내 탓은 아니겠지만, 문제를 그냥 없는 셈치고 살기는 싫어요.
물론 그렇게 살지 않으려고 마음을 먹은 적도 있어요. 동물복지 공부도 ‘하고 싶은 걸 해야겠다’며 재미로 시작했죠. 그렇게 시작했는데 주변 분들도 ‘잘한다 잘한다’ 하시고, 칭찬받는 걸 좋아해서 그런가(웃음).
일 벌리면 안 된다고 계속 생각하면서도 일을 벌리는게 습관이고 어느새 발을 담가 놨죠. 사명감이라고 하긴 좀 그래요. 국내에 달리 활동하시는 분이 마땅치 않아서 계속 참여하는 느낌도 있어요.
국내 동물보호단체는 주로 개, 고양이에 집중하고 있어요. 농장동물이나 야생동물 관련 정책은 미비하게나마 만들어지고 있지만, 곰은 사육하고 있지만 농장동물도 야생동물도 애완동물도 아닙니다.
제도 측면에서 보면 야생동물인데 ‘보호받을 수 있는’ 야생동물에서는 예외로 빠져 있어요. 문제가 있다, 이건 잘못된 거라고 생각했죠.
웅담 문제를 지적하는 뉴스는 90년대부터 나왔어요. 그래도 계속 해결은 안됐죠. 곰들은 그냥 계속 똑같이 살았어요. 대학교 다닐 때까지는 저도 ‘저건 좀 아닌 것 같다’면서도 ‘누군가는 (개선하기 위한 활동을) 하겠지?’라고만 생각했죠.
하지만 한국에는 이렇다할 생추어리도 없고, 이 문제를 다루는 분들이 곰들의 입장에서 생각할 수 있다고 보기 어려웠어요. 곰에 대한 이야기만 집중적으로 하는 단체가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서 곰보금자리프로젝트를 시작하게 됐습니다.
사실 따져보면 곰은 개농장 문제보단 마릿수가 훨씬 적어요. 문제 해결이 눈 앞에 있는데 도달을 못하고 있는 셈이죠. ‘일단 문제를 건드리면 해결이 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한국의 경제적 수준이나 동물보호에 대한 인식이 올라가는 속도를 보면 전혀 못할 일이 아닙니다.
그래서 시작은 했는데, 이제 와서 갑자기 그만두면 이상하잖아요? 멀든 가깝든 주변에 동료분들도 항상 있고요.
Q29. 곰을 위한 생추어리 설립 진행상황도 궁금합니다
일단 정부에서 구례에 만들고 있어요. 올해 설계를 시작해 2023년이면 완공될 겁니다. 50~60마리 정도가 수용될 예정이죠.
아직 확정은 아니지만 국립생태원이 있는 충남 서천에 추가로 조성하자는 이야기도 나오고 있습니다.
민간 부문에서는 저희가 내년 고양시에 소규모로 시작할 계획입니다. 화천에 있는 곰들을 옮기는 것을 목표로요. 후원금으로 운영할 계획이지만, 정부에서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가능성을 만들고 싶어서 환경부와 계속 이야기하고 있어요.
Q30. 동물단체 활동 외에도 강의나 기고, 번역, 연구 등 다양한 활동을 하시느라 무척 바쁘실텐데요. 가장 만족하는 활동은 무엇인가요?
할 때 재미있는 일은 강의인 것 같아요. 제가 전하고 싶은 말씀을 드리고, 제 이야기를 다 들어주시고요.
보람 있는 일은 제가 쓰든 번역을 하든 글이 잘 나왔을 때입니다. 제가 잘 쓰고 싶다고 되는 일은 아니지만, 좋은 편집자와 좋은 주제를 만나면 괜찮은 글이 나올 때가 있죠.
동물복지 공부는 재미가 있어요. 공부가 재미있기 힘든데도 말이죠.
동물복지 연구에는 흥미로운 주제들도 많고, 동물복지 연구의 역사를 보면 시대마다 동물을 생각하는 철학도 보여요. ‘동물을 무엇으로 생각할 것인가’에 따라 연구의 수준도 목적도 변화하는 것이 재미있습니다.
Q31. 여러 활동을 하면서 수의사가 아닌 분들을 많이 만나실 것 같아요
수의사 집단 밖에서 사람들을 만나고 얘기하는 것이 수의사들에게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동물을 다루면서, 수의사가 아닌 사람들이요.
인문사회학 연구 측면에서 보면 수의사라는 집단은 아주 작아요. 의사와 비교해도 작죠. 그러면서도 다른 어떤 직업과도 겹치지 않는 독특한 메커니즘이 있습니다. 환자를 대하는데 환자와 대화할 수 없고, 보호자와의 소통도 해야 하고요.
수의사 집단 안에서 보면 데일리벳도 그렇고, 수의사 커뮤니티도 그렇고 ‘우리 것을 잘 지켜야 한다’는 것이 대명제이자 사명으로 받아들여지는 것 같아요. 그걸 못 지키는 사람은 나쁜 사람, 반대되는 이야기를 하는 사람도 나쁜 사람인 식이죠.
‘수의사가 이렇게 인정을 못 받는데, 거기다 대고 수의사의 의무를 이야기하다니, 수의사의 이익에 반하는 일이다’라고 여기기 쉬워요. 그런 분들도 실제로 많이 있는 것 같고요.
하지만 사회가 바라는 수의사의 모습이 무엇인지, 어떤 것을 기대하는지는 수의사 집단 바깥에서 이야기됩니다.
그래서 더욱 수의사 집단 바깥에서 동물을 다루는 분들과 만나는 일이 ‘수의사는 어떤 사람이어야 하는가’를 생각하는데 무척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Q32. 수의사로서 동물복지 활동을 실천할 때 좋은 점이나 어려운 점이 있을까요?
동물복지는 동물의 상태, 동물의 몸과 마음이 좋은지 나쁜지를 측정합니다. 동물을 좀더 잘 이해할 수 있으니 인문학적이지 않게 문제를 비판할 수 있어요.
철학자들의 다소 사변적인 이야기를 두고 ‘동물이 정말 어떻게 느끼고 있느냐’를 이야기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자면 수의사가 동물의 몸 상태를 가장 전문적으로 배우니 유리한 측면이 있죠.
반대로 수의과대학에서 자연과학 이외의 것들을 잘 배우지 못했다 보니 인문사회학적 소양은 좀 부족하죠. 책도 많이 안 봤고요(웃음). 그래서 철학이나 윤리가 동물을 어떻게 다루는지 따로 공부해야 하는 것이 단점이겠네요.
수의사라서 잘 모르게 되는 부분도 있어요. 수의과대학에서 훈련받는 것들 중 하나가 ‘감정이입을 하지 말라’는 겁니다. 정규과목으로 배우진 않지만 은연중에 계속 훈련을 받아요. 어떻게 보면 커리큘럼 바깥의 수의학 교육인 셈이죠.
사실 동물복지를 이야기할 때 동물에게 공감하는 것도 매우 중요한데, 의도적으로 그러지 않도록 몸에 베어 있는 셈이라..과학적이지 않아도 되는 상황에서도 자꾸 과학적이려고 하는 태도가 걸림돌이 되기도 합니다.
Q33. 앞으로 수의사님의 행보가 매우 궁금해집니다. 수의대 학생들에게도 조언 부탁드려요.
지금 주7일로 일하고 있는데 주5일제를 소망합니다. 어쨌든 재미있는 일이라 하긴 하는데 힘들어서 약간 쉬면서 하고 싶네요(웃음).
박사과정도 빨리 끝내고, 같이 공부할 수 있는 동료들과 함께 이야기할 수 있는 분들이 많이 생기면 좋겠어요.
뭔가 ‘수의사라면 이래야 해’라든가 ‘나이가 몇 살이면 뭘 해야 해’라고 생각하면, 다양하게 했던 재미있는 생각들이 그냥 추억으로 사라져요. 계속 화두를 붙들고 흥미를 느낄 수 있으면 좋겠네요.
사실 수의사 면허증이 있으면, 웬만하면 굶어 죽지는 않는 것 같아요(웃음). 돈 생각을 너무 많이 안 해도 될 것 같고요, 재미있게 살려고 생각하면 될 것 같습니다.
* * * *
맺으며
처음 ‘[수의학 A to Z] Veterinary humanities and social studies’ 주제를 선택했을 때 ‘우리학교에는 이런 과목이 없는데, 내가 평소 궁금했던 내용이 다른 사람들도 궁금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으로 생소한 학문을 짧게 들여다볼 수 있는 기사를 기획했습니다.
하지만 최태규 수의사님과의 인터뷰를 막상 진행하다 보니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너무나 많았고, 결국 4편에 나누어 작성해야 할 정도의 긴 원고를 작성하게 되었습니다. 이번 인터뷰에 흔쾌히 응해 주신 최태규 수의사님께 다시 한번 큰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1년동안 데일리벳 학생기자단 활동을 하며 다양한 기사를 썼지만 이번이 가장 어려운 주제였습니다.
인터뷰를 2주에 걸쳐 진행했던 만큼 물리적인 시간도 많이 필요했지만 편집의 난이도는 훨씬 어려웠고, 인터뷰를 준비하는 과정부터 탈고할 때까지 수의사님이 해 주셨던 답변 내용을 바탕으로 스스로에게 많은 질문을 던져 볼 수 있었습니다.
수의학의 범위는 정말 광범위하고, 같은 일을 하는 수의사여도 동물을 생각하는 방식이나 지향점이 모두 다를 수 있다는 생각이 저에게는 ‘어떤 생각을 가진 어떠한 태도의 수의사가 되어야 할까’를 고민해보는 기회가 된 것 같습니다.
모든 인터뷰 내용이 인상 깊었지만, 그 중에서도 다양한 사회현상에 관심을 가지려고 노력하는 저에게는 동물복지의 기본이 소수자에 대한 배려에서 비롯된다는 말이 유독 크게 와 닿았습니다.
또한 동물을 바라보는 관점의 차이도 놀라웠는데, 개와 고양이가 동물단체로부터 유독 각광받는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사람들의 시선은 수요에 따라 움직이고 있기에 더욱이 소수자에 대한 배려와 관심이 많아져야 한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제 모교인 충북대학교는 수의과대학 중 유일하게 동물복지 과목의 강의가 없다고 합니다. 이번 인터뷰를 통해 동물복지를 직접적으로 연구하지는 않더라도, 수의사가 될 사람이라면 동물복지가 무엇인지 이해하고 공부하는 것이 궁극적으로 모든 동물들에게 도움이 될 거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예과 시절 전공선택 과목으로 수의학사와 생명윤리 과목을 수강했는데, 수의사 출신의 교수님이 강의하시는 과목이 아니었음에도 수의대에 입학한 것이 가장 실감나는 과목이자 다음 수업이 기다려지는 몇 안 되는 과목이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이 자리를 빌려 저희 학교에도 제가 졸업하기 전에 하루 빨리 동물복지학 또는 (위의 2과목을 제외한) 수의인문사회학 강의가 생기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
윤서현 기자 dbstjgus981218@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