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수족관에 남은 돌고래 22마리, 바다로 돌아갈 수 있나
남은 남방큰돌고래 방류, 생추어리 조성 필요성 제기..동물원수족관법 개정은 청신호
국내 수족관에 남아 있는 돌고래를 방류하거나 생추어리를 만들어 옮겨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생추어리 조성은 빠른 시일 내에 성사되기 어려운 만큼, 그동안 동물원수족관법 개정과 수족관 사육환경 개선도 과제로 꼽힌다.
‘수족관 고래류 보호·관리방안 국회토론회’가 노웅래 의원, 동물복지문제연구소 어웨어, 동물을위한행동, 동물자유연대 주최로 17일 온라인 개최됐다.
돌고래 무단 반출입 사건에 방류·생추어리 대안 수면 위로
남은 남방큰돌고래 1마리도 바다에 돌려보내야
수족관 돌고래의 방류, 생추어리(바다쉼터) 문제가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른 것은 최근 국내 수족관 사이의 돌고래 무단 반출입이 적발되면서다.
4월 제주 퍼시픽 리솜에서 거제씨월드로 큰돌고래 2마리가 반출됐는데 이를 사전에 신고하지 않았던 것이다.
5월초 관할 환경청이 거제씨월드를 정기점검했지만 이 같은 반입사실을 밝히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환경부 조응찬 사무관은 이날 “이송과정의 신고 미이행에 대해 과태료를 처분하고, (양수 사실을 알리지 않은데 대해) 위계에 의한 공무집행방해 혐의로 거제씨월드를 고발했다”고 밝혔다.
당초 제주 퍼시픽 리솜은 큰돌고래 2마리와 남방큰돌고래 1마리를 보유하고 있었다. 이들 모두 방류할 계획이었지만 큰돌고래 2마리는 다른 수족관에 가게 됐다. 거제씨월드는 2014년 개장 이후 돌고래가 10마리 이상 폐사한 것으로 알려진 곳이다. 동물보호단체들이 무단 반출입에 반발한 이유다.
이날 토론회에서는 남아 있는 남방큰돌고래 ‘비봉이’를 방류해야 한다는 주장이 거듭됐다.
2013년 서울동물원의 제돌·삼팔·춘삼을 시작으로 남방큰돌고래 7마리가 이미 방류된만큼 축적된 노하우를 살려 자연으로 되돌려 보내야 한다는 것이다.
고래 전문가인 미국 동물복지연구소 나오미 로즈 박사는 “돌고래는 먹이 찾기, 사회적 소통 등 생존에 필요한 기술을 어미에게 배운다”며 “어릴 때 배운 돌고래가 성체가 되어 수족관에 왔다면, 다시 야생으로 돌아가도 기억을 되살려 적응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원래 서식지에 방류하는 것도 중요하다. 기존의 남방큰돌고래 방류도 원 서식지인 제주도에서 진행됐다.
비봉이는 돌고래로서 미성년에 해당하는 5~6세 즈음에 포획된 것으로 알려졌다. 로즈 박사는 비봉이의 포획 성공 가능성에 대한 확답을 피하면서도 “원서식지(제주)가 어디인지 아는 것은 큰 장점이다. 위성표식, 영구적 마킹 등 재포획 필요성까지 염두한 모니터링이 매우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방류 어려운 돌고래 위한 또 다른 대안 ‘생추어리’
국내 수족관에 비봉이를 제외한 나머지 돌고래는 흰고래(벨루가)나 큰돌고래다. 원 서식지가 러시아나 일본이라 방류하려 해도 쉽지 않다.
이를 위한 또 다른 대안으로는 생추어리(바다쉼터)가 꼽힌다. 바다에 매우 큰 가두리를 만들어 돌고래들이 여생을 보내게 만드는 형태다.
이날 발제에 나선 로리 마리노 박사는 웨일 생추어리 프로젝트(Whale Sanctuary Project)의 대표다. 캐나다 북동부 노바스코샤 해안에 고래 생추어리를 만들고 있다.
좁은 수조에 머물 수밖에 없는 수족관과 달리 생추어리는 바다 연안에 조성된다. 웨일 생추어리 프로젝트가 조성하는 생추어리는 12만평이 넘는다. 여의도 면적의 절반 가량에 달한다.
마리노 박사는 “대부분의 돌고래는 방류되기 어렵다. 수족관에서 태어났거나 너무 오래 지냈다면 야생 생존에 필요한 기술도 없고, 돌아갈 가족을 찾을 수 없다”며 “생추어리는 인간이 수의학적 관리와 먹이, 보호 등을 제공하면서 보다 자연에 가까운 환경에서 자율적으로 지낼 수 있는 환경”이라고 소개했다.
생추어리는 동물복지 측면에서 돌고래가 원래 살던 방식으로 여생을 보낼 수 있게 하는 것은 물론 자연 보전 연구와 시민 교육에도 활용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마리노 박사는 “(캐나다 생추어리는) 2023년 첫 번째 고래를 맞이할 예정”이라며 “한국의 벨루가도 올 수 있을지를 논의하고 있다”고 전했다.
반면 국내에서 해양 포유류를 위한 생추어리는 아직 별다른 청사진도 없다. 해양수산부가 지난해 수족관 고래류 보호시설 조성 타당성 검토를 위한 예산을 신청했지만 심의과정에서 전액 삭감됐다.
해수부 해양생태과 최재용 사무관 “3년여간 생추어리 대상지, 수요에 대한 기초조사를 시행했지만 후보지를 선정하지는 못했다”고 전했다.
국내 연안에서는 돌고래가 살기 적합한 수온·지형 등을 갖춘 곳을 찾기 어려운데다, 이미 양식장이나 어장으로 활용하는 해역이 대부분이라는 것이다.
최재용 사무관은 “올해 예산 확보에 실패했지만 별도의 연구과제를 통해 생추어리의 필요성과 후보지역, 재정당국을 설득하기 위한 논리 개발에 나설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가능성이 없지는 않다. 이미 육지 야생동물을 위한 생추어리 건립은 닻을 올렸다. 구례와 서천에 사육곰을 비롯한 몰수 야생동물을 보호하기 위한 시설이 2025년까지 건립될 예정이다.
동물원수족관법 전부개정 청신호
이처럼 방류는 제한적이고 생추어리도 빠른 성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그동안이라도 수족관의 사육환경을 개선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지난해 노웅래 의원이 대표발의한 동물원수족관법 전부개정안은 그에 필요한 법적 근거를 담았다.
동물원·수족관 관리를 허가제로 강화하는 한편 전시부적합종 지정, 동물복지 저해 행위 제한, 질병관리 강화 등을 담았다.
환경부 생물다양성과 조응찬 사무관은 “동물원수족관법 전부개정 논의가 내부적으로는 상당히 진척됐다”며 “여야나 기타 단체에 큰 이견이 없어 빠르게 통과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전부개정안이 통과되면 돌고래를 전시부적합종으로 지정해 신규 도입을 금지하고 올라타기, 만지기 등 동물에게 스트레스를 주는 체험 프로그램 운영을 금지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해수부도 수족관 해양생물 표준서식환경, 질병·안전사고 예방 지침, 수족관 동물복지 평가기법 개발 등에 나선다.
이미 국내 수족관에 돌고래의 신규 도입은 사실상 중단됐다. 전채은 동물을위한행동 대표는 “이미 국내 수족관 어디에서도 돌고래 전시산업이 지속가능할 것이라 생각치 않는다”면서 “남아있는 돌고래들이 보다 나은 삶으로 안착하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 협의과정은 고통스럽지만 긴 호흡으로 지켜봐달라”고 당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