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의사회가 TNR 가이드 만들고 우수병원 추천..길고양이 협의체 만든다
政, TNR 개선방안 발표..최저가 입찰 대신 정성∙정량평가, 겨울 TNR 할 수 있게 장기계약 허용
임신∙수유가 적은 겨울에 길고양이를 중성화할 수 있도록 TNR 사업이 개편된다. 최저가 입찰경쟁 대신 동물병원의 시설∙인력 등을 고려하는 정성∙정량 평가선정으로 전환한다.
아울러 길고양이 관련 이슈를 논의할 민관 협의체를 마련한다. 수의사단체와 학회, 동물보호단체들이 모여 길고양이 정책을 제안하는 영국의 The Cat Group이 모델이다.
농림축산식품부는 이 같은 내용을 포함한 길고양이 중성화(TNR) 사업 개선방안을 12일 발표했다.
지난해 초 대한수의사회 지부장협의회를 중심으로 보이콧까지 거론되고, 사업자 선정방식 등 개선방향을 제시한지 1년여만이다(본지 2022년 2월 15일자 ‘일부 지역 길고양이 보류 움직임..해법 마련 서둘러야’ 참고).
5년간 35만마리 TNR..개체수 저감효과 있다?
동물병원이 외면하게 만드는 사업구조 비판
농식품부에 따르면, 2018년부터 2022년까지 5년간 길고양이 35만 8천여마리가 TNR 사업을 통해 중성화됐다.
농식품부는 “TNR이 길고양이 개체수 조절을 위한 가장 인도적이고 효과적인 방법”이라며 세종을 제외한 7대 특∙광역시에서 효과가 있었다고 주장했다.
이들 지역의 길고양이 개체수(㎢당 마릿수)를 조사한 결과 길고양이 숫자가 감소했다는 것이다(2020년 273마리→2022년 233마리). 새끼 고양이의 비율도 같은 기간 29.7%에서 19.6%로 감소한 것으로 파악됐다.
지난해 수의사회가 TNR 사업 보이콧을 거론했던 계기는 체중∙임신∙수유 등 중성화 실시 여부에 대한 판단기준을 둘러싼 논란이었다.
2kg 미만이거나 임신∙수유 중이라 하더라도 수의사 판단 하에 TNR을 실시할 수 있도록 지침을 개정하려던 것이 일부 동물보호단체의 반대로 무산되면서다.
사업 운영방식에 대한 문제제기도 이어졌다.
대부분의 지자체가 해마다 사업자를 선정하다 보니 TNR 시작 시점이 3월 이후로 미뤄지는데, 이때는 이미 임신∙수유 중인 길고양이가 많다.
수술단가가 마리당 15만원선으로 너무 낮은데다, 여론재판으로 흐르는 캣맘 민원에 대한 우려까지 더해져 대부분의 동물병원이 TNR을 외면한다. 최저가 입찰경쟁을 벌이는 업자만 남게 만드는 구조다.
길고양이 민원 해결을 위한 산발적 중성화로는 개체수 저감을 기대하기 어려운 만큼, 특정 지역의 길고양이 대부분을 한꺼번에 중성화하는 ‘군집 TNR’ 비중을 늘려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장기계약으로 겨울 중성화 유도
최저가 경쟁 대신 정성∙정량 평가
농식품부는 “길고양이 개체수 조절이 효과적으로 이뤄질 수 있도록 중성화 시기, 방식 등을 개선한다”고 밝혔다.
매년 사업자를 선정하는 현행 방식은 고양이의 임신∙출산∙수유가 없는 연말∙연초에 오히려 TNR을 실시하지 못하게 만든다. 전년 사업은 겨울 전에 대부분 마무리되고 이듬해 사업은 연초에 다시 사업자를 선정한 이후로 미뤄지기 때문이다.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각 지자체의 중성화 사업자 계약기간을 3년단위까지 허용할 방침이다.
비인도적 포획을 방지하기 위해 길고양이 포획∙방사 절차를 구체화한다. 포획→수술→후처치 과정의 품질 개선을 위해 올해 지자체 전수조사를 거쳐 사업지침을 개선할 예정이다.
TNR 사업에 참여하는 동물병원이나 포획업자가 제대로 된 시설을 갖추지 못하고 있는 문제도 개선한다.
이를 위해 동물병원 선정 방식을 기존의 최저가 입찰에서 정성∙정량 평가 방식으로 전환한다. 적절한 시설, 장비, 인력을 갖춘 동물병원이 TNR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선정 방식을 바꾼다 해도 단가가 낮다는 문제는 여전히 남는다. TNR 사업 자체의 예산을 현실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지난해 TNR 사업의 중성화수술 단가는 대체로 15만원선이다. 동물병원이 반려동물에게 통상적으로 실시하는 중성화수술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하다.
사회공헌의 의미가 있다 치더라도, 보다 안전한 수술을 위한 검사나 기자재 활용에 제한이 있을 수밖에 없다.
수의사회 협력 확대..가이드 만들고 우수병원 추천
대한수의사회와의 협력도 확대한다.
길고양이 중성화수술의 전문성을 높이기 위해 내년부터 TNR 참여 동물병원의 중성화 수술 의무교육을 연1회로 실시한다.
품질 높은 중성화 수술이 확산되도록 대한수의사회가 길고양이 TNR 우수병원을 추천하는 방안도 추진한다. 대한수의사회 지역 분회 차원에서 TNR을 운영하는 등 우수 사례도 발굴한다.
대한수의사회 주관으로 ‘중성화 수술 가이드라인’과 수술 후 처치에 대한 기준도 마련할 계획이다. 미국 등 해외에서는 수의사단체가 가이드라인을 제시한다는 점에 착안했다.
미국의 동물보호소수의사협회(Association of Shelter Veterinarians)는 2008년부터 길고양이 TNR에 대한 수의학적 가이드라인을 지속적으로 개정∙배포하고 있다.
2016년 개정된 최신판은 중성화 대상 선택부터 검사, 마취, 수술, 후처치까지 TNR 사업 전반에 대한 세부지침을 담고 있다.
TNR에 참가하고 있는 한 동물병원장은 “수의사들이 교육을 받고 지침을 만들어 이행하면서 스스로를 점검해야 한다. 수술한 것처럼 사진을 꾸며 부정수급을 받은 업자는 무관용으로 배제해야 한다”면서 “TNR 예산 현실화도 이러한 토대 위에서 추진해야 한다”고 말했다.
‘The Cat Group’ 모델로..민관협의체 구축
농식품부는 “길고양이 보호, 복지개선에 대한 거버넌스를 구축해 나갈 예정”이라며 민관협의체 구성을 예고했다.
동물보호단체, 수의사, 전문가, 지자체 등이 참여하는 가칭 ‘길고양이 복지개선 협의체’를 상반기 내에 구축해 길고양이 이슈에 대한 이견을 좁히겠다는 것이다.
동물보호단체, 수의사단체, 학술단체 등이 모인 영국의 ‘The Cat Group’이 모델이다. TNR 대상이나 적정한 시기 등에 대해 통일된 정책과 권장사항을 제안하고 있다.
이와 함께 길고양이의 생태적 특성 연구나 기초 통계 작업도 확대해 나갈 예정이다.
농식품부는 “과도한 길고양이 먹이 주기 등 보호 활동이 번식력을 높여 개체수 조절 효과를 제약하는 문제를 개선해야 한다”며 “연내에 ‘길고양이 돌봄 가이드라인’을 마련할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