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의사당 지붕에 나타난 ‘동물은 물건이 아니다’
동물해방물결, 20여 개 단체와 빔프로젝션 퍼포먼스 펼치고 국회토론회 개최
오늘(29일) 새벽 여의도 국회의사당 돔 지붕에 동물 그림과 함께 ‘동물은 물건이 아니다’라는 글씨가 나타났다. 무슨 일이었을까?
동물, 환경, 여성, 종교, 법률 등 20여 개의 단체로 결성된 ‘동물은물건이아니다연대’(이하 ‘동물아연대’)가 동물의 비물건화를 선언한 민법 개정안의 연내 통과를 촉구하며 국회의사당 건물에 빔프로젝션 퍼포먼스를 진행한 것이다. ‘동물은 물건이 아니다’ 문구 이외에도 ‘물건이 아닌 동물들’, ‘지금 당장 민법 개정하라’, ‘우리는 모두 지각있는 생명’ 문구가 새겨졌다.
동물아연대는 “이미 다수의 국민이 동물의 비물건화 법제화에 찬성하고 있고, 동물을 물건처럼 취급하거나 학대하면 안 된다는 사회적 합의가 있는 상황에서 법률안 발의가 오히려 늦은 감이 있었다”며 “동물을 물건이 아닌 지각있는 생명으로 바라보는 국민의 인식과 국제적 흐름에 따라 국회는 이번 회기 만료 전 법안을 반드시 통과시켜야 한다”고 강력히 촉구했다.
2년 전 정부가 직접 법안 발의했지만, 아직 국회 계류 중
법원행정처 “법적 혼란 및 분쟁 발생 소지 있다”며 신중검토 의견
지난 2021년 10월 정부(법무부)가 직접 ‘동물은 물건이 아니다’ 민법 개정안을 정부입법으로 발의했지만, 2년이 지난 현재까지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올해 4월 4일 여야 원내대표와 국회의장이 4월 중 처리하기로 합의한 ‘우선처리 민생법안’ 7개에 포함됐음에도 법안은 여전히 법제사법위원회에 계류 중이다.
법적 혼란과 분쟁이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법원행정처는 민법 개정안에 대해 “입법 취지에는 공감하나 동물이 사법상 어떤 권리·지위를 지니는지를 구체적으로 규율하지 않아 법적 혼란과 분쟁이 발생할 소지가 있다. 자칫 영업 목적으로 사육되는 가축 등을 대상으로 하는 재산범죄 성립에도 영향을 줄 우려가 있다”며 ‘신중검토’ 의견을 낸 바 있다.
동물아연대는 이에 그치지 않고 오후 2시 ‘동물은 물건이 아니다’ 국회토론회를 주최했다. 토론회는 동물복지국회포럼, 박주민·이탄희·장혜영·윤미향 의원이 공동 주최했으며, 동물해방물결(대표 이지연)이 주관했다.
토론회에서는 ▲판례와 사례를 통해 본 동물의 비물건화 필요성(김도희 동물해방물결 해방정치연구소장(변호사)) ▲동물 비물건화 개정의 법적 의미(최정호 서울대학교 연구교수) 2개의 발제와 패널토론이 진행됐다.
조약골 핫핑크돌핀스 공동대표, 영인 새벽이생추어리 활동가, 석수민 법무부 법무심의관실 검사, 신병호 경기도 동물복지과장이 토론자로 나섰다. 좌장은 함태성 강원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맡았다.
동물복지국회포럼 공동대표인 박홍근·한정애 의원도 참석했다.
4월 여야 원내대표 합의 시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였던 박홍근 국회의원은 “동물은 물건이 아니다 민법개정안 국회토론회를 벌써 여러 번 참석하고 있다. 좀 더 신속한 해결책과 답을 드리지 못해 마음이 무겁다”고 말했다. 이어 “법적 혼란이 발생할 수 있다는 법원행정처의 우려는 개인적으로 타당하지 않다고 생각한다”며 “해외에서도 (민법개정 후) 사회적 혼란이 생기기보다 오히려 동물복지 선진국으로 위상이 강화됐다. 동물과 사람의 공존을 위해 더 이상 늦추지 말고 민법개정안이 통과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한정애 국회의원 역시 “법은 시대 흐름을 따르고, 국민의 인식 변화를 반영해야 마땅하다. 다른 법들은 시대상을 반영하면서 빠르게 변하고 있지만, 민법 개정은 굉장히 더디게 진행되는 경향이 있다”며 “21대 국회에서 민법개정안이 통과되길 기대한다”고 전했다.
“물건이 아님을 선포하는 선언적 의미 크고, 법적 혼란·분쟁 가능성 낮아”
“이미 법원에서 인정하는 부분에 법적 안정성을 확보하는 것”
첫 번째 발제를 맡은 김도희 동물해방물결 해방정치연구소장은 토끼 질식사 사건, 경북대 수의대 건강이 사건, 방어참돔 학대사건, 경의선 숲길 자두 사건, 양평 동물 대량학살 사건, 유기견 오인 안락사 사건 등 최근 몇 년간 발생했던 동물학대 사건의 내용과 판결을 소개하며 “최근 판결의 추세는 동물을 생명으로 보면서 교환가격(동물가격)뿐만 아니라 치료비, 장례비, 위자료 등 특별손해도 인정하는 추세다. 이미 법원의 판결은 동물을 물건과 다르게 취급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법무부 발의) 민법개정안은 동물이 물건이 아님을 선포하는 선언적인 의미의 법안이지 동물에게 어떤 권리·지위를 부여하는 것은 아니”라며 민법개정안이 통과되더라도 법원행정처가 우려하는 법적 혼란이나 분쟁을 초래할 소지는 거의 없다고 설명했다.
실제 2년 전 법무부가 직접 발의한 ‘동물은 물건이 아니다’ 민법개정안은 제98조의2 제1항에 ‘동물은 물건이 아니다’라고 명시하면서도, 제2항에 ‘동물에 대해서는 법률에 특별한 규정이 있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물건에 관한 규정을 준용한다’고 정의하고 있다.
두 번째 발제를 맡은 최정호 서울대학교 연구교수(법학박사) 역시 “(민법 개정은) 이미 법원에서 인정되고 있는 부분을 법을 통해 인정하는 수순이고, 법적 안정성을 확보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동물은 물건이 아니다>라는 문구에 지지와 비판이 집중되는 비생산적인 논쟁이 이뤄지고 있다”며 “이를 탈피해서 근본적 차원에서 동물의 정의를 철저히 사유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민법 개정이 동물의 배타적 지배 대상성을 부정하고, 생명체 존중 및 인간-동물 관계를 재정립하는 토대를 마련하는 의미가 크다는 것이다.
동물아연대는 “이미 독일, 오스트리아, 스위스 등은 동물은 물건이 아니라는 조항을 민법에 두고 있고, 나아가 프랑스, 벨기에, 포르투갈, 스페인 등은 동물을 ‘감응력 있고 생물학적 요구가 있는 존재’로 규정하고 있다”며 “동물의 비물건화 민법 개정은 동물학대의 낮은 처벌 문제, 동물이 재산분할 및 채무변제의 수단이 되는 문제를 해결하고 동물의 권리를 신장하는 초석이 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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