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단이 아닌 중간에서, 다수의 작은 변화를 꿈꾸며 동물보호단체로 향했다
[인터뷰] 동물복지문제연구소 어웨어 박도은 수의사
수의사는 동물복지의 핵심적인 전문가입니다. 건강하지 않는 동물에게 동물복지가 있을 수 없습니다.
동물병원에서 반려동물을 진료하면서, 농장에 왕진을 나가서, 실험동물 전임수의사로서 동물복지에 기여하는데요, 보다 직접적으로 동물보호단체의 일원으로 활동하는 수의사도 있습니다.
동물복지문제연구소 어웨어의 박도은 수의사(사진)도 그중 한 명인데요, 지난해 서울대 수의대를 졸업해 수의사가 된 직후 어웨어에 합류한 박도은 수의사를 데일리벳이 만났습니다.
Q. 동물보호단체로 바로 온 분이니 수의과대학에 진학한 계기가 더 궁금합니다
어렸을 때부터 동물을 무척 좋아했어요. 12살때쯤 ‘북극의 눈물’ 다큐멘터리에 너무 큰 감명을 받아서 북극곰을 위한 일을 해보자고 마음먹었죠. 그렇게 환경운동가를 꿈꾸며 청소년기를 보냈습니다.
그렇게 고3이 되어 전공을 선택해야 할 시기에 수의과대학과 생명과학부를 두고 고민했어요. 생명과학부는 너무 미시적이거나 아예 큰 스케일을 다루는 것 같았고, 동물을 살리려면 동물을 잘 알면 좋지 않을까 생각해서 수의대를 선택했죠.
수의대에 들어오면서도 임상수의사가 되려는 생각은 전혀 없었어요. 수의대 수업을 들으면서도 수의사가 되고 싶다는 마음이 크진 않았죠. 막연히 ‘연구를 하게 되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Q. 흔하지 않은 진학 계기만큼 학교 생활도 좀 다른 느낌이었을 것 같아요
제가 좀 특이한 편인 것 같긴 한데, 저는 동물의 종을 그다지 구분하지 않고 다 좋아해요. 개도 좋고, 파충류도 좋고, 지렁이도 좋아합니다. 어릴 땐 큰 항아리에 지렁이 키우기도 해봤어요(웃음).
수의대는 반려동물 위주로 교육하지만 ‘왜 다른 동물에 대해서는 잘 다루지 않을까’ 궁금해하기도 했어요. 그래도 가령 가금질병학 수업을 들으면 가금산업의 상황을 접할 수 있는 점은 좋았죠.
수의사를 꿈꾸는 다른 친구들과 생각이 다르다는 느낌도 받았어요. 실습에 대해서는 사실 학생들마다 생각이 다양한 것 같아요. 잠깐 볼 거면 굳이 동물을 죽이는 희생이 필요치 않다는 학생도 있고, 수의사로서 (사회에 기여하며) 갚으면 된다는 학생도 있죠.
Q. 졸업 후 동물보호단체로 간 이유도 궁금합니다
예전에는 생태계 전반의 보전에 관심이 많았다면, 수의학을 배우면서 동물에 좀더 치우치게 된 것 같긴 합니다.
산업의 측면에서 동물을 바라보는 것이 힘들면서도, 수의대에 온 덕분에 현실을 접할 수 있어 좋았습니다. 극단적인 동물보호활동은 현실적으로 큰 효과를 거두기 힘들다는 점도 알게 됐죠. 제 생각과 다른 의견도 많이 접했고요.
‘동물에게도 이건 너무한데’ 생각하다가도 극단적인 동물권 활동을 보면 ‘저게 현실적으로 가능할까’ 싶기도 하잖아요? 제가 하고 싶은 일은 그 중간에서, 동물이 지내는 환경이 한 단계라도 나아지게 만드는 일입니다.
Q. 어웨어로 온 것도 그 때문인가요? 다양한 동물보호단체들 중 어웨어는 연구·조사·정책제안 등을 주로 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구조활동이나 동물 개체를 살리는 일에 집중하는 활동도 멋지지만, 눈에는 잘 안 보여도 큰 틀을 바꾸는 일이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북극곰도 특정 개체를 살리는 일보다 더 잘 살 수 있는 터전을 만드는게 더 중요하겠죠.
본과 4학년 외부기관 실습 때 어웨어를 추천받아 갔는데, 너무 잘 맞았어요. 그 전까지 동물보호단체라면 으레 과격한 집회를 하거나 번식장을 습격하는 모습을 떠올리다 보니 좀 거리감이 있었는데, 어웨어는 달랐죠.
저는 본과 공부가 힘들면 철학책이나 관념적인 글을 읽으면서 달래곤 했는데, 어웨어는 윤리를 고민하고 생각으로 일하는 환경이라 저의 성향과도 맞았습니다.
그렇게 2023년 2월에 졸업하자마자 어웨어에서 인턴을 한 후 직원이 됐습니다.
Q. 지난 1년여간 어웨어에서 어떤 일들을 하셨나요?
지난해 3월에 개최한 ‘농장동물 복지 향상 방안 모색을 위한 국회토론회’ 준비부터 시작했습니다. 이미 연구보고서는 나와 있어서 발표자료를 만드는 등 토론회 실무에 참여했어요(본지 2023년 3월 20일자 ‘돼지농장 동물복지 30분이면 자가진단’ 복지 개선 관심∙실천 계기로 참고).
여름에는 다른 단체 분들과 함께 개식용 반대집회도 준비했고요, 생태교란종과 유기동물보호소 관련한 정부 용역 연구과제들에도 참여해 지금까지도 진행하고 있습니다. 동물의 성학대 문제 등 어웨어 자체적인 연구도 실시하고요.
어웨어 활동을 본격적으로 하다 보니 공부의 중요성도 다시 되새기게 됩니다. 착한 마음보단 정확히 알고 판단해야 하는 일인데, 동물복지 문제에 대해 아는 게 너무 없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이런 사회초년생인데도 일의 성과로 바로 이어질 수 있는 역할을 맡겨주셔서 감사했습니다. 근무환경도 자유로웠는데요, 필요한 일을 한다고 생각하니 주말에 일해도 아깝지 않더라고요.
Q. 동물복지 이슈는 축종별, 사안별로 다양한데 그 중에서도 관심 있는 분야가 있다면?
농장동물 분야에 제일 관심이 가요. 사실 북극곰이든 농장동물이든 제가 바라보는 측면은 비슷한 것 같아요.
사람은 죽음에 대해서 고민하잖아요? 하지만 동물의 입장에서는 나중에 죽을지 어떨지 보다는 지금 살아가는 순간의 환경이 얼마나 고통스러운가가 더 중요한 문제일 수 있어요.
종국에는 도축될 돼지라도, 좁고 더러운 돈방에서 하루 종일 누워만 있는 삶은 아니었으면 하는 거죠.
물론 경제적인 문제와 직결되어 있고, 동물복지를 지향하는 방식으로 변화하기 어렵다는 사정도 이해는 됩니다.
Q. 잠시 임상수의사로 일할 계획이라고 들었습니다
정부 연구과제로 전국의 동물보호센터를 많이 다니고 있어요. 센터에는 딱 봐도 안 좋아 보이는 동물들도 있는데, 구체적으로는 잘 모르겠어서 답답함을 느꼈어요.
제게 임상적인 능력이 있다면 할 수 있는 일의 스펙트럼이 넓어지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른 분야이지만 비임상을 지망했던 친구들이 ‘그래도 중성화 수술은 할 줄 아는 수의사가 되고 싶다’고 했던 얘기를 이제야 이해하게 된 거죠.
졸업해 보니 수의사라고 하면 사회에서 기본적으로 기대하는 바가 있더라고요. 그에 최소한 부응할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동물보호단체의 활동 현장에 수의사는 저만 있는 상황일 가능성이 높아서 더더욱 그렇고요.
그래서 동물병원에서 일하며 실전적으로 임상을 배우려고 합니다. 지금도 어웨어 일을 조금 줄이고 임상에 도전할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Q. 임상을 배우고 나면 다시 돌아오시는 건가요?
어디서 일하느냐 보다는 무슨 일을 하느냐가 더 중요한 것 같아요. NGO도 좋고, 학계도 좋고요.
저는 중간에서 역할을 하고 싶어요. 너무 급진적이거나 마음을 불편하게 만들지 않는 선에서, 동물복지적인 생각을 심어줄 수 있는 일을 하고 싶어요. 소수의 큰 변화보다는 다수의 작은 변화를 원해요.
그러기 위해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일을 하고 싶습니다. 교육에도 관심이 많고 글을 쓰는 것도 좋아합니다.
동물복지를 증진시키기 위한 시스템을 만드는데도 기여하고 싶어요. 아까 다른 수의대생들의 이야기를 하긴 했지만, 친구들도 모두 각자의 방식으로 동물을 아끼는 사람들이거든요. 좋은 체계가 만들어진다면 충분히 협조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Q. 마지막으로 전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저는 너무 막막했어요. 수의학 전공인데, 수의사가 되어 진료를 보고 싶지도 않았고, 방향만 있을 뿐 구체적으로 어디서 어떤 일을 해야 할지 알기도 어려웠어요. 누구 찾아가서 물어볼만한 분도 없었죠.
제가 누굴 조언할 수 있는 입장은 아니지만, 저와 비슷한 고민을 하는 친구들이 있다면 ‘저런 사람도 있구나’ 위로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은 듭니다.
수의사로서 어떤 직업을 갖느냐 보다는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마음 놓고 탐색할 수 있는 시기는 학생일 때뿐이니 적극적으로 해보시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