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복지 정책 80%는 반려동물…이제 농장동물복지도 챙길 때
지속 가능한 축산업 발전을 위한 동물복지연구회 포럼 첫 개최
지속 가능한 축산업 발전을 위한 동물복지연구회가 첫번째 포럼을 개최했다. 포럼 참석자들은 우리나라의 동물복지 정책 대부분이 반려동물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며 농장동물복지를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동물복지축산농장인증제(동물복지축산인증제) 확대를 위한 ‘동물복지 시범농장’의 필요성도 언급됐다.
농장동물복지에 초점을 맞춘 동물복지연구회는 서울대 수의대 장구 교수와 풀무원의 주도로 구성됐다. 장구 교수는 풀무원과 함께 다양한 연구를 진행 중이다. 풀무원기술원 이상윤 원장도 직접 현장을 찾아 ‘축산업과 동물복지의 공존’을 추구하는 포럼의 첫걸음을 축하했다.
포럼에서는 ▲농장동물 복지의 사회경제적 의미(서울대 수의대 천명선 교수) ▲동물복지 관련 연구 현황(국립축산과학원 동물복지연구팀 전중환 연구관) ▲현대 양돈에서 복지 및 생산성 향상 위한 사육환경 연구(전남대 동물자원학부 윤진현 교수) ▲양돈 산업에서 동물복지 연구 방향(선진 기술연구소/양돈기술혁신센터 강주원 박사) 4개의 발표와 토론이 진행했다.
이날 포럼은 의자를 추가 배치할 정도로 예상보다 많은 사람이 참석했으며, 대부분의 참가자가 포럼이 끝날 때까지 자리를 지켜 농장동물복지에 대한 높은 관심을 나타냈다. 축산업 종사자는 물론, 학계, 동물단체, 언론에서도 참석했다. 토론 시간에도 질문이 쏟아졌다.
“국가 동물복지 정책, 농장동물 위주로 이뤄져야”
“소비자들은 어느 정도 동물복지축산물 소비할 준비 되어 있어”
첫번째 발표를 맡은 천명선 서울대 교수는 동물복지의 개념부터, 관련 법령, 사회문화 속 동물복지, 동물복지의 경제학을 차례로 소개했다.
천 교수는 “국가의 동물복지 정책은 반려동물이 아니라 농장동물 위주로 이뤄져야 할 필요가 있다”며 “동물의 수도 많고 영향을 받는 사람도 많다. 영국에서 근대 동물복지 개념을 만들 때도 농장동물이 근간이었다”고 말했다.
포럼에 참여한 업계 관계자 역시 “동물복지 종합계획을 보면 80%가 개식용, 개물림사고 등 반려동물 관련 내용”이라며 농장동물복지가 상대적으로 소외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1차 동물복지 종합계획(2014~2019)보다 2차 동물복지 종합계획(2020~2024)에 농장동물 관련 내용이 오히려 더 줄었다는 평가도 있다.
실제 동물보호복지를 다룰 때 가장 많이 인용되는 ‘동물의 5대 자유’는 1979년 농장동물을 기준으로 만들어졌다. 하지만, 현재 우리나라에서 동물보호법이 개정될 때, 동물복지종합계획이 수립될 때, 동물학대 등 동물 관련 사건이 화제를 모을 때, 대부분은 반려동물·유기동물 관련 내용이 다뤄진다. 실험동물의 복지보다 농장동물복지에 대한 관심과 정책이 더 적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농장동물복지와 직접적으로 관련된 정책을 물었을 때 ‘동물복지축산농장인증제’ 외에 다른 대답이 잘 나오지 않는 이유다.
동물복지축산농장인증제는 높은 수준의 동물복지 기준에 따라 인도적으로 동물을 사육하는 소·돼지·닭·오리농장 등을 국가가 인증하고 인증농장에서 생산되는 축산물에 ‘동물복지 인증마크’를 표시하는 제도다. 2012년 산란계를 시작으로 양돈(2013년), 육계(2014), 젖소, 한육우, 염소(2015), 오리(2016) 농장을 대상으로 시행됐다.
2024년 12월 현재 총 480개 농장이 인증을 받았는데, 85%가 닭 농장이다(산란계 250, 육계 160, 돼지 28, 한우 12, 젖소 30).
이날 토론회에서는 “동물복지인증 축산물의 소비가 늘어야 한다”는 의견이 많이 나왔다.
동물복지농장 인증을 위해서는 시설 등 추가 투자가 필요하고, 같은 면적에 더 적은 동물을 사육해야 하니 생산비가 더 든다. 소비자들이 동물복지축산물을 외면하면, 농장 입장에서는 적자를 감수할 수밖에 없다.
동물복지 양돈농장이 관행축산 대비 두당 14,623원의 소득이 감소한다는 연구 결과도 공유됐다(수입 두당 37,000원 증가, 비용 두당 51,623원 증가). 동물복지 축산물의 가격이 높기 때문에 수입이 증가하지만, 사료비, 시설비, 재료비, 가축비 등 비용이 더 크게 증가하며 손해를 보는 것이다.
대기업은 사회적 책임을 다하기 위해 손해를 감수하더라도 동물복지농장을 일정 비율 운영한다. 일부 개인 농장도 동물복지에 대한 신념과 소신으로 동물복지농장을 운영한다. 그러나, 소비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동물복지인증농장 확대에도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제도가 시행된 지 10년이 넘었지만, 인증을 받은 육우 농장, 오리 농장은 0개다.
다만, 소비자의 인식 수준이 높아진 것은 긍정적이다.
동물복지에 대한 대중의 관심과 지식이 점점 증가하고 있으며, 농장동물 복지수준 개선을 위해 평균 21.13%의 비용을 추가 부담하겠다는 조사도 있다(2023 동물복지 국민의식조사).
동물복지에 대한 관심을 가진 시민은 가장 쉽게 소비자로서 행동한다. 동물학대 상품(모피 등) 구매를 거부하고, 동물실험을 하지 않은 제품을 구입하거나, 동물복지 축산물을 구입하는 식이다(2021 동물정책 설문조사 보고서). 앞으로도 이렇게 행동할 가능성이 크다는 게 천명선 교수의 생각이다.
설문조사 응답과 실제 소비가 꼭 비례한다고 볼 수는 없지만, 정부의 지원, 동물복지 축산물에 대한 홍보가 늘어나면 소비도 더 증가할 여지가 있다.
“동물복지 시범농장 필요”
동물복지 시범농장의 필요성도 커지고 있다.
일반 시민이 관행축산도 잘 모르는 상태에서 동물복지농장·동물복지인증축산물에 대해 설득하기란 쉽지 않다. 만약, 동물복지 시범농장이 있다면, 일반농가 관계자와 시민들이 직접 와서 보고 동물복지농장과 동물복지인증 축산물에 대한 이해를 높일 수 있다.
동물복지 시범농장은 동물복지 교육 장소로도 활용할 수 있고, 축종을 넘어 동물 관련 행사 개최지로도 사용할 수 있다.
정부가 조성한다면, 충남 홍성에 조성 중인 반려동물 제품 개발 실증 종합인프라 ‘원-웰페어 밸리(One-Welfare Valley)’가 예가 될 수 있다. 반려동물이 아닌, 농장동물을 위해서도 이런 시설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온다.
지자체와 민간이 협력으로 시범농장을 조성할 수도 있다. 실제 풀무원, 서울대 장구 교수팀, 지자체 한 곳이 함께 동물복지 시범농장 조성을 위해 노력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포럼에서는 이외에도 농장동물복지 평가를 위한 간단한 지표 개발 등 농장동물복지를 위한 다양한 연구의 필요성도 언급됐다.
서울대 수의대 장구 교수는 “동물복지에 관한 관심이 점점 더 높아지고 있다”며 “단순히 주변 환경에 따른 관심의 추세를 넘어, 세계적으로 지속가능성과 환경 보호 및 축산업에 대한 논의와도 깊이 연관되어 있다”고 말했다.
이어 “지속 가능한 축산업 발전을 위한 동물복지 연구회 포럼은 농장동물의 복지를 개선하기 위한 다양한 아이디어와 실천 방안을 공유하고, 더 나아가 모두가 실천 가능한 목표를 설정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동물복지연구회는 농장동물복지에 초점을 맞춘 비영리 동물복지연구소를 만들고, 연 2~3회 포럼을 개최하는 등 내년부터 본격적인 활동에 나설 방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