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려동물 임상수의사로서 장기간 열정적으로 수의사회 활동에 임한 수의사가 있습니다.
인천시수의사회를 9년 동안이나 이끌어 온 허주형 인천시수의사회장이 바로 그 주인공입니다.
허 회장님은 '2017 세계수의사대회' 인천 유치, 수의사회 주도의 유기동물 보호소 건립 등 다양한 활동을 펼친 것은 물론, 동물병원을 개원할 때 부터 2층에 동물병원을 차리고, 미용·용품을 취급하지 않은 채 진료에만 집중해 많은 동물병원의 롤 모델이 되기도 했습니다.
인천시수의사회는 최근 평일 오후 7시까지, 토요일 오후 5시까지, 일요일 휴무를 기본 골자로 하는 '진료시간단축 및 시간외 할증'을 준비중입니다.
데일리벳에서 허주형 회장님을 직접 만나, 세계수의사대회 유치 과정, 인천시수의사회 진료시간단축 및 시간외 할증, 인천시수의사회 활동 및 수의권 문제를 바라보는 허주형 회장님의 생각을 들어봤습니다.
Q. 동물병원이 2층에 있고, 미용·용품을 취급하지 않는 것이 특이한데요.
수의과대학 졸업 후 공부를 더 하고자 내과대학원에 진학했다. 내과대학원 졸업 후 서울에 동물병원을 개원하고 싶었지만, 시골 출신이라 돈이 없었다. 그래서 싼 곳을 찾다보니 여기에 개원하게 됐다. 병원도 2층이고, 전철역도 생기기 전이었다.
당시에는 동물병원과 애견판매소에 대한 시민의식이 혼재하던 시기였다. 많은 보호자들이 동물병원보다 애견판매소에서 예방접종하고 수술까지 하고 그랬다. 또 대부분의 동물병원들이 밤 10시까지 하고, 일요일에도 병원을 열었다.
개원할 때 `그래도 대학원까지 나왔는데, 나는 다른 동물병원과 조금 다르게 해봐야겠다`는 생각을 갖게 됐다. 그래서 처음부터 진료위주로 동물병원을 운영했다. 점심시간도 딱 정해서 동물병원 문을 닫고 점심을 먹었고, 퇴근시간도 저녁 7시로 딱 정해놨으며, 일요일에도 쉬었다. 그 뒤 일요일에 쉬는 동물병원이 서서히 늘어났다.
Q. 수의사가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어떻게 수의과대학에 진학하게 됐으며, 수의과대학 학창시절은 어땠나요?
어렸을 때부터 동물을 좋아해서 수의대진학에 관심이 있었지만 부모님께서는 사범대학을 원했다. 그래서 1지망을 수의과대학, 2지망을 사범대학으로 쓰고 지원했는데 수의과대학에 합격했다. 당시 사범대학이 더 좋은(성적이 높은) 과였는데 2지망인 것을 보고 대학 쪽에서 신기해했던 기억이 있다.
그렇게 경상대학교 85학번으로 입학했는데 당시 대학가는 민주화투쟁 등 대학생들의 사회참여활동이 한창이었다. 나도 학생운동이나 당시 야학교사등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어릴 때부터 해왔던 보이스카우트 활동도 꾸준히 했지만 대학 내내 주로 사회변혁운동에 시간을 쏟아 부었다.
그러다가 4학년이 되어 진로를 정해야 할 시기가 오면서, 원래부터 동물을 좋아한 터라 소동물 임상을 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Q. 수의과대학을 졸업하신 후 어떤 일을 하셨나요? 어떻게 수의사회 일에 관심을 가지게 되셨나요?
졸업 후 경상대학교 수의과대학 내과대학원에 진학했는데 심도 높은 임상지식을 익히고 싶었던 내 바람과는 달리 당시 내과대학원은 연구 위주였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1년 만에 대학원을 나와 인천으로 와서 바로 동물병원을 차렸다. 그 때가 92년도였다. 대학원은 파트로 졸업했다.
당시 처음 수의사가 되어 동물병원을 열고 수의사회 모임에 나가보니 선배 수의사들끼리 단합이 좀처럼 안 되는 분위기였다. 이래서는 안 되겠다 싶어서 부평구에 있는 수의사들을 중심으로 젊은 수의사들끼리 모임을 만들었다. 이 모임 활동이 인천시수의사회까지 이어졌다.
수의사회 일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것은 96년 인천시수의사회 총무이사를 맡으면서부터였다. 동물병원을 개업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시점이었다. 수의사회에 활발히 참여한 것도 아마 학생운동이나 보이스카우트, 청수 등 단체활동을 쭉 해왔던 경험에 영향을 받은 것 같다.
Q. 인천시수의사회장을 맡은 지 9년째라고 들었습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무엇인가요? 또 현재 인천시수의사회가 직면한 현안에는 어떤 것들이 있나요?
2004년에 처음 인천시수의사회장에 취임한 후 이번이 3번째 임기다. 현재 인천시수의사회 회원은 300여명이다. 이들 중 임상수의사가 180명이고 동물병원이 170여개라 1인 동물병원이 대부분인 상황이다.
인천시수의사회가 임상수의사 중심으로 단합이 잘 되는 편이고, 회장인 나부터 임상수의사이기 때문에 임상과 관련된 정책적, 대외적 활동을 활발하게 벌여 왔다.
인천시수의사회장을 역임하던 2006년에 수의권을 위협하는 농림부 정책 추진을 막기 위해 과천청사로 60여명의 인천시수의사회 회원들을 이끌고 항의 방문하여 농림부장관 면담까지 이끌어낸 적이 있다.
당시 농림부가 진행 중이던 동물보호강화를 위한 연구용역에는 동물판매업자의 진료행위 및 자가 진료적 예방접종을 조장하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수의사의 진료권을 도외시한 편의주의적 정책이 실현되는 것을 막기 위해 농림부장관을 만나 수의계 여론을 수렴하겠다는 약속을 받아냈다.
임상수의사의 권익을 보호하고 수의사의 전문지식을 바탕으로 한 진정한 동물복지를 실현하는 데 일조할 수 있었지만, 한편으로는 농림부 내 수의직 공무원들이 현장의 임상수의사를 대변하지 못한다는 것에 크게 실망했던, 씁쓸한 기억이다.
Q. 2017년 제33차 세계수의사대회 인천 개최를 유치해 내셨는데요, 세계수의사대회는 어떤 행사인가요? 유치과정에 대해 얘기해주세요.
1863년 결성된 세계수의사회(WVA : World Veterinary Association)가 2년 주기로 개최하는 세계수의사대회(WVC : World Veterinary Congress)는 세계 수의사 모임의 원조 격이다. 아시아에서는 1995년 일본 요코하마에서 처음 개최됐는데 당시 일본국왕이 참석하는 등 큰 반향을 불러일으킨 바 있다.
우리나라도 현 대한수의사회장의 공약사항에 따라 세계수의사대회를 유치하고자 했다. 2011년 2월 인천이 개최지로 확정되고 그 해 10월 30차 세계수의사대회가 열렸던 남아프리카공화국 케이프타운에서 2017년 대회 유치에 성공했다.
2011년 제주도에서 개최됐던 세계소동물수의사대회(WSAVA)나 작년에 제주도에서 열렸던 세계양돈수의사대회(IPVS) 모두 세계수의사회에 속해 있는 대회다.
(*2017년 인천에서 개최되는 세계수의사대회는 WSAVA나 IPVS 보다 상위에 있고, 영역에 상관없이 모든 수의사가 참여하는 세계 최대의 수의사대회다.)
세계 최대의 수의사대회를 유치하는 것임에도 우리나라 유치단은 고작 5명에 불과했고 수의사는 나와 대한수의사회 우연철 상무뿐이었다. 적은 인원이었지만 그간 세계 여러 수의사 행사에 다니면서 쌓은 인맥을 바탕으로 최대한 발로 뛰었고, 유치 프리젠테이션도 성공적으로 마쳤다. 태국과 유치전쟁을 벌인 4일이 어떻게 흘렀는지 모를 정도였다.
2017년 인천에서 열리는 세계수의사대회는 우리나라 수의사의 위상을 한 단계 높이는 결정적인 계기가 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아마도 대한수의사회에서는 2017년 제33차 세계수의사대회의 성공적인 개최를 위하여 곧 조직위원회를 구성할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Q. 인천시수의사회는 유기동물보호사업을 위탁받아 수행하고 있습니다. 어떤 계기로 시작했으며, 어떻게 운영되고 있나요? 운영 상 어려운 점이나, 현재 정부 유기동물 정책의 문제점이 있다면?
2006년 초 인천시수의사회 정기총회를 통해 의결하여 그 해 11월에 개소했다. 수의사회가 직접 유기동물보호소를 운영하는 것이 전국 최초였다.
당시 인천시 유기동물보호사업은 위탁한 소규모조직이 실적 위주로 진행하다보니 폐해가 좀 있었다. 입양도 활발하지 못했고 안락사도 많았다. 인천시 회의에 가보니 이전 3년 동안 안락사한 유기동물이 3천여마리에 달한 것을 보고 충격을 받아 수의사회가 나서야겠다고 생각했다.
현재 보호소는 인천시수의사회 소속 수의사가 주축이 되어 운영되고 있다. 보호소 소장도 동물병원을 운영 중인 수의사다. 입양율도 30%에 이르고, 아프거나 전염병이 걸린 개체가 아닌 한 안락사도 거의 하지 않는다.
그러다보니 새로 들어온 유기동물 마릿수 당 얼마씩 운영비를 지급하는 현재 방식으로는 재정적인 어려움이 많다. 유기동물 한 마리당 주어지는 사업비는 최소 보호기간에 맞춰져 있기 때문에 유기동물을 안락사하지 않고 오래 보호하기가 힘든 것이다.
동물등록제 정착과정도 지켜봐야 하겠지만, 입양율을 높일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야 할 필요가 있다.
고양시나 용산구가 좋은 예라고 생각한다.
Q. 인천시수의사회는 일본, 대만의 수의사회와 국내 제주도수의사회, 검역본부 인천지원 등 다양한 유관단체와 MOU를 체결했다고 들었습니다. 어떤 내용인가요?
동물병원 간의 교류나 수의사회 업무 교류, 회원 간 친선활동이 주 내용이다. 검역본부와 맺은 MOU를 통해 해외전염병 방역이나 여행 시 검역절차 안내 등을 동물병원에서 보호자 상대로 홍보해주기도 한다.
이러한 활동 중에 가장 큰 부분은 수의사회 업무에 대한 교류다. 수의사단체로서 수의관련 정부정책이나 방역, 동물보호, 진료, 대시민홍보 등의 이슈를 각국이 어떻게 다루고 있는지 서로 참고한다.
Q. 인천시수의사회가 최근 회원 동물병원 진료시간 단축 및 시간외 할증을 도입하려 하고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진행할 계획이신지, 성공가능성은 어느 정도인지 말씀해 주세요.
인천시수의사회 차원에서 평일과 토요일 정규진료시간을 정하고, 정규시간 외의 진료에 대해서는 20% 할증을 받을 방침이다. 9월부터 내원고객들에게 홍보활동을 벌여 2014년 1월 1일부터 시행할 예정이다.
하지만 이 같은 수의사회 권고를 따를지 여부는 전적으로 각 동물병원이 자율적으로 결정한다. 진료시간을 정한 것도 당장 그 시간에 모든 병원이 문을 닫자는 것이 아니라, 기준을 정해놓자는 의미이며, 그 이후에는 할증을 붙이면 된다는 것이다. 점심시간도 따로 두어 그 시간동안 문을 닫을지 여부도 각 동물병원이 정하면 된다.
동물병원의 자율적인 선택에 수의사회가 제제를 가할 수는 없다. 공정거래위원를 통해 확인한 바에 따르면 통일된 지침을 지키지 않는 것에 제제를 가하면 담합 소지가 있기 때문이다.
진료시간을 정한 것부터 분회를 통해 회원의 의견을 수렴했기 때문에 제도 정착 가능성은 낙관적이라고 본다. 진료시간도 그대로에 할증도 안 하는 일부 동물병원이 생길 수 있겠지만 점차 정착될 것이라고 본다.
주위 병원이 어떻게 하느냐를 신경쓰기보다는 `나부터 정당한 휴무시간을 갖고, 이를 위해 필요하다면 기득권을 내려 놓겠다`는 생각을 가져줬으면 한다. 특히 오랫동안 개원하여 자리를 잡은 선배수의사들과 시장을 선도하는 큰 병원부터 모범을 보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자가진료 허용, 수의사처방제 도입과정에서 현장 임상수의사 목소리 잘 반영 안 된 것 같아 아쉬워
임상수의사들이 먼저 잘 단합해야 하고, KAHA같은 임상관련단체가 잘 자리잡아야
Q. 사회적으로 수의사의 위상이 높아지기 위해서는 수의계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까요? 수의사들이 최우선적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를 한 가지 꼽는다면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임상수의사이기 때문에 임상 측면에서 얘기해보자면, 우리나라는 동물진료라는 영역을 놓고 농림부와 임상수의사가 대립해오고 있다.
자가진료가 허용됐던 1994년의 예도 그렇고 현재 수의사처방제의 도입과정도 그렇고 임상수의사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주는 법적, 정책적 변화과정에 정작 현장에 있는 임상수의사의 목소리가 닿지 않는다는 점이 가장 큰 문제다. 수의사처방제 추진의 모태가 됐던 농림부 내 '항생제 사용절감 연구모임'에 임상수의사가 한 명도 없었다는 점이 이를 잘 보여준다.
나도 인천수의사회장직이나 대한수의사회 부회장 이사직을 맡았지만, 수의사회는 일정부분 관변단체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일선수의사들의 의견이 일부 왜곡되어 정부에 전달되어지는 등 농식품부와의 대립에 있어서 태생적인 한계를 감출 수 없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다 보니 실제로 농식품부와 수의사의 이익이 첨예하게 대립되는 부분에는 물러서는 경향이 있으며 오히려 농식품부와 관계가 없는 일에는 크게 나서는 등 다소 혼란스러운 일들이 많이 발생되고 있다. 그 결과가 오늘날 많은 수의사들이 수의사회에 불만족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지 않나 생각한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먼저 임상수의사들이 잘 단합해야 한다.
특히 임상수의사들의 모임인 한국동물병원협회(KAHA)나 기타 임상관련단체들이 제 역할을 찾아야 한다. 특히 이들 단체들이 어느정도 법적 지위권을 획득하고 임상에 관련된 법안의 협상에는 대한수의사회가 아닌 임상수의사단체들이 나서야 한다.
그래야만 올바르게 임상수의사의 목소리가 정부에 전해질수가 있다. 우리에게는 꼭 필요한 수의사처방제가 일부 왜곡된 현상을 보면 농식품부와의 협상에 임상수의관련단체가 배제된 것이 아쉬운 점이 아닐 수 없다.
Q. 수의계를 위해 다양한 활동을 하는 임상수의사로서, 젊은 수의사나 수의대 학생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민주주의 나무는 피를 먹고 자란다는 말처럼, 우리나라의 동물진료에서 수의사의 완전한 권리, 소위 '수의권의 완전쟁취'는 임상 수의사의 적극적인 권리촉구에 의해서만 가능하다.
현재의 수의사법은 수의사의 권리를 보장하는 것이 아니라 수의사의 권리를 억압하고 관리하는 법이다. 이는 정부, 즉 농식품부의 이익과 일부 선배수의사의 이익들을 반영한 결과이며 그 결과 오늘날의 수의사법이 수의사관리법으로 불리워지고 있는 이유다.
이런 현상을 타도하려면 젊은 수의사선생님들이나 수의학도들이 냉철하게 우리나라 수의사의 현상황을 파악하고 수의사법의 개정과 수의사회 활동 등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한다.
`나만 잘살면 되지`라는 단순한 생각들은 결국에는 나 자신의 목부터 조여올 것이며, 종국에는 우리 전체의 목도 조여올 것이라 생각한다.
Q. 앞으로 이루고 싶은 일이나 꿈은 무엇인가요?
올해로 인천시수의사회장직의 소임을 맡은 지 9년이 되었다.
나는 회장직을 수행하면서 우리 수의사들이 임상진료분야에서, 국가 행정분야에서, 학계에서, 연구실험분야에서, 군 복무분야에서 다양한 모습으로 수의직무를 성실하게 수행하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
이와 같은 다양한 업무 속에서 수의사의 권리와 국민의 건강권 쟁취를 위해 함께 해주는 동료는 역시 같은 수의사들이라는 것을 느꼈다.
이제 그 임기의 마지막을 앞두고 지금까지 회장이라는 직책만을 만족하여 회원들의 권익보호에 앞장서지 못하고 수의사회 활동에 많은 오류도 범하여 회원들에게 오히려 수의사회가 짐이 되지 않았는지 송구스럽다.
하지만, 비록 나는 수의사회장직에서 물러나더라도, 언젠가는 수의권의 완전 쟁취를 후임회장님과 수의사동지들이 이루어 줄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마도 이것이 나의 꿈일 것이다. 그 때가 되면 어느 독립시인의 이야기처럼 강산이 어깨를 들썩이며 춤을 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