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의사가 겪는 윤리적 스트레스‥직업만족도·삶의 질에 악영향
일상적으로 만나는 윤리적 딜레마에 대응역량 길러야
올해부터 임상수의사 연수교육에 수의사법·수의사 윤리 관련 교육이 필수과목으로 지정된 가운데, 대한수의사회 차원의 윤리교육 표준안이 첫 선을 보였다.
천명선 서울대 교수(아래 사진)는 2일 경기도교통연수원에서 열린 제6차 경기도수의사회 연수교육에서 ‘수의사의 윤리’를 주제로 강연에 나섰다.
대한수의사회 수의정책연구소 의뢰로 수의사 윤리의식 강화연구를 수행 중인 천 교수는 “수의사가 겪는 스트레스의 큰 부분이 일상적으로 겪는 윤리적 딜레마에 연결된다”며 윤리적 딜레마 상황에서 의사결정을 내리는 역량을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회 속에서 수의사는 동물(환자)과 사람(소유주)을 대하며 윤리적 책임을 진다. 진료나 실험 등 동물에게 직접적으로 영향을 주거나, 동물을 이용하는 다양한 직군의 사람들에게 전문적 지식을 제공하며 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친다.
천명선 교수는 “최근 ‘수의사는 동물을 위한 직업인지, 사람을 위한 직업인지’ 질문을 던지는 수의대생이 늘어나고 있다”며 “사회는 수의사에게 동물의 이익을 대변하는 역할을 ‘어느 정도까지는’ 요구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가령 소유주에 의한 동물학대가 발생한다면, 소유주와의 신뢰를 저버리는 한이 있더라도 동물의 이익에 부합하는 조치나 증언이 요구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수의사도 언제나 동물의 이익만을 대변할 수 없다. 수의사에게 비용을 지불하는 고객은 ‘사람’이며, 사람의 이익이 항상 동물의 이익에 부합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고객의 이익을 보장하는 일에서도 윤리적 문제는 발생한다.
가령 ‘진료의뢰 후 자신의 병원으로 복귀하지 않을까 걱정해 본인보다 더 잘 치료할 수 있는 수의사에게 환자를 보내지 않는 일’은 고객의 이익에 반한다. 전문의(스페셜리스트)와 일반의(제너럴리스트)의 제도적 구분이 없는 우리나라에서는 더 많이 일어나는 갈등이다.
반면 고객의 이익에 과도하게 충실해도 윤리적 문제가 발생한다.
치료비용을 지불할 능력이 없는 소유주를 위한답시고 환자의 예후를 지나치게 부정적으로 설명하거나, 집중치료가 필요한 환자임에도 임시방편적인 저렴한 치료만 고집하는 소유주를 만나는 경우에 그렇다.
천명선 교수는 “동물과 사람의 이익이 충돌하며 벌어지는 윤리적 딜레마는 수의사에게 스트레스로 다가온다”며 이에 대응하는데 필요한 기초적인 방법론을 소개했다.
▲동물과 인간에게 해를 가하지 않고 ▲동물과 인간에게 이득이 되는 방향으로 ▲이해당사자의 자율적인 결정을 존중하며(동물의 기본적인 요구에 부합하며) ▲공정하고 정의로운 행동인지를 고려하는 ‘생명윤리의 4원칙’과 복지·자율성·공정성을 고려하는 ‘윤리 매트릭스’ 등이다.
천 교수는 “유럽이나 호주 등에서는 윤리 매트릭스를 수의과대학 교육에 이미 활용하고 있다”며 “수의사들은 대부분의 윤리적 문제에 직관적으로 결정을 내리게 되지만, 해당 결정이 맞는지 검토하는데 윤리적 지식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대한수의사회는 천명선 교수팀의 수의사 윤리의식 강화 연구가 올해 말까지 마무리되면, 전국 지부를 대상으로 윤리교육 표준안을 보급할 방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