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 지키면 바보 되는 깨진 유리창` 농장동물 불법진료 바로잡기 나선다
농장동물진료권특위, 1차 계도 후 개선 없으면 고소·고발 불사..불법진료 수수방관 당국 직무유기 지적도
대한수의사회 농장동물진료권쟁취특별위원회(위원장 최종영)가 10일 성남 수의과학회관에서 첫 회의를 열고 본격적인 활동에 돌입한다.
불법 처방전 발행, 불법 부검 및 가검물 의뢰·진단 등 축산물 안전과 공중보건을 위협하는 각종 불법행위를 적발해 관련 기관의 시정을 요구하고, 개선이 없을 때는 특위가 직접 고소·고발에 나선다는 방침이다.
최종영 위원장은 “불법행위를 바로잡지 않고는 진료현장을 정상화할 수 없다. 불법에는 강경하게 대처하겠다”고 강조했다.
특위는 경기도 파주부터 제주도까지 전국의 소, 돼지, 가금 축종의 임상수의사 11명으로 구성됐다.
불법 처방으로 얼룩진 수의사처방제
불법 가검물 진단에 농장·병성감정기관·정부 3인4각..동물병원 설 자리 없다
2013년 도입된 수의사처방제는 불법 처방으로 얼룩졌다. 항생제 등 주요 약물만이라도 수의사의 직접 진료 후 처방을 받아 사용하도록 했지만, 농장은 여전히 마음대로 약품을 주문해 배달받는다.
동물용의약품도매상은 직접 고용하거나 결탁한 처방전 전문수의사에게 맡겨 형식적인 처방전을 구비하고, 처방전 전문수의사는 직접 진료 없이 불법 처방전을 발급하는 형태다.
그러다 보니 항생제 사용량은 2013년부터 오히려 늘었다. 2013년 연간 820톤이던 동물용 항생제 사용량은 2018년 984톤까지 늘어났다.
많이 쓰면서 점점 강한 약만 찾는 풍조도 통제 불능이다. 2013년부터 처방대상으로 지정된 세펨계 항생제 세프티오퍼(ceftiofur)의 판매량은 2011년 4.7톤에서 지난해 12.6톤까지 3배가량 늘었다.
최종영 위원장은 “불법 처방전을 날리면서 약효가 없으면 곤란하니 제일 센 약부터 권한다. 세프티오퍼, 마보플록사신, 콜리스틴을 마구 섞어 사용한다”고 지적했다.
소의 거세·제각이나 농장동물의 불법 부검과 시료채취, 가검물 진단 등 현장에서 뿌리깊게 자리잡은 불법진료행위도 문제다.
특히 이날 특위가 지적한 가검물 정밀진단 관련 불법행위는 농장동물 임상수의사의 존재 이유를 뿌리부터 흔들고 있다.
농장과 거래하는 사료·약품업체의 직원 등 비(非)수의사가 동물을 부검하고 시료를 채취에 검사를 의뢰한다. 동물병원도 아닌 민간병성감정기관이나 검역본부, 시도 동물위생시험소는 ‘컨설팅’ 명목으로 농장에 직접 정밀검사 결과를 회신하고 상담한다.
가축전염병 예찰을 위한 활동으로 위장하고 있지만, 실상은 농장의 생산성 관련 질병까지 다루고 있는 유사 동물병원이라는 것이다.
농장과 업체, 정부가 힘을 합쳐 부검하고, 정밀진단 결과 만들고, 어떤 약이든 주문해 배달해 써버리는 환경에서 동물병원은 설 자리가 없다.
최종영 위원장은 “농장이 동물병원을 통해 가검물을 의뢰하고 수의사의 진단과 처방을 받는 형태가 바람직하다”며 “법정 가축전염병도 아닌 질병들을 다 검사해주고 시험소 공무원이 상담까지 해주는 걸 잘했다고 자화자찬까지 하는 실정”이라고 꼬집었다.
수 년간 축적된 깨진 유리창 ’제대로 하는 사람만 바보된다’
행정당국도 모른척..단속 없는 직무유기 지적
문두환 대한수의사회 부회장은 “비수의사들과 국가, 심지어 수의사들 스스로도 불법진료행위를 아무 거리낌없이, 두려움없이 저지르고 있다”며 “깨진 유리창의 법칙을 떠올릴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불법진료 행위를 벌여도 별 문제없이 넘어가다 보니, 반복되는 불법이 관행화됐다는 것이다.
이날 회의에 배석한 한 가금수의사는 “불법 처방전을 발행한 수의사는 불법임을 확실히 알고 있다. 하지만 처벌받은 적이 없으니 지역 수의사회 차원에서 계도하려고 해도 그냥 웃고 넘어가버린다”며 “불법행위를 보란 듯 벌이는데 제대로 (직접진료 후 처방) 하는 사람만 바보 되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불법행위를 사법처리 하지 않는다면 (진료권 쟁취는) 탁상공론일 뿐”이라고 강조했다.
정부와 지자체가 불법진료 문제를 방조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행정당국이 구체적인 불법진료행위를 명시해 관련 기관의 계도를 촉구하고 단속해야 함에도 수수방관하고 있다는 것이다.
권순균 위원은 “(행정당국이) 진료 없이 처방전이 나가고 있다는 걸 알면서도 제대로 감독하지 않고 있다. 이 문제를 제기해야 한다”며 수의사와 불법 업체와의 싸움뿐만 아니라 정부의 지도감독 부재를 개선과제로 제시했다.
특위, 불법진료행위 1차 계도 후 개선 없으면 법적 조치
방역제도·정책이 수의사 배제 지적도
특위는 농장동물 진료의 정상화가 축산물 안전과 공중보건 향상에 필수적이라고 보고 불법 진료 행태에 적극 대응할 방침이다.
위원 활동과 회원 제보로 불법진료행위가 파악되면 대한수의사회와 특위가 공식적으로 계도를 요청하고, 그래도 개선이 없으면 증거수집에 따른 고소·고발로 이어갈 계획이다.
최종영 위원장은 “각 축종별 임상수의사회가 있지만 같은 수의사라며, 지역에서 아는 사람이라며, 손에 피 묻히기 싫다며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 오죽하면 특위가 생겼겠느냐”며 “관련 불법에 강경하게 대처하겠다”고 강조했다. 관련 기관은 물론 수의사라고 봐주지 않겠다는 것이다.
아울러 가축전염병예방법이나 고병원성 AI, 아프리카돼지열병(ASF) 방역대책이 수의사의 진료권을 침해하는 문제도 지적됐다.
최동명 위원은 “농식품부의 가축질병 정책이 수의사의 진료영역을 침범하고 있다”며 “가축전염병예방법 제정 등 시스템을 만들어가는 과정에서부터 현장 수의사의 참여가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곽성규 위원은 “(동물병원이 아닌) 약품·사료업체 직원까지 농장 모니터링에 활용하려는 것이 정부의 시각”이라고 꼬집었다.
허주형 대한수의사회장은 “임상수의사의 역할은 점점 좁아지고, 남은 것은 방역당국과 농장 간의 알력뿐”이라며 “농장동물 진료권 쟁취를 최대한 돕겠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