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10일 국회에서 열린 제20대 대통령 취임식에 초대받은 한 명의 수의사가 단상에 올랐습니다. 바로 이승진 울산시수의사회장(이승진동물의료센터 원장)이었습니다.
이 회장은 2020년 10월 울산 삼환 아르누보 아파트에서 발생한 대형 화재 현장에서 이웃 시민들의 대피를 도운 공을 인정받아 ‘자랑스러운 우리시대 숨은거인’으로 선정되어 윤석열 대통령 취임식에 국민대표 20인으로 참석했습니다.
또 선배 수의사로서 수의사들이 불이익을 당하지 않는 환경을 만들고자 국회의원을 후원하고 있기도 한데요, 정치인 후원의 중요성을 강조한 기고문이 수의사들에게 큰 관심을 받기도 했습니다([기고] 수의사여, 힘없음에 분노할 자격이 있는가 / 이승진).
30년 차 임상수의사로 꾸준히 노력하여 유수의 동물병원을 운영하고 있으며 울산시수의사회장으로서 울산 반려동물 문화센터 애니언파크 설립에 큰 역할을 한 ‘자랑스러운 거인’ 이승진 회장님을 만나 이야기를 나눠봤습니다. 2014년 이후 8년 만에 인터뷰를 다시 진행했습니다.
Q. 오랜만입니다 회장님. 수의사 공통질문인데요, 어떻게 수의사가 되셨나요?
원래는 대동물 수의사를 꿈꿨었습니다. 집에서 소를 키웠었고 축산업도 호황이던 시절이었거든요. 대동물 수의사가 되기 위해 수의대에 진학했다가 4학년 때 소동물병원에서 실습을 하게 되면서 반려동물 수의사가 되기로 결심했습니다.
Q. 반려동물 임상 경력이 꽤 됩니다. 흔히 말하는 ‘1세대 임상수의사’인데요, 없던 길을 개척해야 하니 어려움도 많았을 것 같습니다.
벌써 30여 년이나 됐네요.
그 당시에는 학교에서 반려동물에 대해 배운 게 별로 없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보다 반려동물 임상 수준이 앞서 있었던 일본에 가서 공부하려고 준비하기도 했어요. 일본어 공부도 1년 정도 했었는데 결국 가지 않게 됐습니다. 지금 돌아보면 일본에 가지 않은 게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만약 그때 일본에 가서 앞선 임상 수준을 경험했으면 그게 최대치라고 생각했을 수도 있습니다. 그랬다면 성장에 한계가 있었겠지요.
한국에서 독학하고 공부하면서 오히려 더 발전할 수 있었다고 봅니다.
2002년에 울산에서 현 동물병원을 개업하였으며 이전에는 대구와 부산을 전전하면서 여러 차례 동물병원을 개업하고 폐업한 어려운 시기도 있었습니다. 10년간 빈털터리였죠. 매우 힘들었고 끝이 보이지 않는 미래였지만 그래도 ‘이 길만이 살길이다’는 마음으로 계속 노력한 결과 그래도 어느 정도는 만족한 삶이라고 생각합니다.
너무 빨리 성공하면 나태나 자만이 생길 수 있다고 봅니다. 10년의 부침이 있었고 남들보다 늦게 출발했기 때문에 더 시간과 노력을 집중해서 투자할 수 있었습니다.
Q. 개인적으로 정형외과에 특화되어 계신데요, 언제부터 외과 수술에 관심을 가지셨나요?
어릴 때부터 손쓰는 일을 좋아했습니다. 시골에서 자라면서 목수 보조를 하며 목공 일을 아르바이트로 하기도 했었습니다. 남들보다 손재주가 있었던 것 같고, 실습할 때 외과에 흥미를 많이 느꼈죠.
그 당시 소동물 관련 커리큘럼 자체가 없어서 졸업 후에 책을 보면서 독학을 하다시피 하였고 외과가 재밌었지만 공부하기는 어려웠습니다. 책도 별로 없어서 미국에 다녀온 수의사들이 사온 책(소동물 정형외과)으로 공부를 했었는데, 영어 실력이 부족하다 보니 정확하게 내용을 알기 위해 한글로 전체 내용을 번역해서 공부했었습니다. 그러다가 ‘소동물 정형외과’ 번역본을 출간까지 하게 됐죠.
Q. 이승진동물의료센터를 개원한 지 벌써 20년이 됐습니다. 20년간 병원을 계속 운영하는 게 쉽지 않을 것 같은데 운영 철학이 있나요?
병원 운영 철학은 시절이나 상황에 따라 달라지는 것 같습니다.
현재는 병원 경영과 의사 결정의 많은 부분을 혼자가 아닌 다른 원장들과 협의해서 결정하고 있습니다.
수의사 선생님들이 건의하는 내용을 항상 긍정적으로 보려고 노력하는데요, 건의하기 전까지 많은 고민과 회의를 거쳤기 때문에, 내가 힘들더라도 받아들이면 제안을 한 수의사도 책임감을 느끼게 되고 긍정적인 병원 운영이 가능해진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YES맨이 되려고 하고 있어요.
또 하나는 우리 병원에서 고생하는 선생님들이 성장하도록 지원하는 것입니다.
수의사 선생님들의 급여는 잘되는 병원을 운영할 때보다 적습니다. 그래서 대학원이나 해외연수 등을 통해 성장하도록 도우면서 장기적으로 명예를 가질 수 있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편집자 주 : 이승진동물의료센터에는 10년 이상 근무한 수의사 선생님이 4명이나 있습니다).
Q. 예전에 방문했을 때는 1~2층만 사용하셨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현재는 건물 전체를 사용하는 게 인상적입니다. 작년에 CT, MRI 장비까지 구매하는 등 계속 병원에 투자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반려동물 문화가 발전하면서 보호자의 니즈가 커지고 있습니다. 보호자의 니즈를 충족시키는 것 자체가 병원 운영의 핵심이라고 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장비와 인력을 보강해서 최상의 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현재 150평 4층 빌딩 전체를 사용하고 있으며 약 70명의 인원이 근무하고 있습니다. 예전 병원에서 현 장소로 이전할 당시 많은 변수를 고려한 고민을 하였습니다만 최종적으로 ‘앞으로 5년 뒤에 어느 장소가 유리할 것인가’로 변수를 단순화시켜 결정하였고 그 당시의 결정이 현재의 규모로 성장하는 데 큰 바탕이 되었다고 봅니다.
큰 테두리에서 봤을 때 최첨단 장비는 최신의 의학적 지식을 바탕으로 만들어진다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CT, MRI 등 영상 장비, 치과 장비, 외과 장비 등은 최첨단 고가 장비를 선택합니다.
Q. 회장님이 처음 임상을 시작할 때와 2022년 현재 반려동물 임상 상황이 많이 다를 것 같습니다. 어떤 변화가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그 당시에는 특정 집단, 특정 계층만 반려동물을 양육했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완전히 대중화되어 거대한 문화가 됐습니다.
동물병원도, 예전에는 예방접종 등 감염병 위주의 진료를 했다면 지금은 노령동물 관리, 정형외과 수술 등 고난도 치료도 소화해야 합니다. 고차원적인 치료까지 원하는 보호자들도 많아졌습니다.
Q. 반려동물병원 간 경쟁도 심해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맞습니다. 저는 앞으로 짧게는 5년, 길게는 10년 뒤 반려동물 임상 경쟁 환경이 지금은 상상도 없는 상황에 놓일 것으로 생각합니다.
수의학과에 입학하는 학생 숫자는 줄어들지 않고 고정되어 있는데, 인구는 감소하기 시작했습니다. 경제도 지금과 같은 추세로 계속 성장할 수 없고, 한계가 있습니다.
반려견 숫자가 정체되고 있습니다(반려묘는 늘어날 것으로 예상). 반려견 숫자가 늘더라도 반려동물 임상수의사가 그보다 더 빨리 늘어서 경쟁이 점점 심화되는데, 반려견 수가 정체되거나 감소하면 경쟁은 더 빨리 심해지겠죠.
반려견 수 정체, 인구 감소, 노령화로 인한 경제력 약화 등으로 5~10년 뒤에는 우리가 지금껏 보지 못한 (반려동물병원의) 생존 경쟁이 벌어질지도 모릅니다.
Q. 경쟁이 점점 심해진다면, 수의대생이나 후배 수의사들은 어떤 준비를 해야 할까요?
후배들보다 선배들이 역할을 해야죠. 반려동물 시장 성장에 따라 성공을 맛본 선배들이 후배들을 위한 환경을 만들어야 합니다.
따라서, 반려동물의 장점을 적극적으로 알려야 합니다. 개인의 취미나 기호로 키우는 것을 넘어서, 개인 간의 대화 단절, 외로움 등 현대 사회가 가진 다양한 문제점을 해결하는 데 반려동물이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해야 합니다. 반려동물 양육이 국민의 정신적 복지에 기여한다는 점을 많은 사람이 인식한다면, 정부·지자체에서 국민의 정신적 복지 증진 차원에서 반려동물 양육을 지원하지 않을까요? 정부가 이런 정책을 펼치면 수의직 공무원분들의 역할도 늘어날 것입니다.
수의사만이 가진 경험, 지식을 이용해서 다시 한번 반려동물 문화가 올바르게 성장하고 정착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Q. 울산시수의사회장을 두 번째 역임 중입니다. 2014년 첫 인터뷰 때도 언급됐지만, 울산 반려동물 문화센터(애니언파크) 건립 추진 및 성공이 매우 큰 성과였던 것 같습니다.
전례가 없던 시설이었기 때문에 힘들었습니다. 벤치마킹할 모델도 없었고 부지 선정도 힘들었으며, 울산시에서도 예산 확보가 쉽지 않았습니다.
특히, 당시에 지역 주민의 반대가 심했습니다. 동물 시설을 혐오 시설로 보는 분위기가 있었는데 그걸 설득하는 게 힘들었죠. 어려웠지만 지금은 잘 운영되고 있습니다.
Q. 현재 울산에는 동물과 관련한 어떤 현안이 있나요?
지금 울산에 반려동물 건강문화센터가 추진되고 있습니다(시장 공약 사항). 유기동물 보호시설은 물론, 교육장, 공원 등이 함께 들어서야 한다고 봅니다. 단순히, 유기동물을 보호하는 곳을 넘어 하나의 관광지가 되는 것이죠.
‘유기동물 보호’라고 하면 기피시설로 보는 경향이 있는데요, 이런 인식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동물친화센터’가 되어야 합니다. 어린 학생들에게 생명존중 교육이 중요한데, 학생들이 와서 체험하고 교육받고 봉사를 하면서, 생명과 교감하고 스스로 생명에 대한 가치를 인식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죠. 동물들이 학생들에게 의지하는 걸 경험하면, 학생들의 자존감도 높일 수 있습니다. 학생들이 정신적으로 성장하는 데 ‘동물친화센터’가 훌륭한 교육 장소가 될 수 있습니다.
Q. 2020년 울산 주상복합 아파트 화재 현장에서 주민 대피를 도운 공으로 대통령 취임식에 국민대표 20인(자랑스러운 우리시대 숨은거인)으로 초대받으셨습니다. 당시 상황이 어땠나요?
큰일을 한 건 아닙니다. 화재가 생겼을 때를 대비해 옥상구조를 미리 파악하고 있었던 것이 도움이 됐습니다.
화재 당일, 자고 있었는데 화재 경보가 울려서 깼습니다. 잠시 후 에어컨이 폭발하면서 정전이 되었고 갑자기 연기가 밀려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이전에 혹시나 하는 마음에 숙지하고 있던 대피처인 옥상으로 가기 위해 비상계단 문을 열고 올라갔더니 주민 20여 명이 모여있었습니다. 그런데, 옥상에도 불이 나 있는 상태라 옥상 밖으로 나가지 못하고 계단에만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옥상에서도 안전하다고 생각되는 장소를 먼저 확인한 다음 계단에 있는 입주민들을 유도하여 대피시켰고 잠시 후에 소방관들이 도착하고 비상계단으로 주민들을 이동시키려는데, 도저히 내려갈 수준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헬기장에 대피하는 게 좋을 것 같다고 제안했고, 소방관분들도 그걸 받아들여서 거기에 사람들을 대피시켰다가 화재가 잠잠해지고 내려갔습니다. 옥상구조를 파악하고 있었던 게 큰 도움이 됐죠.
Q. 울산소방본부에 소방공무원 치료와 순직 유족을 돕기 위한 기부금도 전달하셨는데.
화재 현장에서 직접 보니 소방관분들의 헌신과 노력이 정말 대단했습니다. 연기가 자욱한 상태에서도 구조를 위해 랜턴만 가지고 들어가서 층별로 수색하는 모습을 보면서 경이롭다는 생각까지 들었습니다. ‘목숨을 걸고 일하는 게 이런 거구나’라고 느꼈죠.
그래서 어떻게든 도움을 주고 싶다고 얘기했더니 순직 소방관 유자녀를 도와주면 좋겠다고 해서 기부를 하게 됐습니다.
국무총리 표장, 행정안전부장관 표창, 울산시장 표창과 함께 생명보험협회 생명존중대상을 받았는데 그 상금이 1천만 원이었습니다. 그 상금은 울산의 한 동물보호소 시설개조자금으로 지원했고, 직접 가서 시설개선 작업을 했습니다.
Q. 수의사들의 정치인 후원 필요성을 강조한 기고문이 큰 관심을 받았었습니다. 지금도 꾸준히 후원하고 계신가요? 수의사들의 정치인 후원, 왜 중요할까요?
두 명의 국회의원을 최고 한도로 꾸준히 후원하고 있습니다. 수의사 중에서 국회의원이 나오면 좋겠지만, 수의사 내부에서 국회의원이 나오기 전까지 단기간 내에 우리의 권익을 지키고 선배로서 후배들이 불이익을 당하지 않도록 방패를 만들어줄 필요가 있다는 생각에 후원하고 있습니다. 수의계 현안에 대한 관심을 높일 수 있어서 (후원을) 잘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정치인 후원은 사회발전에 봉사하는 길입니다. 직접 봉사를 할 수도 있지만, 올바른 정치인을 후원해서 그 정치인이 좋은 정치를 펼치면 더 많은 사람이 혜택을 볼 수 있습니다. 효과가 큰 사회봉사라고 생각합니다.
Q. 회장님의 앞으로의 계획이나 목표가 있다면?
임상수의사 개인으로는 함께 일하는 수의사들과 함께 병원을 더 성장시키고 발전시키는 것이 목표입니다.
울산시수의사회장으로는 울산시의 반려동물 정책, 동물보호 정책이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보조하는 역할을 해야겠지요.
마지막으로 선배 수의사로서는 정치적인 영향력을 확대하고 우리의 권익을 더 찾을 수 있는 바탕을 만들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