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의사 진료권 확보를 넘어 수의권(獸醫權)으로
진료권 확보는 면허제도의 기초목적..수의권 확립 위한 법 개정∙전담조직 필요
수의사는 동물진료를 전담하는 면허를 가지고 있지만 실질적으로는 양쪽에서 위협받고 있다. 진료권은 여전히 확립되지 않은 채로 규제만 늘어나고 있다.
우연철 대한수의사회 사무총장은 2일 열린 한국동물보건의료정책포럼에서 진료권 확보를 넘어 수의권 확립을 주창하며 이를 위한 기관∙정책을 수립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진료권은 면허제도의 기본 목적..밥그릇 문제 아냐
그간 수의사의 권리에 대한 논의나 현안은 ‘진료권’에 초점을 맞췄다. 대표적으로 자가진료 제한∙철폐, 무면허진료금지다. ‘동물의 진료는 수의사가 한다’는 면허제도의 취지를 정면으로 부정하는 일이라서다.
우연철 사무총장도 “수의사는 면허로 보장받아야 할 진료권조차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 수의사 면허체계를 운영하는 기본적인 목적조차 달성하지 못하고 있는 셈”이라고 비판했다.
2017년 반려동물 자가진료가 법적으로 금지되고 ‘수의사 진료’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조금씩 개선되고 있긴 하지만 아직 부족하다는 것이다. 여전히 농장동물에서 자가진료는 법적으로 허용된다. 수의사처방제도 유명무실하다.
우 총장은 ‘진료권 확보’를 동물 진료행위에 대한 배타적 권한을 법적∙실질적으로 확실히 마련하는 일’이라고 정의하면서, 수의사의 밥그릇 문제가 아니라는 점을 강조했다.
사회적 필요에 의해 동물 진료를 전문가인 수의사에게 맡기고자 면허제도를 만들었다면, 진료권 확보는 기본적인 법정신에 해당한다는 얘기다.
진료권에서 수의권으로 패러다임 전환
Board 중심 해외 모델
진료권 확보에서 더 나아간 수의권 확립으로의 패러다임 전환도 제언했다.
이날 발제에서는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소가 2021년 제안한 ‘한국적 의권(醫權) 개념의 분석과 발전 방향’을 예로 들었다.
의사는 이미 법적∙사회적으로 실질적인 진료권을 보장받고 있다. 그 토대 위에서 의권에 대한 논의가 확대되고 있다.
이날 발표에 따르면 의권은 단순히 전문직 개인이 진료에 대한 배타적 권리를 가지는 것에서 나아가, 전문직 수행 전반을 전문직 단체가 자주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직업적 자율성∙자기결정권에 해당한다.
결국 보건복지부나 농식품부 관리 하에 놓인 국내 면허제도와 달리, 전문직 단체(Board)가 전문직 구성원의 면허 부여와 비윤리적 행동 제제 등에 실질적인 자율권한을 갖는 해외 사례에 더 가깝다.
의권에 대한 연구결과를 내놓는 의료계와 달리 수의권은 개념정립에 대한 공감대도 아직 부족하다.
우연철 총장은 그 전제조건으로 수의사법 개정을 꼽았다. 수의사 면허제도를 운영하는 기본 목적에 대한 새로운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수의사뿐만 아니라 진료의 대상이 되는 동물의 존재, 동물의료에 대한 내용이 포함되어야 한다고 제언했다.
권리-규제-공공성 연계되어야 하지만
의사가 하니까 수의사도 해라?
이 같은 문제의식은 국회에 계류되어 있는 동물병원 진료부 공개 의무화 수의사법 개정안과도 맞닿아 있다.
의료에서는 권리와 규제, 공공성이 연결되어 있다. 보건의료기본법은 보건의료에 관한 알 권리가 모든 국민에게 있음을 천명하고 있다. 이를 바탕으로 의료법이 진료기록 제공을 의무화하고 있다. 의료기관이 폐업해도 의무기록은 관할 보건소가 이어서 보관할 정도로 공공성을 담보하고 있다.
반면 수의사법 개정안은 의료법과 같은 방식의 규제만 만들어낼 뿐, 동물의료와 그 기록에 대한 체계적 기반을 갖추고 있지 않다.
우연철 총장은 “동물의 의료정보가 누구의 소유인지도 불명확하다”고 꼬집었다. 동물에게 속한 정보인지, 수의사의 진료 전문성을 담은 영업비밀인지도 명확히 구분되지 않았는데 ‘의사가 하니까 수의사도 하라’는 식의 규제만 앞세워선 안 된다는 것이다.
우 총장은 “진료권은 면허제도를 운영하는 기초적 목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회가 (진료권 확보를) 밥그릇 문제로 본다면 ‘수의권’으로의 패러다임 전환이 필요하다”며 “이를 위한 동물의료 전담조직 설립과 정책 수립이 필요하다는 것이 대한수의사회의 제안”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