돼지수의사회 ‘농장 폐사 신고, 수의사 진료로 관리해야’
보상금 삭감 우려한 농가 의심신고 늘면 방역 부담..일반질병·전염병 감별은 농가 아닌 수의사가 해야
한국돼지수의사회가 일선 농장에서 수의사를 중심으로 가축전염병 의심 여부를 판단할 수 있도록 관련 법령을 개정해야 한다고 22일 밝혔다.
농장에서 악성 가축전염병이 아닌 이유로도 폐사가 흔히 발생하지만, 농가는 스스로 이를 구분하기도 어려운데다 지연신고에 따른 불이익도 우려할 수밖에 없는 진퇴양난에 빠져 있다는 것이다.
돼지수의사회는 이달 경기도 포천에서 2차례나 아프리카돼지열병(ASF) 의심신고가 접수됐다가 정밀검사 결과 음성이었던 사례를 지목했다. 방역당국과 양돈업계가 예기치 않던 가상훈련(CPX)을 실시한 셈이다.
돼지수의사회는 “이번 사례는 다행히 ASF 확진이 아닌 일반적인 질병으로 마무리됐지만, ASF 발생 지역이 확산되면 이 같은 가상훈련 상황이 반복될 가능성이 높다”며 가축전염병예방법 상 문제점을 지목했다.
현행 가축전염병예방법은 농장에게 신고의무를 부과하고 있다. 병명이 분명하지 아니한 질병으로 죽거나 병든 가축이 있으면 반드시 신고해야 한다. 정밀검사를 하지 않으면 병명을 분명히 알 수 없으니, 사실상 농장에서 발생한 모든 폐사는 신고대상인 셈이다.
농장으로서도 죽은 돼지만 보고 ASF인지 아닌지 판단하기 어렵다. 돼지수의사회는 “농장주들은 매일 태어나고 죽는 가축에 대해 폐사 원인을 규명하고, ASF 의심돼지를 감별진단해 신고해야 하는 부담을 떠안게 됐다”고 지적했다.
과거 ASF 발생농장의 살처분 보상금이 지연신고를 빌미로 감액된 사례가 있는만큼, 농장으로서는 불안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매번 폐사가 발생할 때마다 신고한다면 방역당국의 부담도 높아진다. 신고 소식이 퍼지면 이동제한을 우려한 주변 농장이 조기 출하, 사료 입고, 자돈 이동 등을 서두르면서 축산차량 움직임이 오히려 더 심해지는 부작용도 낳는다.
돼지수의사회는 “일정부분 폐사·도태가 발생하는 농장 현실 속에서 질병전문가도 아닌 농장주에게 ‘죽거나 병든 가축의 신고 의무’를 요구하는 것은 과도한 행정규제”라며 “지연신고를 명분 삼아 살처분 보상금을 삭감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수의사에 의한 일차적인 대응을 중심으로 방역정책을 개편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농장주가 가축의 건강상태 이상을 인지하면 수의사에게 신고하고, 수의사가 진료 후 방역기관으로의 신고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아울러 평시 농장에서 질병검사를 위해 가검물을 외부로 보내는 행위는 동물병원 수의사가 진단하는 과정의 일환으로 진행되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민간병성감정기관들이 방역당국에 대한 신고도 없이 농장·사료회사·약품회사 등으로부터 무분별하게 가검물을 접수 받아 진단을 내려주는 행위는 가축전염병예방법 입법 취지에서 벗어났다는 점도 지목했다.
동물병원이 해야 할 농장의 건강진단 기능을 대신 수행하면서 농장동물 임상시장을 위축시키고 방역정책의 효율성도 저해한다는 주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