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매상 연계 사무장 동물병원 실소유주 징역형..명의 빌려준 수의사 벌금형
농장동물진료권특별위원회 성과..‘이번 판결 근거로 타 도매상-사무장동물병원 재수사 촉구’
강원도 원주에서 수의사 명의로 사무장 동물병원을 개설한 동물용의약품도매상 업자 A씨에게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1년형이 선고됐다.
A업자에게 명의를 빌려주고 월급을 받은 혐의로 약식기소된 여성 수의사 B씨는 벌금 500만원형에 처해졌다.
대한수의사회 농장동물진료권특별위원회(위원장 최종영)가 2021년 6월 이들을 불법 사무장 동물병원 개설 및 면허대여 혐의로 경찰에 고발한지 2년여만에 나온 성과다.
농장동물진료권특위는 이번 판결을 바탕으로 타 지역에서 무혐의 처분이 내려진 건에 대해서도 이의를 제기할 계획이다.
동약도매상이 수의사 명의로 동물병원 열고 수의사에게 월급 지급
法 ‘사무장 동물병원 운영 행위도 불법 개설에 해당’
판결에 따르면, 동물용의약품 도소매업자인 A씨는 수의사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2017년 11월경부터 2021년 9월경까지 동물병원을 개설·운영했다.
수의사B 명의로 이른바 ‘사무장 동물병원’을 개설해 실질적으로는 A씨가 운영하는 방식이었다. 대신 수의사B에게는 월급 등의 명목으로 월 200만원을 지급하기로 공모했다.
A씨는 수의사B의 명의로 임대차계약서를 작성하고, 면허증을 교부받아 원주시에 동물병원 개설을 신고했다.
현행 수의사법은 수의사나 국가·지자체, 동물진료법인, 수의과대학, 비영리법인이 아니면 동물병원을 개설할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를 어길 경우 2년 이하의 징역이나 2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거나 이를 병과할 수 있다.
A씨 측은 수의사B의 명의로 동물병원을 개설한 사실은 인정하면서도, 개설 시점인 2017년 11월이 무자격자 동물병원 개설행위를 처벌하는 개정 수의사법이 시행된 2020년 2월 28일 이전이라는 점을 지목했다.
해당 법 시행 이후에는 기존에 개설된 동물병원을 관리·운영했을 뿐이므로 ‘무자격 동물병원 개설’에 관한 수의사법 위반으로 처벌할 수 없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무자격자의 동물병원 개설행위를 처벌하는 수의사법에 ‘운영’이라는 문언이 포함되어 있지 않더라도, 개설신고 후 동물병원을 관리·운영하는 일련의 행위까지 처벌대상에 포함된다는 것이다.
춘천지방법원 원주지원 재판부는 마찬가지로 ‘운영’이라는 문언이 존재하지 않았던 구 의료법에서도 대법원이 무자격 의료기관을 처벌하면서 개설신고 이후의 일련의 운영 행위까지 처벌대상으로 보았다는 점을 지목했다.
명의 빌려준 수의사가 실제로 일하면 면허대여 아니다?
도매상 관리약사 면허대여는 인정
다만 B수의사의 불법 면허대여 행위는 인정되지 않았다.
판결에 따르면 B수의사는 ‘사무장 동물병원 운영 과정에서 실질적인 업무는 피고인(A업자)이 요청하는 대로 처방전을 발급하는 것밖에 없었지만 처방전 발급은 직접 했다’고 진술했다. 피고인인 A업자의 진술도 같은 취지였다.
재판부는 약사 면허를 대여받은 자가 개설·운영하는 약국에서 면허를 대여해준 약사 자신이 실제로 약사 업무를 계속했고, 무자격자가 약사 업무를 행한 바 없는 경우에는 불법 면허대여로 볼 수 없다고 본 대법원 판례를 수의사 면허대여에도 그대로 적용했다.
대수 농장동물진료권특위가 B수의사를 면허대여 혐의로도 고발했지만, 검찰이 면허대여가 아닌 사무장 동물병원 개설행위로만 공소를 제기했다는 점도 감안했다.
재판부는 B수의사가 해당 사무장 동물병원에서 수의사 업무를 계속했으므로 A업자와의 사이에서 불법 면허대여 관계가 존재한다고 볼 수 없다고 판결했다.
하지만 A업자와 도매상 관리약사C와의 약사 면허대여는 인정됐다. 2017년 11월부터 2021년 9월까지 A업자의 도매상 관리약사로 등재됐지만, 실상 약사업무는 C약사가 아닌 A업자가 수행했다는 것이다.
이미 C약사가 2015년에도 A업자에게 약사 면허를 대여했다는 사실로 벌금형 약식명령을 받은 바 있고, 경찰에도 ‘동해시 실버타운에 6년째 거주 중으로, 월 80만원을 받고 약사 면허를 대여한 사실을 인정한다’고 진술했다는 점을 감안했다.
재판부는 “C약사가 도매상에 출근했거나 약사 업무에 관여한 사례가 일부 존재한다는 사정만으로는 면허대여 관계를 부정할 수 없다”고 판시했다.
유사한 다른 도매상-사무장동물병원 의심 사례는 무혐의 나오기도
특위 ‘이번 판결 바탕으로 이의 신청..불법 사무장 동물병원, 담합 근절해야’
2021년 결성된 특위는 불법 처방을 양산하는 동물용의약품도매상-사무장 동물병원 관계를 끊기 위한 고발·민원에 나섰다.
항생제 등 주요한 약품은 오남용을 막기 위해 수의사가 진료한 후 필요할 때만 쓰도록 수의사처방제가 도입됐지만, 실상은 농장이 도매상에 마음대로 주문하고 그 약이 처방대상약이라면 처방전을 끼워 넣는 방식으로 무력화됐기 때문이다.
도매상으로부터 독립된 수의사의 처방에 의해서만 처방대상약이 사용될 수 있도록 불법 사무장 동물병원의 고리를 끊어야, 농장동물 진료권을 확보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2021년 이후 특위가 고발한 사무장 동물병원은 전국 7개소다. 형사고발 대신 민원 등 다른 방법으로 대응한 경우까지 합하면 15개소가 넘는다.
하지만 형사고발이 처벌로 이어진 경우는 2곳에 그친다. 나머지는 경찰 수사 단계에서 나아가지 못했다.
특위는 이번 원주지원 판결을 바탕으로 무혐의 처분이 내려졌던 다른 곳의 수사에 이의를 제기할 방침이다. 이미 일부 무혐의 건에 대해서는 관할 검찰에 이의신청을 접수했다.
최종영 위원장은 “이번에 유죄가 인정된 원주 사례는 타 지역의 사무장 동물병원 의심 사례와 매우 유사하다”면서 “사무장 병원에서 발행된 처방전의 대부분이 실소유주 도매상에서 사용되고, 두 업체가 같은 건물에 존재하며, 처방에 대한 대가로 도매상과 병원 간에 금품이 오갔다”고 지적했다.
철저한 재수사를 통해 불법 사무장 동물병원과 면허대여, 담합행위를 근절해야 한다는 것이다.
최종영 위원장은 “동물병원이 진료한 후 받아야 할 진료비와 처방전 발급비용은 (도매상이 아닌) 농장으로부터 수령해야 정상”이라며 농장동물 진료권 쟁취를 위한 활동을 이어가겠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