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사회 원조 갚은 ‘네팔로 젖소 101마리 보내기’ 그 중심에 수의사가 있었다
아시아태평양수의사회, 헤퍼코리아 젖소 원조에 핵심 역할 한 김영찬 수의사에 특별상
10월 25일(금) 대전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제23차 아시아태평양수의사회 총회(FAVA 2024) 개회식에서는 특별한 시상식이 열렸다.
한국에서 네팔로 젖소 101마리를 지원하는데 큰 도움을 준 서울우유 파주진료소 김영찬 소장에게 FAVA에서 특별상을 수여한 것이다.
6.25 전쟁 직후 한국이 받았던 국제사회의 원조를 다시 갚는데 수의사가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젖소가 건강하게 네팔로 가서 임신하고 우유 생산하기까지..
김영찬 소장 비롯한 파주진료소 수의사들이 있었다
국제적인 농업 자선단체 헤퍼 인터내셔널(Heifer International)은 개발도상국에 가축을 지원해 농가의 자립을 돕고 있다.
한국도 예외는 아니었다. 헤퍼 인터내셔널은 6.25 전후 폐허가 된 한국으로 젖소를 비롯해 염소, 돼지, 닭, 토끼, 꿀벌 등 다양한 가축을 보냈다. 1952년부터 1976년까지 가축 3,200여마리가 미군 수송선을 타고 한국에 왔다.
그렇게 시작된 한국의 낙농업은 세계적인 수준에 도달했다. 우리나라 젖소의 우유생산량은 마리당 연간 1만kg에 달한다. 이스라엘, 미국 등에 이어 세계 최고 수준이다.
헤퍼코리아는 한국이 받았던 도움을 다른 나라에 되갚기로 했다. 그렇게 2022년 12월 네팔로 젖소 101마리를 보냈다. 네팔은 낙농업 비중이 높은 나라지만 젖소의 우유생산량은 한국의 1/3 수준에 그친다. 한국의 젖소가 네팔의 저소득층에 큰 도움이 될 수 있는 이유다.
구제역 발생국인 한국에서 살아있는 소를 해외로 보내기란 쉽지 않았다. 검역 문제를 제외해도 비행기로만 4시간 반, 다시 네팔의 신둘리 마을까지 차로 10시간을 가야 하는 먼 길이다. 소들이 건강하게 도착해 임신해서 우유를 생산하기까지 수의사의 도움이 필수적이었다.
김영찬 소장을 비롯한 파주진료소 수의사들은 한국에서의 검역부터 네팔 현지에서의 인공수정, 진료를 담당하며 프로젝트 성공에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했다.
이혜원 헤퍼코리아 대표는 “수의사님들이 현장에 함께하지 않으셨다면 생명을 살릴 수 없었다”고 감사를 전했다.
네팔에서 구하기 어려운 의약품도 지원하고, 수송 이후에도 젖소들이 건강하게 자랄 수 있도록 원격으로 자문했다. 김영찬 소장은 “전화가 매일 오다시피 했지만, 그래도 전화가 오는 게 반가웠다”며 “우리 진료소 수의사들이 정말 고생을 많이 했다”고 말했다.
스스로 돈을 벌어 공부하겠다는 소녀의 말을 듣고 ‘어떻게 돕지 않을 수 있겠나’
101마리 중 74마리가 송아지 낳고 우유 생산
보내고 끝이 아니다..‘성과 지속하려면 따뜻한 관심·격려 필요’ 당부
이날 FAVA 신임회장으로 취임한 허주형 대한수의사회장은 수의학 발전과 국제 원조에 영감을 전한 김영찬 소장에게 특별상을 수여했다.
개회식에 자리한 송미령 농식품부 장관, 존 데용 세계수의사회장 등이 기립박수를 보냈다.
김영찬 소장은 “헤퍼 인터내셔널이 한국전쟁 직후 우리나라에 젖소, 염소, 돼지, 종란, 토끼에 꿀벌까지 도와줬다는데, 55년 동안 젖소를 진료하면서도 그 사실을 몰랐다”며 “헤퍼코리아에서 자료를 주면서 도움을 청할 때 창피하기도, 미안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네팔에서 만난 소녀의 이야기를 전했다. 부모 없이 친척집에 사는 10살 남짓의 소녀에게 ‘아침 저녁으로 젖을 짜고, 낮에는 매일 풀을 베어와야 하는 일을 해낼 수 있겠느냐’고 묻자 ‘젖소로 번 돈으로 공부해서 의사가 되겠다’는 당찬 대답이 돌아왔다는 것이다.
김 소장은 “남자들은 일자리를 찾아 떠났고 마을에 남아 있는 사람들은 여자들이다. 어린 여자아이들은 초경만 지나면 지참금을 받고 시집을 가는 형편”이라며 “시집을 가는 대신 젖소로 돈을 벌어 공부하겠다는 말을 듣고 어떻게 돕지 않을 수 있겠느냐”고 말했다.
헤퍼코리아와 김영찬 소장의 노력에 힘입어 네팔로 간 젖소들은 순조롭게 자리잡고 있다. 10월 24일까지 74마리가 송아지를 낳았다. 네팔의 젖소보다 월등히 많은 우유를 생산하고 있다.
김 소장은 “(헤퍼코리아가 보낸 젖소로) 한달에 버는 소득이 네팔의 1년 소득에 버금갈 정도”라며 “경제적으로 자립한 여성들이 목소리를 내기 시작하면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더 좋은 교육을 받게 되고, 그 아이들도 더 좋은 직장을 가지게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앞으로의 노력이 더 중요하다는 점도 지목했다. 젖소만 보내면 끝이 아니다. 계속해서 송아지를 낳고, 좋은 유량을 유지하기에 진료 인프라뿐만 아니라 사료공급까지 네팔의 환경이 녹록치 않기 때문이다.
김영찬 소장은 “10년 후까지 이 프로젝트를 성공시키려면 여러분들의 따뜻한 관심과 격려가 필요하다”고 전했다.
서울시립대 수의학과를 졸업한 김영찬 소장은 서울우유협동조합에서 오랜 기간 소 임상수의사로 일했다.
국내에선 생소했던 수의사 그룹 진료를 1990년대부터 도입하고, 2000년에는 국내 최초로 유입된 구제역을 처음 찾아내기도 했다. 제2대 한국소임상수의사회장도 역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