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식장서 모견 배 가르고 노견은 근육이완제로 죽여..대수 ‘무분별한 약품판매가 문제’
화성 번식장 구조견 대부분 새 삶 찾았지만..불법 일당은 이제야 재판행
2023년 9월 경기도 화성의 대규모 번식장에서 개 1,400여마리가 구조됐다. 커터칼로 배를 가르고 호르몬제를 투약하는 동물학대 현장이 드러났다.
동물보호단체와 경기도가 개들을 나누어 보호에 나섰다. 수의사 봉사단체들도 연이어 긴급 중성화 봉사를 실시했다.
1년 반이 지났지만 아직 사건은 마무리되지 않았다. 구조된 개들 다수가 새로운 가족을 만났지만, 나이가 많거나 건강이 좋지 않은 개들은 여전히 보호소에 머무르고 있다.
번식장 운영진과 직원은 불법 수술과 안락사, 백신 투여 등 동물보호법 및 수의사법 위반 혐의로 지난달 재판에 넘겨졌다.
대한수의사회는 새해를 맞아 1월 2일(목) 화성 구조견들이 남아 있는 반려마루 여주를 찾았다. 동물학대를 유발하는 무분별한 약품판매를 규탄하는 성명도 냈다.
번식업자들이 근육이완제로 개를 죽이고 백신·항생제를 불법 투약할 수 있었던 것은 결국 그들에게 약이 주어지는 것을 막을 수 없는 제도상의 허점 때문이라는 것이다.
경기도가 맡은 화성 번식장 구조견 687마리 중 600여마리가 새 삶 찾아
구조 직후 집중 중성화, 노령견 진료 봉사..수의사들도 도왔다
동물보호단체들과 경기도 특별사법경찰단은 지난 2023년 9월 1일 화성 소재 대규모 번식장에서 구조작전을 벌였다. 김동연 경기도지사가 직접 현장을 찾았다.
이들은 현장에서 살아 있던 개 1,410마리를 구조했다. 동물보호단체들이 개들을 나누어 맡고 남은 687마리를 경기도가 담당했다. 어린 개체 104마리는 가까운 반려마루 화성으로, 성견들 위주의 583마리가 반려마루 여주로 왔다.
수의사 단체도 힘을 보탰다. 경기도수의사회, 버려진동물을위한수의사회, 서울시수의사회 봉사단이 연이어 반려마루 여주를 찾아 400마리가 넘는 구조견들의 중성화를 진행했다. 당시 임신이나 건강상의 문제로 당장 수술이 어려운 경우를 제외하면 모두 중성화를 받았다.
덕분에 구조 한 달 만에 빠르게 입양을 시작할 수 있었다. 이후 1년여 동안 반려마루로 온 구조견들 대부분이 새 삶을 찾았다. 화성으로 간 어린 개체들은 입양처를 찾기 어렵지 않았다. 여주로 온 개들 중에서도 500여마리가 새로운 가족을 만났다.
이은경 경기도 반려동물과장은 “나이가 있거나 관리가 더 필요한 85마리가 아직 남아 있다”면서 “최근 지역 동물병원에서 진료 봉사를 와주시는 등 수의사 분들의 도움도 이어지고 있다”고 감사를 전했다.
커터칼로 살아 있는 모견 배 가르고, 근육이완제로 노견 죽여
수원지검, 불법 번식장 일당 기소
구조 당시 현장에서는 불법 자가진료를 의심케 하는 정황이 다수 드러났다.
번식장 냉동고에서 사체 93마리가 발견됐는데, 이 중에는 불법 제왕절개 수술을 한 것으로 보이는 개체도 발견됐다. 문구용 커터칼로 배를 갈라 새끼를 강제로 꺼냈다는 제보도 나왔다. 백신, 항생제 등 다수의 약병과 주사기들도 발견됐다.
수원지검은 해당 번식장에서 개를 조직적으로 학대한 운영진과 직원 일당을 동물보호법 및 수의사법 위반 혐의로 기소했다고 12월 29일(금) 밝혔다.
검찰은 2023년 12월 사건을 송치 받아 지난해 5월부터 12월까지 주요 피의자들을 대상으로 조사를 벌였다.
수원지검은 “해당 업체의 운영진은 상품 가치가 있는 자견을 꺼내기 위해 문구용 커터칼로 살아 있는 모견의 배를 가르고, 근육이완제를 투여하여 자견을 낳지 못하는 노견을 안락사시키는 등 잔혹한 수법으로 동물을 학대했다”면서 “운영진은 자견 출산 과정에서 사망한 모견을 ‘전사했다’고 표현했다”고 지적했다.
검찰은 ‘안락사’라고 표현했지만 근육이완제만 투여해 죽음에 이르게 하는 행위는 심각한 고통을 유발한다. 안락사라고 볼 수도 없다.
수원지검은 “병원비를 절감하기 위해 백신 투약, 주사 진료 등 (수의사) 면허 없이 자가진료 행위를 했다”면서 “비윤리적 방식으로 오로지 이윤을 극대화하는 경영에만 치중했다”고 꼬집었다.
커터칼로 살아 있는 모견 1마리의 복부를 절개해 잔인한 방법으로 죽음에 이르게 하고, 상품가치 없는 노견 15마리에 근육이완제를 투여해 죽음에 이르게 한 운영진 5명은 동물보호법 및 수의사법 위반 혐의로 불구속 기소됐다.
백신, 항생제 등 의약품을 투여하는 불법 자가진료 행위를 한 직원 5명은 수의사법 위반 혐의로 약식 기소됐다.
대수 “동물학대 유발하는 무분별한 약품판매가 문제..제도 개선해야”
대한수의사회는 2일 시무식을 겸해 반려마루 여주를 찾았다. 반려마루 여주의 보호시설과 교육 인프라를 둘러보고, 보호소에 머물고 있는 개들의 산책을 돕기도 했다.
대한수의사회는 화성 번식장 관련 일당이 최근 재판에 넘겨진 점을 지목하며 “동물학대를 유발하는 무분별한 약품 판매가 문제”라고 규탄했다. 이번 화성 사례만 보더라도 일반인이 약품을 자유롭게 구해 쓸 수 있다는 것이다.
대수는 “수의사처방제를 무력화시킨 약사법 예외조항(제85조 제7항)에 의해 94%의 동물약품은 수의사 처방 없이도 약국에서 구입할 수 있다”면서 “처방대상인 동물용 마취제, 동물용 호르몬제뿐만 아니라 내성 문제를 유발할 수 있는 경구용 항생제 역시 수의사의 처방 없이 약국에서 구매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지적된 실데나필 오남용 위험도 대표적인 사례다. 반려견용 심장약으로 나온 실데나필 제제를 약국에서 임의로 구입해 사람의 발기부전 처치용도로 오남용하는 것을 막기 위한 어떠한 제도적 장치도 없다.
대수는 “약품의 오남용을 부추길 수 있는 동물병원 진료기록 공개 의무화 법안은 발의되고 있지만 근본적인 약사법 개정 논의는 전무하다”면서 “그로 인한 사회적 위험성에 대한 책임은 사용자에게 전가되고 있다”고 규탄했다.
정부를 상대로 “동물약품 오남용은 동물의 건강뿐만 아니라 국민의 안전과도 직결되는 문제라는 경각심을 가지고 관련 제도 개선에 노력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동물약품 판매업소에 대해서도 사용자의 오남용 유발 위험성을 명심해야 한다고 당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