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습 동기
저는 현재 전북대학교 야생동물실험실에 소속된 수의학과 학생입니다. 작년 여름에 야생동물구조관리센터에서 처음 실습했고, 올해 여름에 두번째로 4주간 실습을 하게 되었습니다.
야생동물은 우리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없는 동물들이고 반려동물과는 다르게 쉽게 찾을 수 있는 정보가 별로 많지 않습니다. 살면서 제가 볼 수 있었던 야생동물은 고작 비둘기나 참새, 드물게 족제비 정도였고, 가까이 있지 않으니 당연히 관심이 생기지 않았습니다.
제가 수의학과에 진학하게 된 이유도 야생동물보다는 개, 고양이, 앵무새와 같은 반려동물의 영향이 훨씬 컸습니다.
그러나 센터에서 우리나라에 서식하는 많은 야생동물들을 접하고 매우 가까이에서 실습하면서 야생동물에 대한 관심과 흥미가 점점 커졌고 더 많이 알고 싶고 배우고 싶은 열정이 생겼습니다.
실습 내용
7, 8월 2달 동안 총 3개의 조가 실습을 하고, 각 조에서 실습생들은 주말을 포함한 이틀동안 교대로 쉬게 됩니다.
이전조는 다음조와 1주 정도 겹쳐서 실습을 진행하게 되고, 이 때 인수인계를 합니다. 인수인계는 실습을 하면서도 이루어지고, 발표로도 이루어집니다.
야생동물구조관리센터에는 처치실, 방사선실, 조류실, 포유류실, 포육실, 수술실, 그리고 외부 계류장이 있습니다. 처치실에서는 매일 구조되어온 야생동물, 센터 계류중인 동물들을 치료합니다. 조류실과 포유류실, 보육실은 구조되어온 야생동물이 센터 내에 계류하는 곳입니다. 방사선실은 골절이 의심되는 동물의 x-ray 사진을 촬영하는 곳입니다.
실습시간은 9시부터 6시입니다. 9시에 출근하면 먼저 실습생들은 포유류실, 포육실, 조류실을 청소하고, 계류하고 있는 동물들에게 약을 급여하며, 매일 체중을 기록합니다.
조류를 보정할 시에는 반드시 가죽장갑을 착용하여 날카로운 발톱에 다치지 않도록 하고, 담요를 이용해서 날개를 펼치지 못하도록 보정합니다. 또한 조류는 앞을 볼 수 없게 해야 스트레스와 불안함을 비교적 줄여줄 수 있으므로 체중을 잴 때는 눈도 함께 담요로 가려줍니다.
수리부엉이나 중대백로와 같이 크거나 특수한 형태의 신체구조를 가진 개체의 경우에는 보정 방법을 제대로 숙지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수리부엉이는 뒤에서 양팔 사이에 가두는 식으로 접근하고 양 팔을 이용해 날개를 눌러주며 양 손은 발목을 단단히 잡습니다. 물론 담요로 꼭 눈과 몸 전체를 가려주어야 합니다.
백로, 황로, 왜가리와 같이 목과 부리, 다리가 긴 개체는 언제든지 빠르게 눈을 찌를 수 있기 때문에 특별히 조심해야 합니다. 눈을 공격하지 못하도록 목을 뒤로 하여 안아 주어야 하고, 긴 다리가 엉키지 않게 잘 보정합니다.
직박구리, 참새, 소쩍새와 같은 소형 조류 같은 경우는 한손으로 보정하는 방법인 콘 보정법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포유류 중 센터에 가장 많이 계류하는 동물은 단연 너구리입니다. 상처 입고 센터에 계류 중인 너구리는 매우 예민하고 사나워 자칫하면 크게 부상을 입을 수 있으므로 역시나 보정법을 잘 익혀 두어야 합니다.
이렇듯 매일 하는 일과인 약 급여와 체중 측정은 자칫하면 동물과 실습생이 모두 다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어 대충해서는 안되는 중요한 업무입니다.
약은 가루약을 물에 녹여 주사기를 이용해 식도로 주입하는데, 한 명이 동물을 보정하는 동안 다른 사람이 약을 급여합니다.
차트에는 전날 넣어준 먹이 중 남은 양과 체중을 꼼꼼히 체크합니다. 만약 계속 먹이를 잘 먹지 않는 상태라면 체중이 감소했을 가능성이 큽니다. 특히 조류의 경우 체중이 감소하면 큰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이 차트 작성은 매일 센터 계류 동물들의 상태를 확인하는데 필수적인 자료입니다.
그 이후 먹이를 차트에 적혀 있는 대로 정량 담아 각 케이지에 넣어줍니다. 먹이로는 병아리, 메추라기, 밀웜, 장구벌레, 미꾸라지, 냉동물고기, 씨드, 당근 등이 있습니다.
병아리나 메추라기는 황조롱이, 새홀리기, 수리부엉이, 올빼미, 소쩍새와 같은 개체들이 먹습니다. 밀웜은 직박구리, 뻐꾸기와 같은 개체가 먹고, 미꾸라지와 냉동물고기는 물새들의 먹이입니다. 장구벌레와 밀웜은 흰뺨검둥오리와 원양의 어린 개체들에게 넣어주고, 당근과 풀은 고라니가 먹습니다.
또 제가 실습할 때 청설모 새끼가 구조되었는데, 매일 일정량의 분유를 제 시간마다 먹이고 배변활동을 유도하는 일을 했습니다. 이렇듯 어린 개체의 경우는 분유를 농도에 맞추어 타서 아침, 저녁이 아니라 일정 시간마다 급여하기 때문에 밤에도 센터에 나와 분유를 먹이곤 했습니다.
일이 일찍 끝나면 처치실에서 수의사 선생님이 상처 소독, 밴디징 등 처치를 할 때 보조합니다.
보통 보정을 하거나 옆에서 필요한 물품을 가져다 드리는 역할을 하는데, 보정시에는 앞서 케이지 청소때처럼 각 종마다 보정법을 숙지해야합니다. 특히 너구리는 힘이 매우 세고 자칫 놓쳐버리면 수의사 선생님께서 물려서 큰 상처를 입을 수 있어서 각별히 조심해야 합니다.
처치보조 말고도 15분정도 고라니 산책을 시켰는데, 아래 사진 속의 고라니는 사람이 불법적으로 키우다가 센터에 구조되어 와서 사람을 경계하지 않고 뒷다리 보행이 불편한 개체라 담배꽁초 같은 것을 주워 먹지 않는 정도로 주의를 기울이면 되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고라니, 그리고 사실 거의 모든 야생동물은 사람을 따르지 않기 때문에 고라니를 산책시킬 때는 계류장 내 공간같이 입구가 막혀 있는 공간에 놓아서 도망가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고라니는 매우 예민하고 빠른 동물이라 달아나면 정말 찾기가 쉽지 않습니다.
12시부터 1시 반까지는 점심시간입니다. 점심시간이 끝나고 다시 센터로 돌아오면, 1시반이나 2시쯤 약을 투여해야 하는 개체에게 제시간에 약을 급여하거나, 연무요법(nebulization)을 실시합니다.
연무요법은 호흡기 문제가 있는 개체에게 직접적으로 수증기 형태로 약을 들이마시게 하는 방법입니다. 숨을 쉴 때 쉰 소리가 나거나 호흡수가 정상적이지 않아 가쁘게 느껴질 때, 보통 호흡기 질환을 의심하는데, 하루에 2번 정도 연무요법을 시행합니다.
그 후 오후에 수술이 잡혀 있을 시, 수술실에 들어갑니다. 보통 실습생은 심박수, 호흡수, 체온을 5분마다 체크해 차트에 적는 역할을 합니다.
특히 조류의 경우에 체온이 일정 이하로 떨어질 경우가 많이 발생하는데 이를 발견했을 시 수의사선생님께 바로 알려 체온을 곧바로 높여야 합니다. 드라이기를 이용하거나 핫팩을 수건에 감싸 몸에 가까이 대어줍니다.
오후에 시간이 있으면 재활사 선생님들꼐서 신고된 야생동물을 구조하는 과정을 돕습니다.
재활사 선생님들께서는 센터로 걸려오는 전화를 받을 때 신고지의 주소와 동물의 상태와 같은 기본적인 정보를 수집한 다음 출동합니다. 조류 신고를 받았을 시는 종이박스를, 너구리나 고라니와 같은 포유류 신고를 받았을 시는 아래 사진의 플라스틱 케이지를 가져갑니다.
신고지에 도착하면 신고자를 만나 정보를 작성하고, 동물을 구조해서 다시 센터로 돌아갑니다.
제가 구조를 나갔을 때는 솔부엉이, 집비둘기, 쇠백로가 있었는데, 장소도 다르고 개체 종도 다르지만, 하나 공통적인 사실은 신고자들이 구조한 동물들의 상태를 걱정하고 있었다는 것이었습니다. 평소에 잘 보기 힘드니 그 동물들에 대해 잘 알지 못하더라도 다친 동물을 걱정하는 마음만은 제게 잘 전해졌습니다.
동물을 구조하기 전과 구조하고 나서 해야 하는 일에 대한 정보들을 홍보해 많은 사람들에게 전달한다면 더욱 신속하고 원활한 구조가 이루어질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신고자의 전화는 언제든 올 수 있기 때문에 오전에도 오후에도 야생동물이 센터로 구조되어 올 수 있습니다. 야생동물이 도착하면 제일 먼저 무게를 재고, 수의사 선생님들께서 전체적인 동물의 상태를 확인하시며 골절이 의심되면 x-ray사진을 촬영합니다. 상태가 위중하다고 판단되면 보통 icu에 계류하게 됩니다.
구조가 아닌 방생과정은 실습생과 함께 가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아래 사진은 너구리 새끼들이 어느새 저렇게 자라서 방생하게 된 사례이고, 그 외에 삵, 수리부엉이, 소쩍새, 황조롱이, 참새 등이 방생되었습니다.
일주일에 한번 정도 부검이 잡혀 있을 경우, 조직 샘플을 채취할 도구들과 부검할 사체를 가지고 수의학관 1층에 위치한 부검실로 이동합니다. 부검은 폐사한 동물의 사인을 확인하고 연구하기 위해 진행합니다. 조직 샘플을 모두 담고 나면 다시 센터로 돌아오고, 사용한 도구는 깨끗이 씻어 다시 보관합니다.
4시~5시가 되면 동물들의 저녁밥을 준비하는데 올빼미, 수리부엉이, 황조롱이와 같이 병아리를 급여하는 센터 내 계류 개체들에게는 비타민과 같은 영양제를 병아리 내부에 잘 섞어서 넣어줍니다.
그 외에 다른 동물의 먹이는 아침과 거의 비슷합니다. 역시나 저녁약이 있는 동물에게는 약도 함께 급여합니다.
또한 저녁에는 센터 외부 계류장에 계류하는 동물들의 먹이도 챙겨줍니다. 계류장의 동물로는 독수리, 너구리, 수리부엉이, 황조롱이, 소쩍새, 괭이갈매기, 원앙, 흰고니, 왜가리 등이 있습니다. 먹이를 넣어줄 때 물그릇도 함께 채워줍니다.
이렇게 일을 마치고 6시가 되면 퇴근합니다.
실습이 끝나는 마지막 4주차에는 실습생들의 발표가 이루어집니다. 발표는 야생동물 관련 주제로 수의사 선생님들의 조언을 받아 결정합니다.
발표를 하고 나면 수의사 선생님들과 테크니션 선생님, 재활사 선생님들께서 틀린 부분은 교정해주시고 추가적인 정보들을 더 알려주십니다.
실습 후기
처음 인수 인계를 받는 동안은 일에 익숙하지 않아서 여러모로 많이 헤맸는데, 인수인계해주는 실습생분들과 센터 직원분들이 모두 자세하고 친절하게 알려주어서 금방 적응할 수 있었습니다.
센터 계류중인 야생동물과는 실습과정에서 매순간 마주치게 되므로 일상에서 보기 힘든 야생동물에 대해 더 많이 알게 될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4주간 가장 가까이 지낸 만큼 야생동물에 더욱 많은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사실 센터에 구조되는 동물들은 일반적인 반려동물 환자와는 다르게 중상을 입은 경우가 많아서 적지 않은 수가 치료 과정 중, 혹은 처치가 이루어지기도 전에 폐사합니다.
또한 야생동물은 사람과 친밀한 동물도 아니고, 또한 그래서도 안되기 때문에 귀여운 동물들을 기대하고 실습하게 된다면 실망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센터에서는 수의사 선생님들과 테크니션 선생님, 재활사 선생님들께서 최선을 다해 많은 동물들의 성공적인 방생을 목표로 일하고 계시고, 실습생들도 그에 발맞춰 열정을 가지고 실습하려고 하는 모습에 저도 뭐든 열심히 하려고 노력했던 것 같습니다.
야생동물 구조나 재활, 관리, 처치가 이루어지는 과정 등 야생동물구조관리센터에서 이루어지는 전반적인 업무나, 야생동물관련 진로에 흥미가 있으신 모든 분들은 충분히 실습과정에 만족할 거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