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턴 지원 동기
어디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해야할지 모르겠지만, 투자회사에서 한 번 일해보겠다는 정확한 결심은 휴학을 결정하고도 조금 후에 내리게 되었다.
2017년 나는 한창 창업에 대해 관심이 많았고, 몇몇 공대 친구들과 팀을 꾸려 반려동물과 관련된 창업 준비를 진행하고 있었다. 하지만 학과 수업과 병행하여 창업을 진행한다는 것은 쉽지 않을 것 같았고, 2018년 한 해 휴학을 결심하게 되었다.
열정과 패기로 결정한 휴학과 창업이었지만, 모든 일이 그렇듯 창업에도 돈이 필요했고 자연스럽게 스타트업 투자는 어떻게 이루어지는 것인지 궁금하게 되었다.
때마침 의대 편입 예정인 친구가 투자회사 인턴기간이 마무리되면서 구인하는 글이 눈에 띄었는데, 이 때 두 가지를 생각에 두고 고민하게 되었다. 휴학을 결정한 한 해 동안 창업에 뛰어들 것인지, 아니면 찾아온 기회를 잡고 투자회사에서 한 번 경험을 쌓을 것인지.
고민 끝에 결국 언젠가 제대로 된 창업을 하기 위해서는 투자 생태계를 이해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고, 투자회사 인턴을 냉큼 지원하게 되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이런 우연한 기회와 빠른 결심이 맞물려 현재까지 정말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지 않았나 생각한다. 그렇게 인터뷰를 보고 2018년 1월부터 회사에 출근하기 시작했다.
인턴 활동
우선 액셀러레이터라는 비지니스도 투자업에서의 스타트업에 속한다.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미국 최초의 액셀러레이터인 YCombinator는 2005년에 설립되었으며, 내가 인턴을 지원한 투자회사 역시 국내에서 초창기 액셀러레이터에 속하지만 만 4년차의 신생기업이었다.
국내에서 2000년대 초반 닷컴열품 이후 또 다시 한 번 스타트업 열풍이 찾아온 현시점에서 수많은 스타트업뿐만 아니라 투자사도 여럿 많이 존재하지만, 내가 인턴으로 일한 회사는 1)초기 스타트업 혹은 예비창업가 2)딥테크 분야의 스타트업에 집중적으로 투자하는 액셀러레이터였다.
모든 스타트업이 그렇듯이 회사가 성장하는 속도만큼 회사 대내외적으로 많은 변화를 경험할 수 있었다. 내가 일하는 1년동안 회사 전체 인원이 2배로 증가했고, 외부적으로도 회사의 인지도가 많이 높아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인턴이 하는 업무도 필요에 따라 많이 변하였다.
쉴 틈없이 팽창하는 회사에서, 비교적 자율적인 업무 미팅 참여를 통해 어깨너머로 배운 초기 스타트업 투자 생태계에 대해 소개하고자 한다.
1) 스타트업 발굴
투자회사의 가장 주요한 업무 중 하나인 스타트업 발굴은 딜 소싱(Deal Sourcing)이라고도 하며, 최대한 다양한 채널을 열어두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기 창업가로부터 지인 추천을 받기도 하고, 창업 관련 행사에서 만나기도 하며, 콜드메일(Cold-mail)로 사업계획서를 받아보기도 한다. 따라서 투자회사 투자심사역은 사무실에 앉아있는 시간보다 외부에 일정이 있는 시간이 많다.
특히 기술 관련 스타트업들은 국책연구원이나 대학 교수님의 창업이 주를 이루기 때문에, 서울에 위치한 여러 연구소 및 병원뿐 아니라 판교, 대전, 포항 등등 전국 각지에 위치한 대학과 연구소에 찾아가는 경우가 많다.
투자자로서 접하게 되는 연구원 및 교수 출신의 창업가분들의 사업 소개는, 해당 기술분야에 대한 배움의 기회가 되기도 한다. 보통 한 번에 기술과 사업을 이해하기는 어렵기 때문에, 여러 번의 미팅과 내부적인 기술성 및 시장성 조사 후 정식의 투자유치용 사업소개(IR, Investor Relations) 자리를 가지게 된다.
액셀러레이터의 경우 비지니스모델이 초기에 좋은 기업을 누구보다 먼저 발굴하여 일찍 투자하는 것이기 때문에, 예비창업가의 창업을 미리 많이 도와주고 투자를 진행하기도 한다.
내가 일한 회사는 본사가 대전에 위치하고, 카이스트와 많은 네트워크가 있었기 때문에 한 달에 두세번씩은 대전에서 근무하게 되었다. 랩투비즈(Lab to Biz)라는 창업 보육 프로그램의 멘토링에 함께 참여하여 어떻게 실험실의 연구가 사업화로 이어지는지 볼 수 있었고, 한국생명공학연구원 및 한국화학연구원 실험실의 박사 연구원들과의 미팅을 통해 여러 기술분야를 접할 수 있었다. 또 혁신 신약을 연구하는 분들의 모임 행사를 참석/주최하며 우리나라 바이오 연구와 기업들의 큰 가능성을 목격할 수 있었다.
창업가를 만나기 위해서는 이처럼 정성적인 업무가 많이 필요하기 때문에, 주체적으로 대부분의 업무 일정을 꾸려갈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2) 투자
투자 유치를 위한 사업소개(IR) 발표를 일컫는 ‘피칭(Pitching)’ 일정이 잡히기 전까지 해당 팀과 미팅을 이어온 담당 투자심사역은, 피칭이 회사 내부의 다른 분들을 설득시키기에 충분해야하기 때문에 창업팀의 사업계획서 수정을 돕는다(회사에서 가장 재밌었던 예시로, 레이저 분석기를 통해 우주 운석의 구성을 연구하는 기술로부터, 사람 피부에 적용해 피부암을 조기진단하는 의료기기를 만드는 스타트업으로 탈바꿈한 사례가 있다).
스타트업의 대표가 투자회사에서 피칭을 진행하면, 그 이후로 투자 검토 프로세스가 이루어진다. 투자회사마다 주의 깊게 검토하는 부분과 걸리는 시간이 상이하며, 투자 결정시 계약서에 쓰이는 내용도 다르다.
한 평생 기술을 연구해온 연구자에게 사업은 정말 다른 일이다. 스스로 기술을 바라보는 시각이 달라져야 하고, 무엇보다 시장의 기회를 잘 포착해야 한다. 이 때 큰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바로 시장의 현황을 잘 알고 있는 투자자인 것이다. 직접 각계 산업군의 사람들을 하나하나 만나보며, 빠른 소식에 민감한 투자자에게 시시각각 변하는 정보들이 모여있다.
특히 초기단계에 투자하는 액셀러레이터는 혁신적인 기술을 가진 팀을 만나는 경우가 많다. 스타트업의 목적은 현재까지의 기술로는 해결하지 못한 언맷니즈(Unmet-needs)를 풀거나, 기존의 대기업이 차지한 시장을 혁신적으로 뒤바꾸기 위한 도전이기 때문이다.
의사 출신의 팀장님과 약학박사 및 약사 팀원으로 구성된 바이오/헬스케어 투자육성팀 인턴으로 일하면서 신약개발과 신의료기기, 그리고 의료 인공지능을 비롯한 디지털헬스케어 분야에 정말 많은 시야를 넓힐 수 있었다.
새로운 약과 의료기기를 개발하기 위해서 필요한 사업 마일스톤을 간접적으로 이해할 수 있었으며, 디지털헬스케어의 발전을 목격하면서 의료 현장의 미래에 대해 많이 생각해보게 되었다.
투자심사보고서를 작성하고 투자심사과정에 참여하면서는 주식회사의 재무제표 및 계약서 등 기초적인 경제/경영에 대한 공부도 이어가게 되었다.
3) 액셀러레이팅
액셀러레이터와 다른 기관투자자들과의 가장 큰 차이점이라고 할 수 있다.
단순히 투자금을 집행하고 감사를 진행하기보다는 각각의 창업팀이 더욱 빠르게 성장할 수 있도록 부족한 부분을 모두 챙겨주는 역할을 한다. 창업팀의 사업 확장을 위한 인적 네트워크를 연결해주거나, 알맞은 프로젝트 혹은 협업 파트너를 구해주기도 하며, 팀내 내부 갈등을 해결하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적절한 도움을 주기 위해서는 창업팀 현황을 비롯한 구체적인 자료들이 필요하기 때문에, 창업팀과 담당심사역 사이의 신뢰도가 매우 중요하다.
기술 기반 스타트업의 경우, 서비스 중점 스타트업과는 달리 배치 프로그램(Batch program)을 통한 액셀러레이팅이 적용되기 어렵다. 고객의 반응에 따라 즉각적으로 제품에 변화를 주어 사용자 수를 급격하게 늘리고 재이용율을 높이는 등의 린스타트업(Lean Startup) 방법론은 B2C에 강력하지만, 대부분의 기술 스타트업은 B2B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파트너십도 큰 대기업, 혹은 병원과 연구소와 구축하기 위해 넓은 네트워크를 활용할 필요가 있다. 주변사람 한 사람 한 사람이 모두 소중한 자원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직접적인 관련이 없어도 서로가 도움을 먼저 주려는 이유이기도 하다.
창업팀의 각 사업단계마다 도움을 필요로 하는 부분이 다르기 때문에 맡은 일도 전부 제각각이었다.
수의학 전공을 바탕으로 영어와 불어를 배워둔 덕분에, 한 벤처제약회사의 동물약품 글로벌 파트너십을 위한 해외 현지 미팅을 다녀오기도 했다. 미팅 한 달 전부터 벤처제약회사의 핵심기술과 사업방향성에 대해 대표님과 미팅을 여러 차례 가졌고, 현지 미팅시에는 통역과 질의응답을 담당했다. 다국적제약사의 본사 최고책임자와의 미팅에 참석해 본 것은 정말 값진 경험이었다고 생각한다.
이외에 창업팀의 사업계획서를 함께 수정해보고, 후속투자 관련 미팅에 같이 동반되기도 하며, 수십억 규모의 국가과제 선발에 도움을 주기도 했다.
4) 스타트업-투자 생태계 조성
창업가가 스타트업을 크게 성장시켜 대기업에 M&A 혹은 기업상장 등을 통해 엑싯(EXIT)을 경험하고, 후배 창업가들을 위해 엔젤투자와 액셀러레이팅을 적극 지원한다. 미국에서는 흔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창업 생태계의 선순환적인 이야기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미국의 모습을 따라가기위해 국가에서 많은 지원이 있는 편이다. 최근에는 크고 작은 엑싯을 경험한 스타트업 대표들이 생겨나면서, 또 여러 대기업이 오픈이노베이션(Open Innovation)을 지향하면서, 민간기업에서도 스타트업에 많은 지원이 이루어지고 있다.
투자기관마다 포트폴리오를 소개하는 데모데이(Demo day)가 1년에 한 두번씩 가장 큰 행사로 자리잡고 있다. 올해 천명 규모의 데모데이를 위해 창업팀의 준비를 함께 돕는 과정에서, 수많은 사람들의 집중을 끌 수 있는 프레젠테이션을 구성해보기도 했다.
이외에도 액셀러레이터는 창업팀 발굴과 창업 생태계 활성화를 위해 크고 작은 행사를 거의 매달 진행하는 편이다. 행사 기획과 준비, 진행 그리고 사후처리까지 모두 도맡아 일련의 과정을 통해 행사의 플로우를 경험하기도 했다.
몸집이 커서 관성이 큰 대기업이나 국가기관에서는 변화의 혁신을 일으키기가 매우 어렵다. 모빌리티 산업의 파괴적 혁신을 가져온 Uber나 전세계적 공유경제를 일으킨 Airbnb, 또 이 세상의 유통을 쥐어잡은 Amazon은 모두 작은 스타트업의 혁신적인 도전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앞으로도 스타트업이 미래의 변화를 계속 주도할 것이며, 이는 가장 보수적인 의료분야에서도 빅데이터와 인공지능, 양자컴퓨터 등의 기술 변혁에 따라 큰 변화의 물결이 이미 시작되었다.
의사들은 로봇수술과 의료 인공지능을 단계별로 도입하고 있으며, 앞으로 펼쳐질 환자 중심의 의료 서비스와 의사의 역할에 대해서도 끈임 없는 토론이 이루어지고 있다.
약사들 또한 환자 맞춤형 정밀의료와 데이터 기반 신약개발에 대해서 대규모 연구와 투자를 진행하고 있다.
수의사 또한 가까운 미래에 다가올 큰 변화에 대해 충분히 인지하고 오픈이노베이션을 지향하는 이야기가 많아졌으면 좋겠다.
3. 지원 방법
현재 2019년 상반기 인턴을 모집중이며, 이메일로 지원서를 제출한 후 회사 담당자와 인터뷰 일정이 잡힌다.
인턴을 공개채용하지는 않기 때문에, 직접 회사에 문의를 넣거나 글쓴이를 통해 자유 형식의 지원서를 제출할 수 있다.(whtjdwls7777@bluepoint.v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