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 여행하는데 지하철의 작동원리를 알 필요는 없잖아요
수의학 교육, 핵심역량에만 집중한 기초-임상 연계로 개편돼야
한국수의학교육인증원과 한국수의과대학협회가 20일 OIE 권고 졸업역량 개발 및 2주기 평가인증 편람 세부안을 주제로 공청회를 개최했다.
이날 발제에 나선 류판동 교수(사진)는 ‘도쿄에서 대중교통을 이용해 관광지로 이동하는 상황’을 역량교육에 빗대어 설명해 눈길을 끌었다.
최근 수의학계가 모색하고 있는 역량중심 교육은 수의과대학 졸업생들이 실제 현장에서 전문성을 발휘할 수 있는지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고전적인 수의학 교육이 교수가 일방적으로 가르칠 뿐 ‘학생들이 정말 할 수 있느냐’의 문제는 외면해왔다는 문제의식에 기반한 것이다.
하지만 현장에서 수의사가 해야 하는 일을 모두 가르치기에 6년은 너무 짧다. 때문에 반드시 가르쳐야 할 ‘핵심역량’을 선별하는 일이 전제되어야 한다.
아울러 핵심역량을 선별한 후 이를 달성하기 위한 배경지식과 술기를 가르칠 때도 역량에 직결된 요소들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것이 류 교수의 지적이다.
류판동 교수는 “환자의 증상 등 수의사가 마주하는 상황에 독립적인 대응능력을 갖췄느냐가 교육성과의 지표가 되어야 한다”며 “그러려면 핵심적인 내용에만 집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일본여행을 떠나 도쿄의 숙소에서 관광지로 대중교통을 타고 이동하는 일’을 역량으로 비유해 설명했다.
적합한 노선과 역 이름, 승차 요금에 대한 지식은 필요하겠지만 지하철이 작동되는 전기공학적 원리나 도쿄시내 지하철 노선의 숫자 같은 지식은 몰라도 상관없다.
이처럼 명확한 목표(구체적인 졸업역량)를 바탕으로 가장 효율적인 기초(수의학적 개념과 원리)-임상(진료역량) 교육 연계방안을 찾아내야 한다는 것이다.
류판동 교수는 “대학에서 핵심적이지 않은 지식을 가르치는데 시간을 뺏기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봐야 한다”며 “실제로 관광지로 이동할 수 있는지, 실제로 수의전문성을 발휘할 수 있는지도 점검할 수 있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한국수의과대학협회는 이날 공청회와 설문조사를 통해 수렴한 의견을 반영해 ‘반드시 가르쳐야 할 핵심역량’의 최종 표준안을 마련하고, 향후 각각의 역량에 맞춘 진료수행지침과 임상술기 가이드라인 제작을 이어갈 방침이다.
진료수행지침에는 병력청취, 감별진단, 치료계획수립, 보호자 교육 등 세부적인 역량을 담아내고, 그에 필요한 핵심적인 임상술기요령도 제시해 학생들이 익힐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이다.
김남수 전북대 교수는 이날 공청회에서 “대학이 현장감 있는 임상교육을 실시하기 어려운 실정”이라며 “부속 병원의 경쟁력도 일선 동물병원에 비해 낫다고 보기 어렵고, 임상교수 및 시설이 부족하여 현실적 제약이 크다”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류영수 건국대 수의대 학장은 “논의되고 있는 수준의 졸업역량을 갖춘 졸업생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역량이 대학에 있는지 고민이 있다”면서도 “사회가 원하는 수의사를 육성하는 것이 대학의 역할이며, 변화의 동력을 만들어내는 움직임에 고마움을 느낀다”고 말했다.
최경철 충북대 수의대 학장도 “학제와 학생들의 변화를 반영하지 않은 예전 교육을 답습해온 것이 사실”이라며 “졸업하자마자 임상현장에서 진료할 수 있는 수의사가 되고 싶어하는 학생들의 요구에 발맞춰, 기초-예방-임상이 긴밀히 연계된 통합 교육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제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