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수의인물사전 33. 박영준(朴永埈, 1929~1992). 전남대학교 수의학과 제1회 졸업생, 전남대학교 수의과대학 초대 학장, 전남대학교 부속가축병원장, 전남대학교 총동창회 제7대 회장
1929년 4월 6일 전라남도 담양군 창평면 유곡리 절산마을에서 함양 박연호와 기씨 사이의 4남 3여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전남대학교 농과대학 수의학과에서 학사 학위(1955. 3. 28.)를 받고, 이어 전남대학교 대학원에서 석사 학위(1959. 3. 28.)와 박사 학위(「혈액치에 의한 집단 사육 유우군의 번식장애 평가에 관한 연구」, 1975)를 받았다. 전남대학교 농과대학 수의학과 제1회 졸업생으로, 1955년 조교로 시작하여 1992년까지 수의내과학 및 수의기생충학 강의를 맡아 후학을 양성했다.
재직 중 전남대학교 농과대학 교무과장(1970~1974), 대학원 교무과장(1975~1978), 농과대학장(1978~1980)을 역임했다. 1980년 4월 전남대학교 교무처장을 맡았다가 광주민주화운동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소임을 다하지 못한 채 그해 8월 강단을 떠나는 아픔을 겪었다.
약 4년 후인 1984년 4월에 전북대학교 농과대학 수의학과 교수로 임용됐고, 그해 8월 전남대학교 농과대학 수의학과 교수로 자리를 옮겼다. 1988년 3월에 전남대학교 수의과대학 초대 학장(1988~1990)을 맡아 6년제로 개편된 수의학 교육의 초석을 마련하였다. 1990년 9월부터 전남대학교 대학원장을 수행하던 중 1992년 8월 26일 지병으로 타계하였다.
1979년 1월에는 비엔나 수의과대학을 방문하여 학제 및 동물병원 운영 실태를 살펴보았다. 주요 보직 이외에도 수의학과장 및 농과대학 부속가축병원장(3회)으로 수의학 교육에 공헌하였음은 물론이고, 전남대학교 대학원을 비롯한 경영대학원 및 교육대학원 위원회 위원을 맡아 교육 행정에 크게 이바지하였다. 전남대학교 총동창회 제7대 회장(1967. 4.~1969. 6.)으로 전남대의 발전에 기여하기도 했다.
서재에 “安而不忘危(안이불망위)”를 걸어두고 편안한 가운데서도 스스로를 경계하며 일평생을 보냈다. “자녀 교육에 엄격해서 가끔 불호령이 떨어지곤 했는데, 일관성과 논리의 정연함 때문에 반발할 수도 빗나갈 수도 없었다. 일요일 아침이면 온 가족이 모여 가족사, 세상 사는 이야기, 사회적인 이슈 등을 놓고 토론하는 시간을 즐겼다. 냉철한 판단력과 강직한 성품을 지녀서 동료들로부터 ‘전남대학교의 양식’이라는 평을 받기도 했던 그는 부인 남곡희와 슬하에 2남 3녀를 두었다. 글쓴이_이정길
*이 글은 한국 수의학 100여년 역사 속에서 수의학 발전에 기여를 한 인물들의 업적을 총망라한 ‘한국수의인물사전’에 담긴 내용입니다. 대한수의사회(회장 김옥경)와 한국수의사학연구회(회장 신광순)가 2017년 12월 펴낸 ‘한국수의인물사전’은 국내 인사 100여명과 외국 인사 8명에 대한 정보를 담고 있는데요, 데일리벳에서 양일석 전 서울대 수의대 교수를 비롯한 편찬위원들의 허락을 받고, 한국수의인물사전의 인물들을 한 명 씩 소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