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수의인물사전 40. 심재열(沈載悅, 1916~1977). 진주가축병원 개원, 경상남도수의사회 초대 회장, 대한수의사회 부회장, 대한수의사회장, 진주축협 초대 조합장
본관은 청송(靑松)이며 1916년 4월 25일 경상남도 진주시(진양군) 명석면 왕지리에서 7남매 중 장남으로 출생하였다.
진주보통학교(현 진주중안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일본으로 건너가 오카야마에서 공부를 시작했다. 오카야마 현립농업학교는 1899년 농림학과와 축산학과 2개로 설립되어 추후 축산 2부(수의학과)가 설치되었다. 입학 자격은 고등소학교 혹은 중학교를 2년 이상 수료한 자이고 수업 연한이 4년인 전문학교였는데, 1949년 국립오카야마대학으로 발전하였다. 그는 1932년 오카야마 농업학교에 입학하여 1938년 졸업(수의사 면허 취득)하였다.
졸업 후 귀국하여 울산군청과 진양군청에서 근무(1939~1945)하였으며, 해방 후 진주농림학교 수의축산과 교사로 재직하였다. 학교를 사직하고 진주에서는 처음으로 진주시 중안동에 “진주가축병원”을 개원하였다. 당시는 각 시군에 한 곳 정도의 가축병원이 있었으며, 가축병원 수의사는 공수의를 겸하였다. 진료 대상 동물은 한우, 유우, 돼지, 개였으며, 왕진 의뢰가 있으면 당시로써는 상당히 큰 오토바이(250cc)를 타고 다녀서 동경의 시선을 받았다.
1963년 4월 30일에 열린 경상남도 수의사회 창립총회에서 초대회장으로 취임하였다. 이 당시 경상남도 수의사회는 재정 상태가 좋지 않아 총무를 맡은 박만택(도 축정과)이 근무하는 사무실이 경상남도 수의사회 사무실로 사용되었다.
일반 수의사들은 연회비를 납부하지 않아 공수의의 찬조금, 기타 협찬금으로 살림을 꾸려가던 시절이었다. 발족 당시 경상남도 수의사회는 경상남도와 부산이 함께 회를 구성하고 있었는데, 경상남도와 부산의 수의사회가 분리되면서 경상남도 수의사회는 마산상공회소에서 회합을 갖고 회장 취임사, 수의사 현황 등을 실은 회보를 발간했다. 이것이 《경남수의사회보》 창간호가 되었다. 물론 ‘등사’ 방식의 인쇄물이었다. 이 회보는 지금까지 면면히 이어져 오고 있다.
여기서 우리나라 수의사회지 발간 상황을 살펴보면 대한수의사회가 발족한 1953년 《韓國獸醫》라는 이름으로 창간호가 발간되었는데, 발행인 이근태 축정국장, 편집인 수의과장 김영한으로 농림부 축정국이 주도했다. 경비는 유엔한국재건단(UNKRA)의 원조금 등으로 충당되었으리라 여겨진다. 판매 가격이 50원(圓)으로 기재되어 있지만, 수의사회비도 납부하지 않던 시절에 많이 판매되지는 않았을 것으로 보인다.
5호, 6호가 발행된 1956년은 경비 때문에 ‘등사인쇄’로 발간되었다. 수의사법에 따라 1957년 대한수의사회가 농림부에 등록되면서 《수의계》라는 이름으로 제1권(1957)부터 제10권까지 발행되었으나 1967년부터 1970년까지는 정간되었다. 1971년 과학기술처(연구조정관 김영한)의 보조를 받아 《대한수의사회지》로 개명하여 제11권 1호가 발행되었으나 다시 재정의 어려움으로 제12권 1호는 1976년 5월에 발행됐다. 이 무렵이 심재열 회장의 재임 기간(1971~1974)이었다. 얼마나 어려운 시기에 중앙회장을 맡았는지 짐작할 수 있다. 떠밀리다시피 당선된 그의 고심과 노고가 심히 컸을 것이다.
그나마 민주공화당 정책의장, 예결위원장, 국회부의장을 역임한 5선 구태회 의원(진주, 진양)을 통하여 수의 분야의 민원을 해결하였다. 축산국장을 역임한 이남신(제3, 4, 5대 중앙회장)은 농림부에 통로를 열고 대한수의사회 부회장(1963~1966)을 맡았던 시절에 구태회 의원의 도움을 받아 정부 예산 지원의 길을 열었다. 이외에 서울우유를 비롯한 외부의 협조와 회원들의 성금까지 더해져 서울시 서대문구 대현동에 수의사회관이 마련(1967. 11. 11.)됨으로써 현 수의사회관의 토대가 되었다.
그는 울산군과 진양군에서의 근무(1939~1945), 해방 후 진주농림학교 수의축산과 교사, 진주가축병원 개원, 수의사회 경남지회장(1963~1974), 대한수의사회 부회장(1963~1966), 대한수의사회장(1971~1974), 자신이 주축이 되어 설립한 진주축협의 초대 조합장(1963~1966) 및 재선(1975~1976)을 역임하였다.
재선 조합장 퇴임 이듬해인 1977년 12월 11일에 영면하였다. 우리나라 축산이 채 자리 잡지 못한 어려운 시기에 수의축산을 위해 헌신한 분으로 기억될 것이다. 글쓴이_양일석
*이 글은 한국 수의학 100여년 역사 속에서 수의학 발전에 기여를 한 인물들의 업적을 총망라한 ‘한국수의인물사전’에 담긴 내용입니다. 대한수의사회(회장 김옥경)와 한국수의사학연구회(회장 신광순)가 2017년 12월 펴낸 ‘한국수의인물사전’은 국내 인사 100여명과 외국 인사 8명에 대한 정보를 담고 있는데요, 데일리벳에서 양일석 전 서울대 수의대 교수를 비롯한 편찬위원들의 허락을 받고, 한국수의인물사전의 인물들을 한 명 씩 소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