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수의인물사전 41. 양기천(梁奇千, 1941~1997). 제주대학교 수의학과 교수, 제주대 학생생활연구소장, 동물과학연구소장, 제주대 자연과학 분야 학술상 수상, 제주대 학생처장
본관은 제주(濟州)이고 호는 관해(觀海)이며, 1941년 8월 7일 제주도 한림에서 태어났다. 서울 대광고등학교와 서울대학교 수의학과를 졸업(1963)하였다. 서울대학교 대학원에서 수의산과학 석사 학위(1968)를 취득하였으며, 이어 일본 아자부[麻布] 대학에서 수의학 박사 학위(1979)를 받았다.
1968년 7월 제주대학 조교를 시작으로 1969년 3월 제주대학 이농학부 수의학과 전임강사를 거쳐 1997년 2월 농과대학 수의학과 교수로 재직하면서 30여 년간 수의축산 분야의 후진 양성을 위하여 헌신적인 노력을 기울였다.
수업 연한이 6년제로 바뀌면서 전국의 수의학과가 통폐합되어 제주대학 수의학과가 폐과(1973. 12. 29.)되었을 당시, 그는 축산학과로 전보되어 가축해부학 및 방역학 과목을 맡아 학생들이 기초 학문을 튼튼히 다질 수 있게 하였으며, 제주축산 발전에도 커다란 족적을 남겼다.
1970년대 제주에서는 축우들을 산간 지대에 방목하여 키웠는데, 그중 특히 도입우들이 폐사하는 원인이 고사리 중독 때문임을 밝혀냈다. 또한, 1980년 8월부터 1982년 7월까지 제주대학 제9대 학생생활연구소장으로 있을 때는 상담 등을 통해 학생들의 고민을 해소해 주고 학업에 전념할 수 있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1986년 9월부터 1989년 3월까지는 제8대 농과대학 부속 동물과학연구소장을 맡아 동물생명과학 분야의 연구를 활성화하고 새로운 이론과 기술을 보급했다. 아울러 현장의 애로를 해소해 주려고 노력하였으며 축산 기술 개발에 주도적인 역할을 하였다. 이 무렵 그는 제주대학교에서 자연과학 분야 학술상(1987. 5. 6.)을 수상했다.
1976년 수의과대학 6년제 학제가 정착되지 못하고 4년제로 돌아가자 제주대학에서도 수의학과를 재설치하기 위해 교육부 관계자를 설득하여 1989년 3월 1일부로 수의학과 부활이 이루어졌다. 그에 따라 신임 교수들을 초빙하고, IBRD(국제개발은행)로부터 교육차관을 들여오기 위하여 동분서주한 결과 실험실습 기자재가 확보되어 학생들의 수업 환경이 개선되었다.
특히 동물병원 신축에 심혈을 기울였는데, 600여 평 규모로 당시 국내 최고 수준의 대학 동물병원을 짓기 위해 노력하였다. 또 졸업 후 수의사 국가시험을 통과해야 하는 수의학과 학생들의 교육 내실이 절실하여 김승호 교수(1994. 2. 28. 정년퇴임)와 함께 수의학과 조기정착을 위해 노력한 결과, 다른 지역의 수의학과와 보조를 맞출 수 있게 되었다.
1989년 대한수의학회를 제주대학교에 유치하는 등 수의학 발전을 위하여 끊임없는 노력을 경주하였다.
1989년 10월부터 1991년 10월까지 제주대학교 제7대 학생처장을 역임하면서 제주대학교를 발전시켜 위상을 높이는 데 헌신하였으며, 제주대학교 해양연구소, 방사능이용연구소, 중앙도서관 운영위원 등을 맡아 수의학뿐만 아니라 대학 전체의 발전 및 제주도 지역사회 발전에도 기여하였다.
1997년 2월 28일 사고로 유명을 달리하였으며 슬하에 3남 1녀를 두었다. 그의 소탈한 성품, 천부적인 친화력, 학구적 신념은 후학들에게 깊은 감명을 주었다. 글쓴이_이영재
*이 글은 한국 수의학 100여년 역사 속에서 수의학 발전에 기여를 한 인물들의 업적을 총망라한 ‘한국수의인물사전’에 담긴 내용입니다. 대한수의사회(회장 김옥경)와 한국수의사학연구회(회장 신광순)가 2017년 12월 펴낸 ‘한국수의인물사전’은 국내 인사 100여명과 외국 인사 8명에 대한 정보를 담고 있는데요, 데일리벳에서 양일석 전 서울대 수의대 교수를 비롯한 편찬위원들의 허락을 받고, 한국수의인물사전의 인물들을 한 명 씩 소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