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의학교육 실행학습목표 860개 이정표‥2027 국가시험 개편한다
수의대 커리큘럼 구성 기준이자 수의대생의 셀프 체크리스트..교육 인프라 부족 지적도
역량중심 수의학교육 표준안이 점차 구체화되고 있다. 수의과대학 졸업역량에 기반한 커리큘럼이 이르면 2022년부터 현장에 적용될 전망이다.
2023년부터 본격화될 수의학교육 2주기 인증에 역량중심 교육을 반영하고, 2027년 수의사 국가시험부터 역량중심 교육을 평가하는 형태로 시험을 개편한다는 계획이다.
졸업역량 세부학습목표 870개, 커리큘럼 이정표이자 학생들의 체크리스트
한국수의과대학협회 교육위원회(위원장 류판동)는 5일 대전 인터시티호텔에서 열린 공청회에서 수의학교육 졸업역량의 실행학습목표 개발 결과를 발표했다.
수의과대학을 갓 졸업한 수의사가 갖춰야 할 능력을 ▲기본역량(수의학적 개념과 원리) ▲진료역량(수의진료) ▲수의전문직업성역량으로 분류하고 각 영역의 최종학습성과(TLO)와 실행학습목표(ELO)를 규정한 것이다.
진료역량은 수의사가 진료현장에서 흔히 접하고, 초기단계에서 적절히 대응하지 못하면 위중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는 임상증상 65개를 선정해 기준으로 삼았다.
여기에 예방접종, 진단서 발급, 애도를 포함한 일반관리 항목 1개를 추가해 총 66개 영역으로 구성됐다.
66개 영역은 최종학습성과 170개와 실행학습목표 394개로 구체화된다.
가령 ‘심잡음’ 증상의 실행학습목표는 △정상 심음 및 심잡음을 구별할 수 있고 △병적 심장 잡음의 발생기전을 설명할 수 있고 △심잡음이 청진되는 동물에서 가능한 질환을 제시하고 치료계획을 수립할 수 있고 △울혈성 심부전의 병태생리를 설명하고 치료제의 작용기전과 선택기준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이같이 구체화된 실행학습목표는 대학이 커리큘럼을 구성하는 이정표이자, 개별 수의대생이 미래를 준비하는 체크리스트로 활용될 수 있다.
대학은 수의내과학 교과목이나 임상로테이션에서 정상 심음과 심잡음을 구별할 수 있도록 실습기회를 제공해야 하며, 학생은 졸업 전에 자신이 심잡음을 구별해낼 수 있는지를 점검해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남상섭 건국대 교수는 “의과대학에서는 TLO와 ELO에 대한 자료를 의대생들이 가지고 있다. 프랑스의 수의과대학에서는 학생 스스로 학습성과를 거뒀는지 체크하는 프로그램을 배포해 활용하고 있다”며 “우리도 교수진과 학생들에게 어떻게 공급하여 활용할 것인지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교육위 연구에 참여한 강종일 충현동물병원장도 “농림축산식품부가 예산을 지원해서라도 반드시 학생들에게 세부학습목표 자료를 배포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교수도 시간도 부족’ 졸업역량 교육 이정표 따라 커리큘럼 조정 불가피
의대·해외 선진수의대의 영역별 접근 참고해야
기본역량(444), 진료역량(394), 전문직업성역량(22)을 합하면 수의과대학에서 달성해야 할 실행학습목표는 860개다. 수의학계 의견수렴 과정에서 일부 조정됐고, 최종 확정 단계에서는 더 늘어날 수도 있다.
이처럼 10개 대학이 동일한 실행학습목표를 기준으로 교육하면 수의학교육의 표준화를 기대할 수 있다. 국가시험 출제의 개선기반도 될 수 있다.
이날 2007~2016년 해부학 국시 문항의 영역별 분석 결과를 공개한 남상섭 교수는 “연도별로 영역별 출제문항의 편차가 크다”며 “올해 졸업한 수의사 19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인터뷰에서도 국시 준비의 가이드라인이 없고, 지엽적인 문제가 왜 출제되는지 이해할 수 없다는 응답이 나왔다”고 지목했다.
다만 수의과대학 학제나 교수진의 수에 비해 실행학습목표가 적지 않다는 점은 과제다.
이기창 전북대 교수는 “최종학습성과와 실행학습목표를 하나하나 체크해가며 교육과정에서 다루고 있는지를 점검해야 한다”며 “교과목별로 누락이나 중복을 체크해 조율하고, 장기적으로는 통합 및 연계 교과목 체계를 갖춰야 할 필요도 있다”고 말했다.
전공필수 과목을 나열하고, 과목별로 수업시간을 부여하는 전통적인 형태는 6년제 도입 후에도 20여년간 공고했다. 각 대학별로 본과 4학년에 임상로테이션 시간을 확보한 것 외에는 큰 변화가 없다.
하지만 제한된 시간 안에 실행학습목표를 모두 달성하고, 학생들의 현장실습까지 늘리려면 커리큘럼 조정이 불가피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의과대학이나 해외 선진 수의과대학처럼 영역별 통합 커리큘럼을 갖추는 것도 방법이다. 최근 한국수의임상포럼(KBVP)가 마련한 장기중심 심포지움처럼 특정 장기나 영역을 기준으로 해부, 생리, 병리, 임상을 한꺼번에 다루면 보다 압축된 시간 동안 효율적으로 교육할 수 있다는 것이다.
수의과대학의 교육 인프라에 한계가 있다는 점도 넘기 힘든 산이다.
조규완 경상대 수의대 학장은 “수의과대학에서 실제 진료에 참여하는 교수는 5~6명인데 수십명의 교수가 포진한 의과대학처럼 교육하기는 어렵다”며 “바깥의 대형 동물병원보다도 수의사가 적은 대학병원에서 임상교육이 제대로 진행되기 힘들다”고 토로했다.
박인철 강원대 교수는 “제한된 시간과 교수진에서 (졸업역량 실행학습목표를) 모두 다 교육하고 실습할 수 있을지 걱정”이라며 “2+4 체계의 커리큘럼을 손봐 예과 과정을 활용한다면 현장에서 필요로 하는 교육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진료수행지침(CPX), 임상술기지침(OSCE) 수립 남았다..2027 국시 개편 전망
한수협 교육위는 2016년 수의학교육 졸업역량을 선언한 후 올해 연구까지 구체적인 교육모표를 마련했다.
향후에는 기본역량과 진료역량의 연계를 구체화하고 진료수행지침(CPX), 임상술기지침(OSCE)을 수립하는 과제가 남아있다.
가령 진료역량의 ‘심잡음’ 영역은 기본역량의 ‘혈액 및 순환계통’ 영역과 연결된다.
심잡음에서 ‘정상 심음 및 심잡음을 구별할 수 있다’는 실행학습목표는 ‘혈액 및 순환계통’의 △4가지 심음이 들리는 기전을 설명할 수 있다 △수축기 및 이완기 심잡음을 구별할 수 있다 등의 하위실행학습목표(sub-ELO)와 연관된다.
이 같은 연결고리를 역량중심 교육기준 전반에 확립하면, 향후 영역별·장기별 통합 커리큘럼을 만들 수 있는 기반이 된다.
진료수행지침과 임상술기지침은 의학교육계에서 이미 국가시험으로도 평가하는 교육의 틀이다.
진료수행지침은 환자의 주 증상에 따른 문제해결 과정을 구조화(SCHEME)하고 병력청취-신체검사-진단검사-환자교육 등으로 이어지는 표준진료방법이다. 여기에 필요한 임상술기가 OSCE다.
CPX-OSCE가 확립되면 수의과대학의 임상교육과 현장실습도 여기에 기준을 맞춰야 한다. 향후 국가시험에 실기시험이 도입되면 CPX와 OSCE를 평가하게 된다.
류판동 한수협 교육위원장은 “2020년 분야별 술기와 진료수행지침을 설정하는 작업이 이어질 예정”이라며 “이를 바탕으로 2022년까지 각 대학에 역량중심 커리큘럼이 만들어지면 2027년 이후 국가시험에도 반영될 것”이라고 내다봤다.